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막힌 中, 대규모 설비 및 소비재 교체 장려책 발표

박숙자
2024년 03월 05일 오후 1:12 업데이트: 2024년 03월 05일 오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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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경기 침체가 지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설비·소비재를 신제품으로 교체하도록 장려하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투자와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조치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지난 1일 리창 총리 주재로 상무회의를 열어 ‘대규모 설비 교체 및 소비재 이구환신 추진 방안’을 통과시켰다.

중국 당국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소비 진작을 위해 낡은 차량과 가전제품을 새것으로 교체할 경우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구환신 정책을 편 바 있다.

지금의 경제 상황, 2008년보다 더 심각

앞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지난달 23일 주재한 중국공산당 중앙 재정경제위원회 4차 회의에서 대규모 ‘설비 교체 및 소비재 이구환신’을 장려해 투자와 소비를 진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경 인플루엔서 ‘대류설설(大劉說說)’은 최근 자신의 채널에서 이 이슈는 역사와 현실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지금의 상황이 더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규모 설비 교체는 투자를, 대규모 소비재 교체는 소비를 촉진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그 범위가 확대됐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2008년에는 민간 소비재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에는 산업 설비와 민간 소비재까지 교체 범위에 포함했다는 점에서 지금 처한 상황이 2008년보다 더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중국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연초에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던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2009년 1분기에는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으로 급락했다. 또한 산업 생산이 급감하면서 수많은 중소 수출 기업이 문을 닫았고 해안 공업도시에서는 실업자가 속출했다.

당시 중국 당국은 위기 타개책으로 내수시장 확대에 초점을 맞춘 ‘가전제품 하향(下鄉)’ 정책을 발표했다. 컬러TV, 냉장고, 휴대폰, 세탁기 등 4가지 제품을 구매하는 비도시 거주자에게 제품 판매가의 13%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80%, 20%를 분담했다.

“이구환신은 근본 문제 해결에 도움 안 돼”

지멘스(중국) 영업 매니저 우멍후이(武孟慧)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에서 중국 당국이 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설비 교체와 소비재 이구환신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며 수출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멍후이는 설비 교체와 소비재 이구환신은 시장경제 행위가 아닌 행정 명령으로,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업이 세계 주요 선진국에 판매할 수 있는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선진국 시장에서 좋은 판매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주문이 들어오고 판매가 이뤄져야만 기업이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국내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재미 경제학자 청샤오농(程曉農)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이구환신’ 방안은 2008년 당시 사용했던 ‘가전제품 하향’ 정책과 다르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2008년 당시에는 농촌 지역에 실제로 가전제품 교체 수요와 시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문이 부족한 기업들에 설비를 교체하도록 강요해 정부가 만든 가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며 “가짜 수요는 정부가 경제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중국공산당은 명령만 내리면 모든 기업이 설비를 교체하고 경제가 겉으로나마 한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문제는 제조업체들이 정말로 당국의 지시를 따른다면 또 은행 빚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행정명령을 통해 경제를 억지로 견인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당국은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니 이런 어리석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이미 대책이 없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경기 둔화 지속될 조짐 뚜렷

최근에 중국의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왔다. 각 지방정부는 설 연휴를 앞두고 폐막한 지방 ‘양회(전인대+정협회의)’에서 202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데이터와 2024년 성장률 목표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 중 17곳이 2023년 GDP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거의 모든 지방정부가 2024년 GDP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잡았다.

지난달 23일 시진핑의 연설에 이어 리창(李強) 총리는 다음 날 국무원 상무위원회를 주재하며 “외자 유치와 활용을 위한 정책과 조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지방 부채 리스크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국제라디오방송(RFI)은 리창 총리가 이번 회의를 소집한 것은 중국과 서방 국가의 경제 디커플링 추세와 중국 내 외국 자본 철수 및 외국인 투자 감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사회가 중국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을 최근 10년 만에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AFE)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 직접투자는 총 330억 달러로 2021년 정점 대비 90% 이상 감소해 199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또한 중국의 자동차 업계는 올해 시작부터 판매 실적이 좋지 않았다. 시장 신뢰도가 낮은 데다 시장이 점차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서다. 중국 전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월 승용차 및 신에너지 자동차 판매량은 전월 대비 각각 15%, 37% 감소했다.

CPCA는 설 연휴의 영향과 추가 가격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비자들이 주춤하고 있어 2월 승용차 소매시장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5.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 이 기사는 팡샤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