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의원, 중국 겨냥한 ‘외국대리인등록법’ 통과 촉구

한동훈
2023년 08월 23일 오후 1:36 업데이트: 2023년 08월 23일 오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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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감춘 中 공산당 대리인 드러내는 법률
캐나다 2019년, 2021년 中 선거개입 논란
제니 콴 의원 “다음 총선 전까지 제정 필수”

앞선 총선 때 중국 공산당의 선거 개입 사실이 드러난 캐나다에서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은 중국 인권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면서 공산당의 표적이 된 제니 콴(56) 의원이다.

9살 때 홍콩에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건너온 이민자 가정 출신인 그녀는 1993년 26세로 역대 최연소 밴쿠버 시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밴쿠버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정관계를 누비며 기반을 닦았고 2015년 신민당(NDP) 후보로 연방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콴 의원은 2019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지난 5월 저스틴 트뤼도 총리의 승인으로 야당 주요 의원들에게 공개한 캐나다보안정보국(CSIS)의 기밀문서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2019년 총선 전부터 그녀를 표적으로 삼아 모종의 활동을 전개했다.

이와 관련 콴 의원은 자세한 내용은 보안상 밝힐 수 없다고 언급했으나, 다만 일종의 낙선 공작이라는 것을 시사했다. 그녀는 중국 공산당이 ‘에버그린(evergreen)’이란 표현으로 낙선 공작 등의 기한이 영구적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외국대리인등록법’은 외국 정부나 정당 혹은 단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로비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개인 및 단체에 관한 법률이다.

활동을 벌이는 국가의 정부에 정식으로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고 단체(개인) 규모나 소유 자산, 인력 변동이나 운영 현황 등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한다. 즉, 신분을 감추고 은밀하게 활동하지 말고 정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취지다.

콴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밴쿠버 지역 시민단체와 연합해, 중앙정부와 의회에 ‘외국대리인등록법안’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지난 18일(현지 시간) 밝혔다.

앞서 지난 3월 캐나다에서는 2019년과 2021년, 두 차례의 연방선거(총선)에 중국 공산당이 개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격렬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격인 연방선거관리국은 같은 달 2일 “(중국 공산당의) 선거 개입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했고, 6일에는 트뤼도 총리까지 나서서 ‘특별조사관’을 임명하고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의회 국가안보정보위원회에 외국의 간섭을 평가하는 절차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이번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의 선거 개입은 주로 야당 의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도됐다. 트뤼도 총리가 지난 5월 캐나다보안정보국의 2019년, 2021년 선거 개입 관련 기밀문건을 콴 의원 등 야당 주요의원들에게 브리핑하도록 한 조치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콴 의원은 “캐나다에 대한 외국의 간섭은 의혹이 아닌 사실”이라며 “캐나다 시민들이 그들(중국 공산당)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시민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은 캐나다 시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공산당의 선거 개입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년 총선 전까지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민주화를 추진하는 중국계 교민단체인 ‘밴쿠버중국민주화운동지원연협합회(VSSDM·이하 연합회)’의 리메이바오(李美寶) 대표는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은 다름 아닌 캐나다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리 대표는 “우리는 중국계 캐나다 이민자로서 중국의 부당한 영향력이 (밴쿠버) 교민 사회에 스며드는 것을 목격해왔다. 이제는 이러한 침투를 저지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캐나다 범야권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당인 녹색당 엘리자베스 메이 대표는 “우리 나라에는 외국대리인등록, 로비스트 등록이 필요하다”며 “국적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메이 대표의 ‘국적’ 발언은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중국인 배척법’이라고 비판하는 일각의 반응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인 배척법은 중국인의 입국과 이민을 금지한 1923년의 ‘중국인 이민법((Chinese Immigration Act)’을 가리킨다.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연합회 리 대표 역시 중국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중국인 배척법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 공산당의 대리인인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 관리들의 분열 선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국 외교공관 관리들은 캐나다에서 고조된 반아시아 감정과 인종차별 행위를 역이용해 체제 선전을 벌였다. 이들은 캐나다가 전염병에 시달리는 사이 “조국(중국)이 중국계 교민들을 돌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캐나다 신민당 소속 제니 콴 하원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촉구를 위해 시민단체와 연대해 서명운동을 확대전개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NTD 화면 캡처

리 대표는 중국계 교민들을 향해 “민주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교민들은 중국 공산당의 분열 선동에 기만당해선 안 된다”며 “외국대리인등록법과 중국인 배척법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계는 170만 명으로 캐나다 전체 인구의 4.7%를 차지했다.

특히 이 중 약 3분의 1인 51만 명이 밴쿠버 권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밴쿠버 권역 거주인구의 19.38%에 해당한다.

이는 밴쿠버 지역 중국계 유권자들의 표심이 지역 정치인의 당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중국 공산당이 이 지역에서 텃밭을 구축한 콴 의원을 낙선 운동의 표적으로 삼은 점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리 대표는 연합회를 비롯해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지역 단체들이 3년 전부터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며 각계각층을 만나 취지를 알리고 설득하는 작업을 해왔다며 “외국의 영향력을 투명하게 하는 법안은 꼭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서는 지난 6월 15일 최재형 의원(국민의힘)이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 의원은 미국, 호주, 싱가포르에선 이미 법이 제정됐고 영국과 캐나다에서도 제정 움직임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불특정한 외국 정보기관의 영향력 공작 활동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덧붙여 “(법안이 제정되면)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도청, 요인 포섭 활동을 억제하고, 언론과 여론을 조작하는 악성 영향력 공작 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