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정평가 때문? 日 노무라 홍콩법인 임원, 中서 출국금지

강우찬
2023년 09월 30일 오후 5:19 업데이트: 2023년 09월 30일 오후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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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투자은행인 노무라그룹 계열사 홍콩법인 임원이 중국 본토에서 출국 금지를 당한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개정된 반간첩법 시행 후 해외 기업의 중국 내 사업 리스크가 다시 한번 부각되면서 투자자와 기업 관계자들의 경계심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해당 임원이 중국 경제를 저평가한 데 따른 일종의 ‘괘씸죄’도 적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노무라그룹 산하 투자은행인 노무라인터내셔널(홍콩법인)의 중국 지역 투자은행 부문 회장인 왕중허(王仲何)의 출국금지 보도에 관해 “구속됐다는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왕중허 회장이 중국 내부에서는 거동이 자유롭지만 출국은 금지됐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조치가 중국 민간 투자은행 화싱캐피탈(華興資本·차이나르네상스)의 바오판(包凡) 회장에 대한 조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화싱캐피털은 징둥, 360, 아이치이 등 중국 주요 인터넷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2022년 6월 말 기준 자산운용 규모는 4860억 위안(약 90조 원)에 달한다.

바오판 회장은 올해 2월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이후 화싱캐피털은 “바오판 회장이 중국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중국 경제전문지 계면(界面)신문 등에 따르면 이 사건은 중국 국유은행인 공산은행의 수천억 원대 부당·특혜 대출과 관련성이 제기된다.

현재 화싱캐피털의 사장인 A씨가 공상은행 산하 투자은행에서 30년간 근무하다가 바오판 회장의 권유로 화싱캐피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직전에 화싱캐피털이 공상은행으로부터 2억 달러(약 2700억원)의 거액을 대출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노무라증권 계열사 홍콩법인 회장(왕중허)의 출국금지와 함께 언급되는 것은 왕중허가 과거 공상은행 산하 투자은행에서 근무했는데(2011~2016년), A씨도 이 기간에 해당 투자은행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왕중허 회장의 출국금지에 관한 질의가 나오자 “관련 정보가 없다”며 “중국은 항상 시장주의, 법치, 국제화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원론적 입장만 강조했다.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가운데, 외신은 재직 기간이 겹친다는 점을 근거로 해외 기업 임원이 출국금지 당한 이유를 추측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무라증권의 중국 경제 저평가가 원인?

일각에서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노무라증권이 중국 경제를 낮게 평가한 것이 한 요인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중국 출신의 반체제 작가로 현재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모리화(莫莉花)는 “중국 정부는 노무라증권과 같은 아시아 유명 투자기관을 매우 경계한다. 특히 최근 노무라증권의 보고서는 중국의 경제 발전 전망을 지속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과 뉴욕에서 저널리즘 관련 상을 수상한 모리화는 “이 때문에 많은 외국 기업과 다국적 기업의 중국 관련 부서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며 당국이 왕중허를 시범 케이스로 삼아 중국 경제에 비판적인 금융전문가, 금융사를 길들이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국립정치대 법학박사 출신 평론가 라이룽웨이(賴榮偉)는 “중국의 공산주의 시스템은 항상 표면적 이유와 실제 동기가 따로 존재한다”며 “왕중허의 출국금지 조치 역시 겉으로는 부당 대출 관련 조사와 관련됐지만 이면에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라이룽웨이는 “최근 중국의 정치적 결정은 90% 이상이 부정부패, 국가안보와 관련됐다. 외국 세력과 결탁했는지, 외부에 정보를 흘렸는지 등이 주된 조사 초점이다”라며 “이번에 조사 대상이 된 금융전문가들은 중국이 감추고 싶은 경제 정보를 확보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일본 노무라증권만 중국 경제 전망이 좋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는 지난 19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상하이에 진출한 미국 기업 대부분이 중국에서의 향수 사업 전망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비관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미국 기업 40%가 대중국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5년간 사업 전망이 낙관적이라고 답한 기업은 52%였다. 이는 조사 실시 후 가장 낮은 수치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 션 스타인 회장은 “중국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면서 “기업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인데 많은 부문에서, (특히) 중국의 법률 및 규제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왕중허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도 중국 당국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저해한 사건으로 풀이된다.

라이룽웨이는 “현재 중국 경제가 좋지 않다. 외국 기업들은 들어오기보다 나가기를 원한다”며 “중국 당국의 최근 몇 달간의 행동은 중국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