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로 인구 늘린 호주 경제의 역설…생산성 저하

한동훈
2023년 09월 26일 오후 1:53 업데이트: 2023년 09월 26일 오후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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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자 급격히 늘렸지만 1인당 생산성 반비례
기술 고도화, 국가의 문화·정체성 영향도 고려해야

호주 인구가 역대 최대 폭으로 성장했다. 반면, 경제성장률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1인당 생산량은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경제학자와 야권에서는 “인구 증가가 뒷받침됐기에 이만한 성적이라도 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경제 성장을 위해 받아들인 이민자 노동력이 호주의 생산성 향상에 과연 긍정적인 작용을 했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호주 통계청은 지난 3월까지 1년 사이 인구가 2.2% 증가한 68만1천 명 늘어났으며, 이 중 81%인 56만 4천 명은 이민자 유입에 따른 증가분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19%는 국내 출생으로 인해 증가한 인구다.

이는 종전 최대 증가폭인 2008년의 2.2%와 동일한 증가폭이다. 통상 호주의 인구 통계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집계하지만 이번에 3월 기준으로 집계한 것은 작년 2월 코로나19 봉쇄가 해제되면서 이민자 인구 유입이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는 전통적으로 이민자를 통해 인구를 늘려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국경 봉쇄 후 이민자 유입이 급감하면서 인구 증대 정책에 차질을 겪어야 했다.

호주의 여성 1인당 평생 가임기간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1976년 2.06대로 떨어지면서 인구 유지가 어려워졌고, 2020년에는 1.58로 최저치를 찍었다. 2021년 1.78로 반등했으나 2022년 출산율은 1.66으로 추산되고 있다.

2021년 반등은 코로나19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부부들이 외로움 등의 영향으로 아이 출산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주의 이민자 유입을 통한 인구 증대 정책은 생산성 감소와 관련됐다. 연간 경제성장률은 12월 말 2.7%에서 올해 6월 말 2.1%로 하락하며 현저한 둔화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은 6개월 연속 감소했다. 올해 1, 2분기 1인당 국내총생산은 각각 0.3% 감소했다.

글로벌 고용동향 분석업체인 APAC의 콜람 피커링 경제 분석가는 “1인당 GDP 기준, 호주 경제는 2분기 연속 역성장해 1인당 경기불황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기술적 경기 침체 가능성은 낮다”며 “호주의 빠른 인구 증가세가 전반적 경제 활동을 지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아시아태평양의 이웃 국가들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초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022년 3.8%에서 올해 4.5%로 예상됐다. 세계은행은 올해 4월 보고서에서 2023년 아세안 전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9%로 발표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인도의 2022~2023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경제성장치를 7.2%라고 밝혔으며 다음 회계연도 성장 전망치를 6.9%로 내다봤다.

국제문제 전문가 그레고리 코플리는 “호주의 인구정책은 인구를 늘려 생산성을 키운다는 미국의 인구정책에 대한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그러나 호주와 주변국 간의 경제적 격차는 ‘인구를 늘려 국력을 키운다’는 호주의 인구정책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 태생으로 현재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협회(ISSA)’ 수석 전략가로 재직 중인 코플리는 “호주는 지역적·전략적 우위는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에너지 자원에 기반한 효율적인 경제구조와 인구 대비 상대적으로 우수한 군사작전 수행 능력으로 뒷받침됐다”고 밝혔다.

코플리 전략가는 “전략적 우위와 강점을 평가할 때, 타파해야 할 잘못된 믿음이 있다면 ‘나라의 경제 성장은 인구 증가나 인구 규모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논리가 맞는다면 중국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는 지난 수십 년 사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이들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종종 두드러지는 성과를 냈던 것은 인구 규모보다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때였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주를 통한 인위적인 인구 증가는 유입된 이민자들이 그 사회에 효율적으로 통합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적절한 제도와 정책, 사회적 공감대도 필요하다.

하지만, 호주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도 언어적 혹은 문화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마땅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코플리 전략가는 “기술적, 문화적, 언어적 호환성 등에 대한 여과장치 없이 되어가는 대로 이뤄지는 이민은 수용 국가에 여러 가지 거대한 변화를 야기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기존 인구 특성을 변경시키고 포퓰리즘 정책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구를 대규모로 늘리려 하는데 순전히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1890년 팍스 브리태니커 체제하에서 ‘규칙에 기반한 세계 질서’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세계 권력의 정점에 달했을 때 영국의 인구는 3770만 명에 불과했다. 반면 당시 국제적 영향력이 훨씬 약했던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4130만 명이었다”고 밝혔다.

“포퓰리즘 정당들, 국가 정체성 외면하고 이민자 수용 강조”

코플리 전략가는 “호주와 미국의 포퓰리즘 정당들은 문화와 국가적 가치의 보고인 지역 핵심 인구가 자연적으로 대체되지 않고 있다며 인구 증가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자국의 역사적 성취를 가능케 한 핵심 인구와 문화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이들을 (이민자들로) 대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민을 통한 인구 증가는 전략적 성장에 강력하게 기여할 수 있으며 종종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국가 고유의 교육 및 문화적 동화 시스템을 통해 본래의 국가 가치가 과도하게 왜곡되지 않도록 보장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교육과 동화 절차를 포기했을 때, 이민자 유입이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키우고 생산성 저하와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기술의 고도화로 산업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달리 단순한 인구 증가로만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코플리에 따르면, 대만 TSMC 공장의 미국 이전 계획이 가장 최근의 대표적 사례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공장의 미국 본토로의 이전은 미국 정부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있는 중요 사업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충분한 규모의 숙련된 노동력을 구할 수 없고 노조의 반대까지 겹치며 계획이 1년여 늦춰지고 있다.

코플리는 “이는 미국 정부가 장려하는 비숙련 비영어권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는데도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도시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는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대체로 인구 증가를 집권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인구의 결속력과 문화적 핵심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미국과 호주는 한때 기술력을 지닌 외국인 이민자를 받아들여 일부 생산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자유롭고 자립적인 개인을 바탕으로 역동성을 발휘했던 과거와 달리, 갈수록 정부에 의존적인 인구가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