고 최덕근 영사를 아시나요?

최창근
2024년 05월 28일 오후 2:30 업데이트: 2024년 05월 28일 오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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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구국선양회 창립 모임 열려

서울 내곡동 구룡산 어귀에 자리한 국가정보원 청사 경내에는 보국탑(保國塔)이 있다.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는 국가정보원 원훈(院訓)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일하다 스러져 간 19위(位)의 혼령이 안치돼 있다. 무명(無名)의 지사들은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19개의 ‘별’로 남아 있을 뿐이다.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가 모체인 국가정보원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요원이 순국했다. 다만 기관 특성상 이름도 신분도 구체적인 업무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중에서 유일무이하게 신상이 공개된 인물이 있다. 고(故) 최덕근 영사이다.

최덕근 영사는 국가정보원의 전신 국가안전기획부 해외 공작관이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출신으로 학군사관후보생(ROTC) 복무 후 국가안전기획부에 몸담았다.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을 바탕으로 러시아 등에서 대북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 사망 전 주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영사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마약 유통, ‘슈퍼노트’라 불리는 미국 달러화 위조 문제 등을 추적했다.

1996년 10월 1일, 최덕근 영사는 퇴근 길에 블라디보스토크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서 괴한의 습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부검 결과 그의 시신에서는 북한 공작원들이 독침에 사용하는 ‘네오스티그민 브로마이드’ 독극물 성분이 검출됐다.

고 최덕근 영사. 국가안전기획부 공작관으로서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근무하다 북한 공작요원에게 암살됐다. | 연합뉴스.

최덕근 영사의 유해는 1996년 10월 5일, 항공편으로 국내로 운구됐고 삼성의료원에서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후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됐다. 사후 이사관(2급 상당)으로 1계급 추서되고, 보국훈장 천수장이 추서됐다.

고 최덕근 영사는 사망 시 외무부(현 외교부) 소속 영사 신분으로 재외공관에 파견된 이른바 화이트 요원이었다. 국가정보원 보국탑의 19개 별 중 신원이 공개된 유일무이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1948년 정부 수립 후 선진국 반열에 오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조국을 위해 무명 헌신한 이들은 많고도 많다. 국가정보원 요원으로서, 특수부대원으로서 사지를 넘나들며 ‘진충보국(盡忠保國)’하다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산화했다.

그중 북파공작부대 원조격인 ‘HID 호림특수부대’ 원혼들의 넋을 기리는 호림안보협의회를 비롯하여 무명 용사들을 기리는 모임이 하나둘 발족하고 있다.  와중에 ‘대한민국구국혼선양회’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무한 헌신한 이들을 기리는 첫 공식 모임을 오는 6월 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개최한다.

대한민국구국혼선양회는 석희태 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정교모) 공동대표, 김주성 전 한국교원대 총장, 신언 전 파키스탄 대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정규필 호림안보협의회 회장(예비역 육군 대령) 등이 이사를 맡았다.

이들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외면하고, 살아서 돌아온 자는 기록이 없다고 제외하고 무시하며, 비밀이나 국익이라는 미명(美名)하에 감추고 덮어버리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유지해 온 자세는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며 위기에서도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영웅들의 구국혼과 구국정신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며 그 가족들의 명예를 드높이는 활동을 통하여 온 국민의 애국정신과 감사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대한민국구국혼선양회를 창립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