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총리 “국경 없앤다고 전쟁 없는 세계 될까…유토피아적 발상”

유엔총회 연설서 일방적 난민 수용정책 비판
“자선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해야” 대안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제78차 유엔총회’ 하이라이트인 일반토의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일반토의(General Debate)는 유엔 193개 회원국 정상·총리·장관 등 대표들이 연단에 올라 자국 주요 대외정책과 글로벌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외교무대다.
20일에는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연설자로 나서 “국가가 없고, 국경과 정체성이 없는 세계가 전쟁·분쟁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유토피아적이고 이기적인 주장”이라며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멜로니 총리는 먼저 유엔 총회의 설립 취지를 상기시켰다. 그녀는 “유엔 총회는 1945년 제정된 유엔 헌장에 따르면, 국가 및 민족들의 공동체이자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공유하는 자리로 탄생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유엔총회의 기본적 전제로 ‘국가’와 ‘이성’을 들었다. “국가는 민족적 소속감을 느끼며 같은 역사적 기억, 같은 법, 같은 관습과 전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일종의 “정체성”이다. 아울러 이성은 무력보다 더 효과적인 “국제 분쟁의 해결책”이다.
즉, 멜로니 총리는 이날 일반토의 연설에서 국가(정체성)와 이성을 기본 요소로 설립된 유엔총회가 국가·국경·정체성을 없애면 전쟁과 분쟁을 없앨 수 있다는 발상을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
이는 최근 아프리카 난민과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여러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정상으로서 ‘수용적 정책’을 주장하는 일부 좌파 사상가들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난민 유입이 폭증하며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좌파 엘리트들이 관용적 정책을 주장했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센 비난을 받았고, ‘난민 반대=극우’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난민 문제는 인도주의적 접근이 요구되지만, 난민을 가장한 불법 입국 및 범죄자 유입 등 우려가 존재한다. 대량으로 유입된 난민은 해당 국가의 공동체와 민족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난민 브로커’도 문제로 지적된다.
멜로니 총리 역시 이날 연설에서 대량의 불법 이민을 거래하는 인신매매 조직을 “현대판 노예상”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불법 이민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을 이루면서,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부러 혼란을 일으켜 수천만 명을 난민 행렬에 오르게 만들고 손쉽게 수익을 챙기는 범죄 조직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총리는 “이들(범죄조직)은 더 나은 삶을 찾으려 이주하는 이들에게 마치 일반적인 여행사처럼 유럽 여행 상품에 수천 달러를 지불하게 하지만, 상품 설명서에는 안전하지 않은 선박이 지중해에 침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들을 속여 엄청난 부를 쌓은 인신매매 조직이 가져온 이민 문제로 인해 마약, 무기 밀매, 성매매 강요 등 여러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며 “이런 조직범죄에 맞서 국제적 협력을 주도하는 것이 유엔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대안으로 “이탈리아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며 자선 대신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이익이 되는 프로젝트와 전략적 투자를 제시했다.
또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에 대해서도 유엔의 국제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멜로니 총리는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최적화하는 방식의 발전을 추구해 왔지만, 오늘날에는 인간의 능력을 대체할 위험이 있는 발전을 마주하고 있다”며 “(이런 발전은) 특히 고용시장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윤리적 경계를 존중하는 기술 개발과 인류를 위한 기술 진보를 보장하는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10월 취임한 멜로니 총리는 후보 시절 극우성향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취임 후에는 중도우파에 가까운 온건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공산주의 중국과 난민, LGBT 문제에 있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