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 ‘시진핑 사상’ 학습 의무화…외국계 기업까지 확산

강우찬
2023년 08월 27일 오후 3:07 업데이트: 2023년 08월 27일 오후 3:07

시진핑 3연임 확정 후 시진핑 사상 학습 확대
블룸버그 “기업 임원, 근무시간 3분의 1 투입” 

중국 금융업계와 국유기업에서 시작된 ‘시진핑 사상’ 학습 캠페인이 외국계 기업들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시진핑 정권의 이념에 의한 통치가 재계에서도 강화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상황을 보도하며 “매주 몇 시간씩 시 주석의 난해한 말을 숙고하는 데 시간을 쏟는 일이 유용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중국 금융계와 재계에서 ‘시진핑 사상’ 학습이 확산한 것은 지난 3월 시진핑의 국가주석직 3연임 확정 이후부터다. 시진핑은 4월 초 연설을 통해 “우리 당은 언제나 이론 무장을 중시해왔다”며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를 강조했다.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시진핑이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제시한 통치철학이다. 중국 내 모든 것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지도력 보장,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등의 실천, 민족 통일을 위한 일국양제 및 하나의 중국 유지 등 14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시진핑은 이를 기반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통치를 중국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진핑 사상’은 중국 기업인에게 회피하거나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주제가 됐으며, 이는 외국 기업과 접촉이 잦은 금융계도 예외가 아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 개정한 반간첩법’을 시행하며 간첩행위 범위를 크게 늘리고 처벌을 강화한 이후 외국인 사업가들 사이에서 “중국 측 임원과 협상할 때 시진핑의 발언을 인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예 외자 기업 직원들에게 시진핑 사상을 학습하라고 직접 요구하기도 한다. 세계 최대 투자관리회사인 블랙록 같은 다국적 기업은 규제 당국으로부터 직원들을 ‘시진핑 사상’ 강의에 참석하도록 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중국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중국국제금융투자공사(CICC)는 지난 수개월간 ‘시진핑 사상’ 학습을 강화했다. 당국이 학습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국유은행인 교통은행은 2022년 말부터 매월 모든 부서에서 ‘시진핑 사상’ 학습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별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시진핑이 새로운 발언을 할 때마다 학습회도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의 한 국유 에너지회사 직원은 시진핑의 최신 발언을 주제로 한 회의가 늘면서 근무 중 임시 교육이 잦아지고 있으며, 격리된 공간에 휴대전화를 내놓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 긴급한 업무 연락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은행의 임원이나 기업 책임자는 근무시간의 3분의 1을 시진핑 사상 학습과 관련 활동 참가에 할애하고 매월 시진핑 서적 4권을 읽어야 하는 실정이다. 참석은 일단 올해는 의무이며, 연말까지 학습한 내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공산당 간부들도 ‘시진핑 사상’ 학습

간부들도 시진핑 학습을 피해 갈 수 없다. 지난 5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따르면, 시진핑의 측근인 차이치(蔡奇) 중앙서기처 서기는 시진핑의 연설을 “수준 높고 예리하고 심오하며 내용이 풍부하다”고 극찬하면서 현급 이상 간부들에게 “일주일 이상 집중적으로 학습하라”고 촉구했다.

인민일보는 같은 달 또 다른 기사에서 “중앙 관리기업과 중앙 관리금융기업에서 ‘시진핑 사상’ 학습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중국 최대 금융·보험 기업인 중국생명보험(中國人壽保險)이 “교육의 조직, 참여, 운영, 책임관리에 철저하게 임할 것을 선서했다”고 전했다.

공산당의 강경한 방침에 다수 중국 기업은 ‘시진핑 사상’ 전문가를 고용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 중국교통은행은 이념 무장을 위한 사내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중국 최대 식품기업인 광밍(光明)식품그룹은 직원들을 외부 강연에 파견했다.

미국의 중국 경제학자 허칭롄(何淸漣)은 “당 간부, 중국 기업 임직원들에게는 이것이 공산당과 시진핑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며 “정부가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2023년 4월 21일 중국 광둥성 선전이공대 공산당 위원회 정보센터 지부에서 당원들이 시진핑 사상 학습회를 진행하고 있다. | 선전이공대 당위원회 정보센터 화면 캡처

외자 기업에도 당 지부 설치해 ‘관리’

중국 회사법에는 자국 기업에 공산당 위원회(당 지부)를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최소 3명의 당원이 모이면 사내 당 지부 설립이 가능하다.

사내 당 지부를 설치한 첫 외자 기업은 1990년대 상하이에 진출한 미국 듀폰으로 이후 공산당은 외자 기업 내 당 지부 확대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중국 중앙조직부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 가운데 사내 당 지부를 둔 기업은 약 70%에 달했다. 이는 2005년 중국 진출 외자 기업 160만 곳 중 1만1600곳으로 1% 미만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증가한 수치다.

2020년 12월 영국 스카이뉴스는 공산당원 195만 명의 명단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이 명단은 2016년 반체제 인사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공산당원들이 상하이의 외국 공관을 비롯해 미국, 영국, 호주 등 서방 기업의 중국 지사에 다수 재직 중이라고 나타나 있었다.

IBM의 중국 지사에는 20개 이상의 당 지부와 800여 명의 당원이 있었고, 3M에는 5개의 당 지부에 230명 이상의 당원이, 펩시에는 45명의 당원이 소속돼 있었다.

중국 국무원은 당 지부에 대해 “합자기업이나 외자 기업의 업무에 개입하지 않는 단순한 상담기관”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외자 기업 대표는 ‘정치적 압력’에 의해 공산당원을 경영진에 기용하거나 당 지부 예산 편성, 당 지부 서기(당 서기)의 이사진 편입 등 당 지부에 의한 경영 개입 상황은 여러 가지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산당원들이 외국 기업 혹은 기관 내부에서 조직을 형성해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대한 의혹은 이미 올해 중반 한 차례 국제적 수준에서 제기된 바 있다.

“조직 내 공산당원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

지난 6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캐나다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이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에 장악돼 있다는 내부 폭로와 관련해 AIIB와의 협력 전면 중단 가능성을 피력했다.

AIIB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이사로 근무했던 밥 피커드는 같은 달 14일 트위터에 “AIIB를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자신이 취임 15개월 만에 퇴임한 이유라고 밝혔다.

캐나다 국적인 피커드 전 AIIB 이사는 이 은행 조직 내부에 매우 유해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중심에 중국인, 공산당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산당원들이 은행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봤다”며 이들을 소련의 KGB나 나치독일의 게슈타포 같은 비밀경찰에 비유하며 “건드려선 안 될 금기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시진핑 사상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근무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자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 경제·제도 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자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비즈니스 스쿨 객원교수인 쉬청강(許成鋼)은 “시진핑은 중국 내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 요소들을 공산당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쉬청강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당국의 최우선 사항은 “누구도 정권과 공산당의 지도력을 위협할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 이 기사는 닝하이중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