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유기업, 사내 무장조직 설치…“채권자 항의 대비”

강우찬
2023년 10월 8일 오후 6:49 업데이트: 2023년 10월 8일 오후 6:49

중국 지역·대학 ‘예비군’ 조직, 최근 국유기업에 설치 확산
기업 측 “국방 예비군 강화”…평론가 “투자자 항의 진압용”

중국 상하이 시정부 산하 국유기업이 최근 사내에 군사조직을 설립해 주목을 받고 있다.

상하이뿐만 아니라 중국 내 다른 많은 지역 국유기업에서도 유사한 군사조직 설립이 앞다퉈 이뤄지면서, 당국이 대규모 군중 항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상하이청터우(城投·도시투자)그룹은 창단식을 열고 “국방 예비군 강화를 위해 인민무장부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이날 창단식에는 회사 고위간부 3명 외에도 인민해방군 상하이수비대 사령관인 류제(劉傑) 소장과 정치위원 후스쥔(胡世軍) 소장 등 고위장교 4명이 참석했다. 이는 상하이청터그룹의 사내 인민무장부가 상하이수비대에 직속됐기 때문이다.

상하이청터우그룹은 상하이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국유기업으로 도시 핵심 인프라의 투자, 건설 및 운영을 주도하는 투자회사다.

인민무력부는 예비군 조직으로, 중국에서는 각지 행정구역과 대학 등에 설치돼 있으며,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산하 국방동원부에 소속돼 후방 예비군 역할을 담당한다.

중국에서 지역이나 대학 내 인민무력부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나, 주요 도시 국유기업의 인민무력부 설치는 최근 두드러진 현상이다.

신화통신 등 관영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올해 초 우한농업집단 등 9개 국유기업이 사내 인민무력부를 설치했고 8월에는 광둥성 후이저우(恵州)시에서 중국수무집단, 교통투자집단, 도시건설투자집단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또한 6월과 5월에도 각각 장쑤성 난퉁 하이안시 청젠그룹, 중량(中糧)그룹 산하 유제품 회사인 멍뉴(蒙牛)그룹이 인민무장부를 설치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그동안 지역 예비군과 대학 예비군은 많았으나, 근래들어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직장 예비군 설치 움직임이 활발한 모습이다.

이는 그동안 중국 사회에서 직장 예비군, 즉 사내 인민무력부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왜 이 시점에 국유기업 내 인민무력부 설치가 줄 잇고 있는지에 관해 의론이 분분하다. 중국 소셜미디어상에서 “기업 파산 도미노 대비”, “투자자 항의 시위 대비”, “대만 침공을 위한 군사적 준비의 하나” 등의 견해가 거론된다.

경제 침체로 전국 지방정부, 학교, 국유기업 등에서 임금체불이 급증하면서 불만을 품은 직원들의 일으킬 수 있는 집단 행동을 막으려는 사전 준비라는 것이다.

또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파산으로 거액의 손실을 입게 된 주택구매자, 투자자들의 권리 주장과 시위가 빈번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몇 개월 동안 중국 대형은행이나 국유기업 청사 앞에서는 예금계좌 동결, 투자손실 등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회사 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들에 의해 해산되는 장면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역사문화학자 장톈량(張天亮) 페이톈대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항상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군대나 무장 조직을 국유기업에 도입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헝다그룹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후 부동산 업계에서 잇따라 문제가 발생하면서 아파트 공사 중단 등으로 손실을 입은 사람들의 집단항의가 확산하고 있다”며 상하이청터우그룹 같은 도시개발회사들이 그런 문제의 한 가운데 있는 국유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중국 공산당 체제하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 중 가장 쉽게 촉발될 수 있는 것은 채권자들의 채권 회수 활동”이라며 “이런 움직임은 사회 여러 분야로 파급될 수 있어 더욱 위협적”이라고 밝혔다.

국유기업의 경영 위기는 지방정부의 재정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최근 중국 공산당은 각급 지방정부에 “허리띠를 졸라매라”며 비용절감을 지시하고 재정긴축 요구 통지를 반복해왔다.

지방정부의 막대한 부채에 대해 중국 공산당 수뇌부인 중앙위원회는 “각자 부담”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손내밀지 말고 알아서 상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누적된 재정위기에 불꽃을 당긴 부동산 시장 위축은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의 부동산 개발업체 규제 강화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지방정부로서는 다소 억울한 입장이다.

중앙정부는 2020년 8월부터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채 비율을 줄이려 규제를 강화했고, 부동산 업체의 유동성 위기는 지방정부 재정수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중국 지방정부들은 재정수입의 30% 이상을 토지사용권 매각에 의존해왔으나, 최근 통계에 따르면,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은 이전의 20~30%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편, 올해 2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지방정부 융자플랫폼(LGFV)’의 부채가 무려 66조 위안(약 1경2182조원)이라며 중국 전체 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

LGFV의 부채는 중국 정부의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아 ‘그림자 부채’로도 불리며, 이번 IMF 추정치는 전년 57조 위안(약 1경521조원)에서 15% 증가한 수치다. 천문학적 규모의 빚이 매년 무섭게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