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24절기의 첫 번째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은 올해 2월 4일로 벌써 보름 전의 일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양력에 따라 생활하고 있지만, 소위 ‘음력’을 기준으로 한 24절기가 아직까지도 기억되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비롯한 인간의 삶의 주기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음력이라고 부르는 동양의 전통적인 날짜 표기법은 오랜 역사와 계승·발전 과정을 거친 것으로 달의 움직임만을 따른 것은 아니다.
삼황오제 시절을 비롯해 고대 중국의 황제들은 천지의 운행과 음양의 균형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달력을 정비하고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보름달이 뜨고 지는 주기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공전 주기를 모두 고려했다.
또한 태양과 지구의 상대적 위치 변화, 지상의 기후 변화 순서에 따라 인간 사회의 정신적 측면과 운행, 사람의 건강, 농작물 수확 등에 훌륭한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24절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동양의 달력은 정확하게는 태음태양력, 혹은 음양력이라고 불려야 한다. 달의 변화를 기초로 태양과 별, 사계절의 변화를 모두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과 합일하는 도가(道家) 문화, 하늘을 존중하고 신을 믿으며 도를 따르는 동양의 오랜 가치관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중국의 역법은 도가 문화의 창시자인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에게서 유래해 ‘황력(黃曆)’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후 중국의 황제들은 하늘을 섬기는 일에 앞장섰고 황위에 오르거나 국가적인 큰일이 생기면 연호를 변경했다. ‘정관(貞觀)’, ‘영락(永樂)’, ‘강희(康熙)’ 등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기년법을 ‘황력(皇曆)’이라고도 불렀다.
음양의 조화 중시한 전통 사상과의 단절…‘음력’·‘농력’
오늘날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달력을 ‘농력(農曆)’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음력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달력이다.
지난 15일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특별 기고문에서는 이를 “전통적인 달력이 농업과 관련이 있고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는 것에만 유용하다”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의도적 용어 대체라고 분석했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1949년 이후 각종 선전물과 방송, 문예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전통 사회와 문화, 가치관을 ‘낡은 것’으로 왜곡하면서 농민 역시 비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 중국에서 ‘농업’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무지하고 후진적이고 저속하다는 인상을 갖게 됐다. 이는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이 아니며 전통을 파괴하려는 이념적 공작에 의해 덧씌워진 이미지라는 게 기고문의 지적이다.
기고문은 “(중국 공산당은) 인간과 하늘의 연결 고리를 끊고 전통문화를 비판하고 파괴하기 위해 황제력을 폐지하고 음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는 음과 양의 균형이라는 전통적 문화 개념을 깨뜨리려는 행위”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음(陰)’ 역시 도가의 음양에서 온 용어이며 수련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며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네 가지 낡은 것은 타파한다’는 구실로 전통 달력을 ‘농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공산주의 중국의 정부와 언론이 설날 대신 사용하는 ‘춘제(春節·춘절의 중국식 발음)’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당초 전통 사회에서는 “새해가 되면 먼저 신께 경배하고 축복함에 감사드리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추모했으며, 이어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효를 되새겼다. 마지막으로 이웃, 친구들과 축하하며 사랑과 화합을 표현했다.
춘제란 용어는 1900년대 초부터 등장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를 전방위적으로 선전하며 설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봄철의 여느 ‘평범한 날’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이용했다.
용어의 변경은 종종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을 바꾸는 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고문은 춘제에 관해 “전통문화를 비판·대체하고 무신론을 조장하는 데 필요한, 의심스러운 개명”이라며 “이름이 바뀌면서 신들의 보호에 감사하고 하늘과 조상을 기리는 전통적인 설날의 문화적 의미는 탈색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화유산은 우리의 말, 행동,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면 우리의 삶과 사회에 아름다움과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지만, 중국 공산당의 전통문화 왜곡과 변이된 문화 보급은 사회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천리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한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공산당의 전통문화 왜곡 및 말살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부터 인간과 신의 연결고리 단절, 사람과 사회의 도덕성 훼손, 진정한 문명과 번영으로 향하는 길의 파괴를 쌓아나가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기고문의 주장은 새해 첫날을 여전히 설날로 부르며 조상이 전해온 전통과 세시풍속을 기념하는 우리로서는 언뜻 체감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념에 의해 왜곡되고 망가진 문화와 역사를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마찬가지로 격변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