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남성 1년째 행방불명…아내와 두 딸, 친척도 연좌제 감시
중공 왜 두려워하나…“베이징 한복판서 ‘민중혁명’ 상징성”
작년 10월 13일, 중국 베이징 시내 고가도로에 시진핑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1주년을 맞은 올해 이날, 중국 당국은 주변 지역 검문·검색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단신으로 중국 공산당(중공)에 맞선 시위자에 대한 관심이 재차 고조됐다.
대만 중앙통신사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시위 발생 1주년이었던 전날 중국 베이징 서북부 하이뎬구 고가도로인 쓰퉁차오(四通橋·사통교) 주변에는 사복 경찰이 대거 배치돼 길을 지나는 이들을 상대로 검문 검색이 진행됐다.
하이뎬구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중국 최고 명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밀집한 곳이자, 일명 중국판 실리콘벨리 ‘중관춘(中關村)’이 위치한 핵심 도심지역이다.
작년 10월 13일 하이뎬구의 고가도로인 쓰퉁차오에는 중공 총서기 시진핑의 퇴진과 제로 코로나 중단 등을 요구하는 2장의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을 내건 이는 당시에는 ‘펑짜이저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추후 베이징 시민 펑리파(彭立發)로 밝혀졌다.
외신은 그를 1989년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맨몸으로 탱크부대를 막아낸 ‘탱크맨’을 떠올리게 한다며 ‘브리지(다리)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인들은 ‘사통교(쓰퉁차오)의 용사’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중공에 맞서는 사람들을 흔히 ‘용사’라고 칭한다. 거대한 권력과 총칼 앞에 맞선 사람들의 유일한 무기가 바로 ‘용기’이기 때문이다.
펑리파가 용기를 낸 것도 그가 아내를 둔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딸들의 미래를 위해 더는 침묵할 수 없어 베이징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올라 ‘더 나은 중국’을 위한 현수막을 걸었다.
현재 펑리파는 행방불명이다. 아내와 두 딸의 행방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앞서 아내와 두 딸은 펑리파의 고향인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의 한 농촌 마을에 보내져 당국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VOA 마카오어판은 지난 13일 기사에서 펑리파의 아내와 두 딸이 현재 베이징에서 지내고 있으며, 당국이 제공한 휴대전화만 사용할 수 있고 직장이나 학교를 오갈 때는 당국의 특수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VOA는 1년 전 사건 이후 펑리파에 관해 지속적으로 보도를 이어왔으나,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 파악했을 뿐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펑리파의 친가와 처가 쪽 식구들도 현지 공안에 불려가 심문을 받았거나 거주지가 제한되는 등의 연좌제식 처분을 받고 있다.
중국 내 민감한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들은 VOA에 “현재 펑리파와 관련된 사건이 사법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 절차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아 가족들도 별다른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공에 홀로 맞선 두 딸의 아버지
쓰퉁차오는 베이징 톈안먼에서 북서쪽으로 약 10여 킬로미터 거리로 가깝다.
펑리파가 이곳에 내건 현수막에는 ‘독재자와 국가의 도적인 시진핑을 파면한다’는 구호가 담겼다.
또한 ‘PCR검사 말고 밥, 봉쇄 말고 자유, 거짓 말고 존엄, 문화혁명 말고 개혁, 영수(지도자) 말고 선거권, 노예가 아닌 국민이 되라’는 문구도 적혔다.
중국 평론가 리닝은 “제로 코로나로 봉쇄된 중국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금지된 본심’이었다”며 “동시에 그것은 중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바로 민중의 깨어남이었다”고 평가했다.
리닝은 “현장에서 체포된 펑리파는 당국에 연행된 후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금지당했고,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지만 그의 비장한 원맨쇼는 인터넷을 통해 퍼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보인 불굴의 정신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비슷한 구호를 사용해 연대를 표시했고, 여러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도 중국 정부에 펑씨의 석방을 촉구했다”고 이후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펑짜이저우(펑리파)란 이름은 중국에서 ‘정부에 맞선 용사’라는 상징성을 갖게 됐다. 이는 1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이 현장에서 제2의 펑리파를 막으려 검문검색을 벌인 이유”라고 덧붙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4월 발표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도 펑짜이저우가 올라 있다.
혁명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중공 당국
현재 펑짜이저우는 물론 그가 저항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쓰퉁차오까지도 중공 당국의 검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서 쓰퉁차오를 검색하면 오류 메시지가 뜬다.
인근 도로에 세워졌던 쓰퉁차오 표지판까지도 철거됐다. 철저한 지우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중공이 거의 병적인 공포심을 보인다는 평가까지 내려진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반체제 활동가 린성량(林生亮)은 “사통교 사건 이후 펑짜이저우(펑리파)의 행방과 생사를 전혀 알 수 없다”면서 “하지만 민간 활동가들이 은밀히 그의 행방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6·4 톈안먼 사건 당시 학생 지도자였으며, 현재 미국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인도주의 중국’의 공동 설립자인 저우펑첸(周鋒鎖)은 중공이 펑리파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우펑첸은 “쓰퉁차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중국 당국은 여전히 펑씨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아무런 죄가 없는 그의 가족까지 연좌제로 괴롭힌다”며 “이는 중공이 펑리파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리닝은 “중공 당국은 중국인들이 ‘그날을 기억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혁명으로 일어선 정권은 결국 혁명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