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교감한 낭만주의자,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4년 05월 08일 오후 12:43 업데이트: 2024년 05월 08일 오후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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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움과 영감, 아름다움의 상징인 달은 19세기 초 많은 예술가에게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음악에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쇼팽의 녹턴이 달을 소재로 한 작품의 대표적 예다. 회화에서는 프리드리히의 세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선구적인 낭만주의자

‘프리드리히의 초상’(1808), 게르하르트 폰 퀴겔겐 | 퍼블릭 도메인

독일의 예술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는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자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류의 경외심을 작품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로 꼽힌다. 그는 안개, 눈, 일몰, 달이 뜬 풍경 등을 주로 그리며 색채와 명암으로 종교적 경건함과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상처를 끌어안고 발을 내딛다

발트해 연안에 터를 잡은 양초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과 깊은 유대를 형성하며 자랐다.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은 그가 성인이 된 후의 작품과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리드리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후 고국으로 돌아와 드레드덴 지역에 정착해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는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의 풍경화 부교수로 근무했고, 독일 전역을 여행하며 관찰한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7),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합스부르크미술관 | 퍼블릭 도메인

19세기 초 낭만주의 사조가 등장했고, 독일 전역에 전파됐다. 이 사조는 상상력과 감정, 개인과 자연에 대한 감상을 중요시했다. 그는 이러한 주제를 탐구하며 풍경과 건축물에 종교적 가치를 불어넣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일차원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고 다층적 의미를 지녔다. 특히 그는 달을 예수의 부활과 연관 짓기도 했고, 우정과 자연에 대한 영적인 통찰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1819),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캔버스에 오일 | 퍼블릭 도메인

프리드리히의 첫 번째 달 그림은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1819)다. 이 작품은 그가 비대칭 구도를 탐구하던 시기에 그려졌으며, 한 쌍의 인물을 뒤에서 바라보는 명상적인 전경을 차용했다. 예술학자들은 이 작품 속 인물을 프리드리히 본인(오른쪽)과 그의 제자 아우구스트 하인리히(1794~1822)라 추정한다. 그들이 입은 복장은 나폴레옹 시대 이후 독일 정부가 금지한 것이지만, 애국심이 강했던 프리드리히는 작품 속 인물들의 복장을 이 형식으로 그려 넣었다.

늦가을 산을 오르던 두 인물이 달을 감상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서있다. 화면 전체에는 녹갈색 안개가 희뿌옇게 퍼져있다. 달 옆에는 희미한 빛을 뿜는 샛별(금성)이 떠 있고, 행성들은 나무와 돌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자연물의 구도는 정밀한 계산과 의도로 배치된 것이다. 앙상한 가지와 뿌리를 드러낸 떡갈나무는 죽음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의 가문비나무는 상록수로 사계절 푸른 빛을 뽐낸다. 두 나무의 가지는 맞닿아 있는데, 이는 생명의 영원한 순환을 의미한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이른 밤의 풍경은 무한한 평화로움을 의미하며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사색할 여유를 전한다.

‘일몰 폭포 앞의 두 남자’(1823), 요한 크리스티안 달. 캔버스에 오일 | 퍼블릭 도메인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노르웨이 최초의 낭만주의 화가로 꼽히는 친구 요한 크리스티안 달(1788~1857)에게 선물했다. 크리스티안은 프리드리히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작품을 모방하기도 했다. 크리스티안의 작품 ‘일몰 폭포 앞 두 남자’(1823)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에 대한 아름다운 오마주이다.

‘달을 바라보는 남녀’

‘달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1824),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캔버스에 오일 | 퍼블릭 도메인

프리드리히의 달 그림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은 ‘달을 바라보는 남녀’(1824)다. 이 작품은 첫 번째 작품과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 차이점은 인물의 성별과 전체를 감싼 빛깔이다. 이 작품은 이른 해 질 녘 프리드리히와 그의 아내 캐롤라인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숲속을 산책하며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인간의 관조와 삶의 덧없음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번째 작품에는 화면 전체에 녹갈색 안개가 낀 반면, 이 작품에는 장밋빛과 연보랏빛이 감돌고 있다. 노을이 하늘을 물들여 어두운 전경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달이 흐리게 표현됐고, 대신 화면 오른쪽의 떡갈나무가 더 선명하게 표현돼 화면 전체에 극적이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뿌리와 바위에는 푸른 이끼가 선명하고, 화면 왼쪽의 가문비나무는 나뭇잎이 빽빽하게 자라있다.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통해 거대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진 인간을 표현해 자연은 곧 신의 발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세 번째 작품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1835~30년경),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캔버스에 오일 | 퍼블릭 도메인

그의 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1825~1830년경)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의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 속 등장인물이 그대로 등장하지만, 화면을 감싼 안개는 두 번째 작품의 색을 차용했다.

자연과 교감하는 두 남자는 늦가을 숲에서 달과 샛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이 작품은 세 작품 중 가장 정적이며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그릴 때 밑그림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선 작품들에 비해 세부 묘사가 덜 세밀하지만, 즉흥적이며 유동적인 붓놀림으로 그려졌다.

자연의 장엄함을 그려내다

프리드리히의 경건하고 명상적인 작품은 당시 저명한 후원자들과 동료 예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중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1820년대에 이르러 그는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고, 1840년 병에 시달리다 결국 숨을 거두었다.

자연에서 숭고함과 장엄함을 발견하고 이를 화폭에 묘사했던 프리드리히는 외롭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지만, 현대에 이르러 작품의 가치를 재평가받았다. 그리고 현재 많은 예술가가 그의 낭만주의 사조에 영향받은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