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중관계 냉각에 독일 도시들 중국과 우호관계 줄줄이 철회

한동훈
2023년 09월 07일 오후 1:40 업데이트: 2023년 09월 07일 오후 2:45
P

독일의 여러 도시가 중국 도시들과의 우호도시 결연을 취소하거나 계획을 철회하는 등 중국 공산당(중공)과의 협력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 가운데 중국과의 협력에 가장 열렬했던 독일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온건한 태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을 줄이는 ‘디리스킹(선제적인 위험 완화)’이 시행 중이다.

독일 여러 도시들도 이러한 중앙정부 기조에 발맞춰 중국 도시들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유럽을 향한 관문’을 자처했던 인구 50만 뒤스부르크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손잡고 2018년부터 야심 차게 추진하던 ‘스마스 시티’ 사업을 지난해 11월 중단했다.

뒤스부르크는 지난 10년 가까이 중국과 경제·무역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한때 ‘차이나 시티’로 불렸으나, 화웨이가 중공 인민해방군과 깊게 관련됐으며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는 비난 여론이 제기되자 방침을 선회한 것이다.

지난 2014년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방문을 계기로, 뒤스부르크는 중국이 진행하는 글로벌 경제 벨트 구상인 ‘일대일로’의 유럽 내 주요 거점이 되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위해 중국 양대 국영 해운사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의 뒤스부르크 항만 지분 획득도 허용했다.

코스코는 뒤스부르크에 유럽 최대 내륙항구 터미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지난해 6월 지분을 모두 매각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사실상 계획을 백지화했다는 신호로 풀이됐다.

뒤스부르크시의 대중 관계 담당관 마르크스 투버는 “시민 여론이 달라지면서 정치적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며 현재 시 당국이 ‘차이나 시티’라는 칭호를 반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군항 킬(Kiel)시는 칭다오와의 우호도시 계획을 중단했다.

현재 독일 해군 기지 및 잠수함 건조 시설이 들어선 킬은 자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한국, 터키 등에 군함 및 잠수함을 공급하는 독일 방산의 핵심 도시다.

킬과 그 주변 지역은 독일에서 가장 많은 해군 및 군사시설과 관련 산업체가 집중된 곳이다.

시 북부에는 독일 최북단 지역인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주의 지역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30㎞ 떨어진 곳에는 발트해에서 유일한 독일 해군 심수항인 에케른푀르데 항구가 자리 잡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군사시설과 관련 산업기반이 위치해 있다.

중국 칭다오는 항구도시라는 공통점을 내세워 지난 수년간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해 왔고, 킬 역시 이러한 제휴에 적극적이었다. 올해 3월에는 중국 측이 우호관계를 새롭게 격상하자고 제안했고 킬 시의회도 신속하게 합의했다.

그러나 넉 달 후 상황은 180도 반전됐다. 시 정부는 칭다오와의 우호도시 계획을 동결했고 “추가적인 협력은 요청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킬 대학의 국제안전정책연구소(ISPK)의 소장인 요아힘 클라우저는 “중국은 우호도시나 학술 교류 명목으로 기밀정보를 절취한다”며 “학술 교류의 목적은 순수한 학술적 동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아니라 학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려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클라우저는 현지 언론 NDR와의 인터뷰에서 “시 정부는 이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이 지역의 연구소와 기업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 건조 기술과 수중 작전 능력에 관한 정보와 연구 등이 중국 해군에 매우 필요한 정보라고 경고했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수년 전만 해도 독일 국내에서는 중국과의 지자체 수준의 협력, 우호도시 결연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여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앙겔라 메르켈 정권하에서 중앙정부 기구들은 중공과의 거래를 “리스크가 아니다”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독일 정부는 메르켈 정권 시대에 16년간 이어진 친중 정책을 정식으로 종료했으며, 독일 각 지자체와 도시에서는 중공과의 협력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독일 각 대학으로 퍼진 공자학원에 대한 경계도 포함됐다.

독일 내 주요 중국 교민 단체와 커뮤니티들의 집결지로 꼽히는 뒤셀도르프도 중공에 대한 주민들의 경계심이 고조되면서 지역 내 최대 중국인 행사인 ‘차이나 페스티벌’을 중단했다.

뒤셀도르프시는 2010년부터 쾰른, 뒤스부르크 등 서부지역 도시들과 함께 매년 번갈아 가며 ‘차이나 페스티벌’을 개최해 왔으나, 올해 8월 “두 도시와 번갈아 개최하는 형식에 대한 재검토와 더 인기 있는 축제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9월 예정했던 행사를 전격 취소했다.

이는 독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최근 차이나 페스티벌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진 것과도 관련됐다.

지난해 뒤스부르크 차례 때는 주최 측인 시에서도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페스티벌에 대한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고, 참가자들 역시 대부분 중국과 관련된 사람들이었으며 일반 독일 시민들은 적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데는 독일과 중국 관계가 냉각된 점, 페스티벌이 중국 자금으로 운영되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광학연구로 유명한 중부 예나(Jena)시가 지난 5월 광저우와 협의 중의던 우호도시 체결을 잠정 보류했다.

일련의 움직임은 최근 독일 사회에서 중공과 중국 정부에 대한 견해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크탱크인 독일경제연구소(IW)의 유르겐 마테스는 “독일은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 이후 (러시아에 대해) 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신중한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테스에 따르면 독일은 의료산업과 IT제품 분야에서 중국의 부품과 원재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존도를 낮춰 자국이 처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각 도시에서 중공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 역시 경제적 의존도를 줄여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관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