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우아함을 음악으로…프랑스 작곡가 레날도 안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Ariane Triebswetter)
2024년 05월 23일 오전 9:36 업데이트: 2024년 05월 23일 오전 9:36

19세기 프랑스를 빛낸 작곡가 레날도 안(1875~1947)은 동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나 가브리엘 포레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충만하고 풍부한 예술적 삶을 영위하며 프랑스 클래식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레날도 안, 1906, 마누엘 코헨 | PD-US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평생을 프랑스 음악계에 헌신한 레날도는 오페라와 수많은 가곡을 남긴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그는 프랑스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의 정수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당시는 19세기 전쟁 이후 평화와 향수, 기쁨, 희망의 정서가 대세를 이뤄 아름다운 예술을 추구했다. 이러한 사조를 바탕으로 음악, 문학, 건축, 회화 등 예술이 다각도로 크게 발전했다.

그의 음악은 전쟁으로 지친 당시 사람들에게 경쾌함과 우아함을 선사해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예술 살롱에서 자주 연주되며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를 완벽히 표현했다.

프랑스로 온 천재

1874년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레날도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거주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6세 때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마틸드 공주가 주최한 음악회에 참여하며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11세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작곡 수업을 받기 시작해 샤를 구노, 카미유 생상스 등 많은 스승에게서 교육받았다. 이후 그는 1898년 첫 번째 오페라 ‘꿈의 섬’을 작곡해 스승에게 헌정했다. 이후 그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무대 음악, 발레, 기악곡 등을 작곡하며 음악성을 펼쳤다.

오페레타 ‘시불레트’

1923년 그는 오페레타 ‘시불레트(Ciboulette)’를 발표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가볍고 즐거운 작품을 원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그는 오페레타(소형의 희극 오페라·경가극)를 만들어 대중을 기쁘게 했다.

오페라 ‘시볼레트’의 한 장면 | PD-US

이 오페레타는 사랑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희극으로, 쥘 마스네의 ‘마농’,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등 당시 유명한 오페라 작품을 참고해 쓰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된 오페레타 중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파리의 정신과 모차르트 음악의 세련미가 결합한 작품으로 불린다.

우아한 예술가곡

레날도가 만든 오페레타와 오페라 작품들이 당시의 평온하고 경쾌한 시대상을 표현했다면, 그가 쓴 예술가곡은 시대의 우아함을 표현하고 자신의 예술성을 한껏 보여준다.

레날도는 1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했다. 또한 당대를 풍미한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여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그가 쓴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1844~1896)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샹송 그리즈’(1890)다. 이 곡은 그가 16세 때 작곡한 것으로 총 7곡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곡들은 아름다운 가사에 걸맞은 멜로디와 악기의 배치로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화려한 잔치 (샹송 그리즈 5번 곡)
폴 베를렌

꿈을 꾸며 가자! 자러 갈 시간이다.
크고 다정하고
고요하게 내려오는 듯하다.
하늘에서
달빛에 젖은 무지갯빛이…
감미로운 시간이다!

프랑스 예술의 정수

레날도 안의 1895년 가곡집 표지 | PD-US

레날도의 가곡은 극적이거나 화려하기보다는 우아하고 절제되어 있다. 또한 미묘한 전달력으로 듣는 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우아하게 전달한다. 레날도는 예술적 감수성을 기교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그렇기에 그의 가곡에서는 소리보다 가사가, 기교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

단순하고 우아한 음악을 통해 놀라운 범위의 감정을 묘사한 그의 음악은 프랑스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지휘자, 교사로 활동하며 예술혼을 펼쳤던 그의 음악은 오늘날까지도 클래식 음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는 현대 문학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춘 국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