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한 왕이 中 외교부장 이번엔 자숙설…유엔총회 불참 전망

강우찬
2023년 09월 15일 오후 4:42 업데이트: 2023년 09월 15일 오후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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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고위 관리들 잠적·낙마 잇따라
“시진핑, 외교 부문 고위층 불신감 커져”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장관) 겸 공산당 중앙위원회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자숙설에 휩싸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전문 시사평론가 한롄차오(韓連潮)는 13일 엑스(X·구 트위터)에 “왕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라며 “왕 부장이 자택에서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적은 최근 중국 군부과 정계에서 잇따라 목격된 고위층의 ‘잠적 후 숙청’ 상황과 맞물려 관심을 얻고 있다. 한 달간 사라졌다가 면직된 것으로 밝혀진 친강(秦剛) 전 외교부장이 대표적이다.

또한 로켓군 전 사령관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 전 정치위원 쉬중보(徐忠波)가 모습을 감춘 후 수개월 만에 낙마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최근에는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이 2주 넘도록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어 신변 이상설의 주인공이 됐다.

한롄차오는 “(왕이가)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서 리창(李强) 총리를 수행하지 못한 것이 이 때문”이라며 “같은 이유로 오는 19일부터 열리는 미국 뉴욕 UN 총회에 불참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왕이는 지난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리창 중국 총리를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불참했으며, UN 총회에도 한정(韓正) 국가부주석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에는 왕이가 참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중국 관리들에서 흘러나온 바 있다.

대만 매체들은 왕이의 자숙설과 관련해 지난달 23일 브릭스 정상회담 때 벌어진 시진핑의 행사장 입장 해프닝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날 시진핑은 자신의 입장 순서에 따라 행사장에 들어섰지만, 그를 뒤따르던 통역으로 추정되는 수행원은 현지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해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를 모른 채 걷던 시진핑의 모습 뒤로 벽에 밀쳐져 바둥거리는 수행원의 모습은 웃지 못할 코미디가 됐다.

시진핑은 뒤늦게 돌아보고는 당황한 듯 잠시 멈춰 서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이 모든 과정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가면서 시진핑은 체면을 구겼다. 이 사건으로 왕이 외교부장이 책임을 지고 자숙하게 됐다는 게 대만 매체들의 추측이다.

한롄차오는 또한 퇴임한 지 15년이 넘은 리자오싱(李肇星) 전 외교부장이 재등판한 점을 언급하며 “현재 (중국) 외교부 내 누구도 시진핑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자오싱 전 부장은 2007년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지난 7일 열린 중국-호주 고위급회담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친강 전 외교부장 숙청으로 촉발된 외교부에 대한 시진핑의 불신이 과거 인사들을 중용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편, 이번 사건이 오는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계획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이번 APEC에는 시진핑이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중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으로 어려움에 처한 시진핑이 바이든 대통령과 대면 만남을 통해 돌파구 마련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의 불신감이 중국 외교부 고위층으로 번지면서 이러한 계획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 많은 업무를 시진핑 스스로 부담하게 되면 결국 업무 과중으로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집권 초 오랜 측근인 왕치산(王岐山)을 감사기관 수장으로 앉히며 반부패 사정으로 권력을 굳혔다. 그러나 사정의 칼날은 왕치산의 주변 인물에게도 향했고, 왕치산 자신은 숙청을 면했으나 이후 국가부주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정적들이 쓸려나간 빈자리는시진핑의 측근들로 채워졌지만, 집권 3기에 접어들면서 그 측근마저 ‘실종’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일을 시진핑이 직접 선택하고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프랑스 RFI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밀실 행정이 모든 것을 어둡고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다”며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