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줄 돈이 없다…中 급여삭감, 이번엔 의료계로 확산 조짐

강우찬
2023년 10월 3일 오전 10:29 업데이트: 2023년 10월 3일 오전 10:29

베이징 유명 병원 야근수당·성과급 50% 삭감
중국 의사 65% “급여 깎였다”…“올랐다” 6%

경기 침체로 중국 민간 기업에서 시작된 급여 삭감이 공무원·교사·은행원 등 ‘철밥통’ 직종을 넘어 의료계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3대 경제전문지 중 하나인 ‘경제관찰망’에 따르면 최근 베이징퉁런(同仁)병원은 소속 의사들의 야근수당과 성과급을 각각 50% 삭감했다가 의사들의 항의에 성과급만 삭감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베이징퉁런병원은 급여 지급일이었던 지난 8월 30일 아무런 사전 서면 통지 없이 소속 의사들에게 야근수당과 성과급을 절반만 입금했다. 일부 부서만 전화와 긴급회의로 삭감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아침에 성과급과 야근수당이 반토막 난 의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 병원의 야근수당은 응급병동 일일 130위안(약 2만4천원), 일반병동 90위안(약 1만7천원)이었으나, 이번 삭감으로 각각 65위안, 45위안으로 줄었다. 결국 원상복구됐으나 의사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병원 안과 소속 한 의사는 “야근수당은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14시간을 채워야 지급된다. 야근을 마치고 병동에서 일하거나 외래 진료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야근수당을 반만 지급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말했다.

급여의 약 60~70%를 차지하는 성과급은 절반 삭감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 병원 의사 월급은 기본급 3천~4천 위안(약 55만~74만원)에 직급과 업무량에 따른 성과급과 야근수당 등으로 구성된다.

보도에 따르면, 한 의사는 성과급이 약 1만5천 위안(약 278만원)이었으나 이번 급여 삭감으로 총 월급이 1만 위안(약 185만원)으로 주저앉아 생계가 곤란해진 상황이다.

베이징퉁런병원은 중국 5대 명문 의대 중 하나인 베이징 서우두(首都)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중국의 3차 의료기관이다. 1886년 설립돼 140년 역사를 지녔으며 안과와 이비인후과 분야에서 중국 국가핵심 병원으로 지정됐다. 보건당국 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인 3A급을 획득했다.

중국 최고 수준의 대형 병원이 의사 급여를 삭감했다는 소식은 경기 침체와 맞물려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경제관찰망은 “업계 선두권 대형병원의 대폭적인 급여 삭감에 더 많은 병원이 뒤따를 수 있다”며 “많은 의사가 수입 감소를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퉁런병원 한 의사는 “베이징의 다른 대형병원들에 비해 퉁런병원 실적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50% 삭감은 전국 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라 평가했고, 국립 베이징중의약대학의 한 부속병원 의사는 “퉁런병원의 급여 삭감 조치를 믿기 어렵다”며 “전국으로 번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간쑤성의 한 3A급 병원 소속 신경외과 의사인 장(張)모 박사는 “퉁런병원이 급여를 깎았다면 다른 병원들도 확실히 따라 할 것”이라며 “우리 병원은 원래부터 다른 대도시에 비해 월급이 적었다. 성과급이 절반으로 줄면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장이 확산되자 병원 경영진은 “급여 지급을 잠시 보류한 것”이라며 “보류된 급여는 내년 1월에 지급하겠다”로 밝혔지만 약속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경제관찰망은 “중국의 여러 병원들이 올해 초부터 급여 삭감을 단행해 왔다”며 지난 6월 전국 병원 소속 의사 349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5%인 2275명이 “급여가 삭감됐다”고 답했으며 “올랐다”는 응답은 6%인 222명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중국 의료계는 공무원을 능가하는 안정된 직종으로 평가돼 왔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가 약한 중국에서 국립대학이나 정부기관, 군대와 밀접한 대형병원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비싼 의료비와 높은 병원 문턱은 그동안 대중의 불만 요인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의료계는 지난 수년간 대륙을 휩쓴 급여 삭감의 파도에도 가장 견고하게 버텨온 산업 분야였다. 하지만 마침내 그 최후의 보루에도 위기가 스며들고 있다.

부동산, 하이테크, 금융…총체적 난국

중국 경제를 견인해 온 부동산 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부동산 대기업의 경영 위기가 잇따르면서 기술 및 금융 분야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일부 은행은 고위직 급여를 40% 삭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시총 1위 증권사인 국영 중신(中信)증권(CITIC)은 투자은행 부문의 기본급을 15% 삭감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취업 사이트 즈롄(智聯)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상하이와 베이징의 2분기 채용 공고를 통해 제시된 급여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 6% 감소해 2015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를 나타냈다.

중국에서는 국가통계국이 올해 6월 청년실업률(16~24세)을 사상 최고인 ‘21.3%’로 발표한 후 청년실업률 발표를 중단하는 이례적인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제 청년실업률이 46.5%라는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장단단(張丹丹) 교수팀 발표도 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기술 분야 인력 컨설팅 회사의 채용 담당자에 따르면 “감봉을 당해도 실업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급여 삭감으로 처우가 나빠지더라도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직할 상황이 못 된다는 것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정적 요소가 크다는 의미다.

한국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철밥통’이란 단어는 중국어 ‘티예판완(鐵飯碗·철로 된 밥그릇)’에서 유래했다. 회사가 망할 일이 없고 급여도 안정적으로 나온다는 의미다.

공무원도 급여삭감·체불…상여금 반납까지

중국에서 한때 ‘철밥통’으로 불리며 비교적 안정적인 급여를 받았던 국유기업과 저장성, 장쑤성, 광둥성, 상하이 등 소위 경제 발전에서 앞선 지역의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급여 삭감 소식도 올 들어 잇따르고 있다.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상이(上義)현의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올해 예상 수입은 7억5천만 위안(약 1392억원)인데 지출은 31억 위안(약 5756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재정적자에 처한 지역이 중국 전역에 매우 많다는 점이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베이징시 순이(順義)구, 창핑(昌平)구, 핑구(平谷)구, 먼터우거우(門頭溝)구는 구청 공무원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같은 베이징시 조양(朝陽)에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소식통은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2017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미래형 도시 ‘슝안신구(雄安新區)’, 허베이성 바오딩(保定)시를 제외한 중국 북부 여러 지방정부가 공무원 월급을 한 달씩 체불했다고 전했다.

동북부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의 공무원들은 수개월째 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상하이시 공무원들도 과거엔 연간 상여금이 5만~6만 위안이었으나 현재는 1만~2만 위안에 그친다.

장쑤성 난징시에서는 올해 5월 말부터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시작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장쑤성 양저우시가 소속 공무원들에게 상여금 반납을 요구한 통지문이 인터넷에 유출돼 논란이 됐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내부 회의에서 양저우시는 “내년 3월까지 2021년도 상여금 50% 반환을 완료하라”고 결정했다.

상여금 반납 대상자는 재직 중인 공무원뿐 아니라 이직자, 퇴직자까지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