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또 반일 불매운동 촉발…이번엔 생수 1위 자국기업

강우찬
2024년 03월 17일 오전 11:17 업데이트: 2024년 03월 17일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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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음료 포장용기에 그려진 교토 유명 사찰이 계기
공산당 정권 위기 때마다 친일논란·반일 불매 점화

중국에서 때아닌 반일 불매운동이 촉발됐다. 대상은 일본이 아닌 중국의 유명 음료 제조사이다.

지난 8일 중국 동부 장쑤성의 세븐 일레븐 편의점 2곳이 “눙푸산취안(농부산천)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해당 편의점은 “농부산천과 관련된 모든 제품의 판매를 즉시 중단한다. 모든 국가의 제품을 우리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지만, 일본에 아첨하는 중국기업 제품은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문이 확산되자 지난 11일 세븐 일레븐 장쑤성 본사는 “일부 점포 직원들의 개인적인 결정일 뿐,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중국에서는 해당 업체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농부산천은 중국에서 ‘국민 생수’로 불리는 생수 분야 1위 음료 제조사다. 생수 외에도 차, 탄산수 등 다양한 음료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가 친일 논란에 휘말린 것은 경쟁 회사 창업주 사망이 계기가 됐다. 중국 대형 음료제조 업체인 ‘와하하’ 창업주가 지난달 25일 사망하자, 경쟁 관계였던 농부산천의 중산산 회장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와하하 제품은 용기 겉면에 ‘중국’, ‘조국의 강산’ 같은 애국적 요소가 담겼는데, 농부산천의 차 음료 제품인 ‘둥팡슈예(동방수엽)’에는 일본 교토의 유명 사찰 건물이 그려져 있다는 한 네티즌 댓글이 기폭제가 됐다.

농푸산취안의 차 음료 둥팡수예. 제품용기에 교토의 유명 사찰을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친일 아첨’ 논란에 휘말렸다. | 자료사진

이후 중산산 회장을 “친일 아첨꾼”이라고 욕하는 댓글이 추가로 달리고, 이런 댓글에 ‘좋아요’가 쏟아지면서 농부산천 제품에 대한 반일 불매 운동이 확산됐다.

농부산천의 제품을 싱크대나 변기에 버리고, 매장 진열대에서 치우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더우인(틱톡 중국판)’과 웨이보에 줄줄이 올라왔다.

이 사건의 여파로 농푸산천은 온라인 프래그십 스토어 매출이 90% 이상 급감하고 주가가 7% 급락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이와 관련한 중국 매체 ‘남방도시보’의 질의에 농푸산천 관계자는 “이성적인 소비자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회사는 성과를 내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네티즌 “세븐 일레븐은 일본계 아닌가? 자기모순”

중국 지방정부는 이러한 논란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분노한 여론을 타이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저장성 공산당 위원회 선전부는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성을 유지하며 거짓 애국심에 휘둘리지 말라”며 “옳고 그름을 제쳐두고 (정치적) 입장만 내세우는 치우침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를 두고 중국 전문가 리닝은 중국 당국이 일종의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격한 애국주의 네티즌인 ‘샤오펀훙(소분홍)’의 광분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으면서 겉으로만 난감한 척하고 속으로는 웃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온라인에서 모두가 광기에 빠져든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냉철한 댓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세븐 일레븐은 일본계 편의점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중국에서 영업하는 일본계 기업이 일본에서 중국 음료를 판매해 외자를 버는 기업을 보이콧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공산당이 형성한 집단적 사고…“공산주의 유령에 두뇌 잠식”

이번 사건을 두고 중화권에서는 그동안 공산당에 의해 ‘길들여진’ 샤오펀훙이 학습된 반응을 보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 전문가 리닝은 “누군가 중국에 대한 ‘애국심’을 표현하지 않고 일본이나 미국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언제든 반일·반미 정서를 발동해 공격하는 조건반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리닝은 “이처럼 ‘홍색’에 물든 중국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그들이 애국하는 대상이 실은 중국이 아니라 공산당이라는 점”이라며 “공산당이라는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을, 그들은 중국과 중국인 더 나아가 중국 문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으로 착각해 격분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공산당의 오랜 선전선동에 노출되고, 정상적인 사고를 중단하고 무조건 당에 충성하도록 하는 문화에 적응한 중국인들이 일종의 집단적 사고를 형성했고, 그에 따라 정권에 위기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외부 혹은 내부에서 공공의 적을 만들어 불만을 그쪽으로 돌리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 장쑤성의 한 편의점에 걸린 농푸산취안 생수 보이콧 안내문 | 홍콩01

한국의 온라인 일각에서도 진보주의, 변종 사회주의 커뮤니티에서 ‘뇌빼기’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스스로의 사고를 거치지 않고 해당 커뮤니티에서 대세가 된 사고방식·이념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빗나간 훈련을 지속하면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퇴화하며 집단적 사고에 따르게 된다.

집단지성이 다수의 지성을 총합한 긍정적 개념이라면, 집단적 사고는 그저 공동체가 공유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개념이다.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우수한 지성을 발휘할 수도, 맹목적인 무지성에 빠질 수도 있다.

리닝은 “맹목적인 무지성에 가까운 집단적 사고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에서 가리킨 ‘공산주의 유령’과 맞아떨어진다.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오래 노출된 중국인들은 자신의 두뇌가 아니라 마치 유령과 같은 집단적 사고방식에 잠식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산주의 유령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의 한 단락을 인용해 “중국 온라인에는 ‘작은 일은 일본에서 찾고 큰 일은 미국에서 찾는다’라는 말이 있다”며 “중국 공산당 정권은 작은 어려움에 처하면 반일 정서를 선동하고, 큰 어려움에 처하면 반미 정서를 선동해 위기를 넘겨왔다”고 말했다.

그는 “중산산 회장은 굴지의 식음료 기업을 키워,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동시에 중국 사회와 경제에도 큰 기여를 한 민간 기업가이지만, 정권이 위기에 처한 지금은 오히려 친일 매국노라는 욕설을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국인, 특히 젊은 세대가 자신의 두뇌를 잠식한 공산주의 유령을 떨쳐내지 못하는 한 지금까지 수 차례 반복돼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며,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공산당 정권의 수명만 거듭 연장될 것”이라며 “주변국에서도 이런 중국인 청년들을 일깨워 공산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공산당의 팽창주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