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종이 빨대, 생분해 안 되는 유해 화학물질 검출

나빈 아트라풀리
2023년 08월 28일 오후 4:19 업데이트: 2024년 01월 31일 오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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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 유럽 유통 종이빨대 90%에서 PFAS 검출
코팅 과정에서 사용 추측…사용 중단된 발암물질도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나온 ‘친환경’ 종이 빨대가 인체와 환경에 똑같이 유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벨기에 앤트워프대학의 환경과학자 티포 그로핀 박사가 주도한 국제공동연구팀이 유럽에서 유통되는 빨대 제품 39종을 분석한 결과 종이 빨대 20개 중 18개(90%)에서 과불화화합물(PFAS)이 검출됐다.

대나무 빨대는 5개 중 4개(80%), 유리 빨대는 5개 중 2개(40%)였다. 플라스틱 빨대는 4개 중 3개(75%)였다.

PFAS는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 중 수소가 불소로 치환된 물질이다. 탄소와 불소는 유기화합물 중 가장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이나 오일, 오물을 밀어내는 특성이 있어 의류, 화장품을 비롯해 다양한 일상용품에 사용된다.

반면, 자연상태에서 매우 느리게 분해돼 수천 년 동안 지속되며 동물과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기 때문에 ‘영구 화학물질’로도 불린다.

연구팀은 빨대가 젖어서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PFAS로 코팅한 것이 종이나 대나무 빨대에서 PFAS가 검출된 원인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식품첨가물과 오염물질(food additives and contaminants)’에 실렸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이러한 ‘친환경’ 식물 기반 빨대(종이·대나무)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PFAS 노출의 추가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더 지속 가능한 대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장 지속 가능한 빨대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빨대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빨대는 재사용이 가능하며 PFAS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에서 검출된 PFAS는 총 18종으로 일부는 신장암, 갑상선 질환, 고환암 및 기타 질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가장 많이 검출된 PFAS는 과불화옥탄산(PFOA)이었는데, 프라이팬이나 일회용 음식 용기 코팅에 널리 쓰인 재료로, 발암물질 논란이 일면서 2020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다.

연구에서 검출된 PFAS는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소량이었다. 다만, 한번 흡입되면 배출되지 않고 신체에 남아 시간이 지나면 축적될 수 있다.

온라인 저널 제공업체인 ‘테일러앤드프랜시스’의 25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로핀 박사는 “소량의 PFAS는 그 자체로는 해롭지 않지만 체내에 이미 존재하는 화학적 부하를 가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로핀 박사는 또한 보도자료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빨대에서 PFAS를 검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이러한 유형의 빨대를 사용하거나 아예 빨대 사용을 피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전했다.

식물 기반 빨대(종이 빨대)에서 PFAS를 검출한 연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논문 정보 사이트인 사이언스다이렉트(ScienceDirect)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2020년 초 아마존에서 구매한 생분해성 빨대 브랜드를 조사해 36종에서 검출 가능한 수준의 PFAS를 발견했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플로리다대 수의학과 존 보우덴 교수는 “종이 빨대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빨대가 사람들의 입 안에서 부서지고 음료수에 빨리 분해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2021년 4월 미 매체 ‘환경보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존 교수는 “PFAS로 종이 빨대를 코팅하면 액체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된다”며 “PFAS의 탄소-불소 합은 화학에서 가장 강력한 결합의 하나로 매우 끈질기고 물을 밀어낸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분해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있는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매장에 비치된 종이 빨대. | 연합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특정 PFAS 화학물질의 수치가 높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고, 간 효소가 변하며, 영아 출생 시 체중 감소, 어린이의 백신 반응 감소, 임산부의 고혈압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CDC는 동물 연구를 인용하면서 PFAS 수치가 높으면 면역체계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일부 동물에서 선천적 결함, 발달 지연 및 신생아 사망을 유발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달 한 환경단체가 PFAS로 인한 수질 오염 실태를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환경실무그룹(EWG)은 미 환경보호국(EPA) 데이터를 분석해 미국인 2600만 명이 식수에 섞인 화학물질에 영구적으로 노출될 수 있으며 431개 식수원에서 PFAS가 보고 기준 이상으로 검출됐다고 밝혔다.

EWG는 지난 17일 보도자료에서 “수십 년 동안 미국인 수백만 명이 PFAS로 오염된 물을 자신도 모르게 섭취해 왔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공공·민간 식수원 716개에서 표본을 채집해 조사한 결과 45%에서 평균 한 번 이상 PFAS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지역별로는 도시 지역은 농촌 지역보다 PFAS 노출 위험이 더 높았다. 도시 지역은 70% 이상 지역에서 PFAS가 검출됐으나 농촌 지역에서는 8%에 그쳤다.

한편, 그로핀 박사가 주도한 국제공동연구에는 앤트워프대학 약학부 독성학 센터 소속이자 한국환경연구원(KEI) 환경보건연구실의 정윤선 박사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