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지난 7월 1일부터 ‘반간첩법(방첩법) 개정안’이 발효된 가운데 앞으로 간첩죄 적용 범위가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중국 학자의 주장이 제기됐다. 호주 시드니 과학기술대 중국 연구 책임자 펑충이(馮崇義) 박사는 “‘간첩죄’도 주머니죄가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범죄 혐의자를 처벌할 마땅한 죄명이 없을 때 ‘주머니죄(커우다이주이·口袋罪)’를 적용한다. 기존의 형법 조항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 유사한 조항을 찾아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다. ‘반혁명죄’ ‘깡패죄’ ‘투기꾼죄’가 전형적인 주머니죄에 해당한다.
중국 현대사를 전공한 펑 박사는 중국 명문 국립 중산(中山)대를 거쳐 난카이(南開)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호주 시드니 과학기술대 중국 연구 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그는 2017년, 중국 인권변호사 집단 체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정부에 의해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다행히 중국 탈출에 성공한 그는 훗날 “중국에 묶여 있는 동안 정부 관계자와 매일 5시간씩 면담했다”며 “그들은 내게 간첩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고 밝혔다.
펑 박사는 6월 30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 중국어판과의 인터뷰에서 “개정된 반간첩법에 의하면 간첩죄 적용 범위는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모든 중국인,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이 주머니죄에 해당하는 간첩죄로 체포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개정된 반간첩법에 의하면 ‘외국 간첩 조직이나 그 대리인에게 빌붙는 행위’ ‘중요한 정보를 보유한 기관의 인터넷을 해킹하는 행위’ 등은 모두 간첩행위에 해당한다. 펑 박사는 “빌붙는 행위란 어떤 행위인가? 누가 간첩 조직의 대리인인가?”라고 반문하며 “외신 기자, 외국 대사관 직원 등과 만나는 것은 모두 외국 대리인을 만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중요한 정보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인가?”라며 “대부분 국가는 기밀 정보·서류를 분류하는 기준이 있지만, 중국 정부는 기밀 정보를 ‘중요한 정보’라 규정했다. 모호한 정치적 개념으로 간첩행위의 범위를 무제한으로 확장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 공산당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 언론인, 인권을 주장하는 시민, 사업가 등에 얼마든지 간첩죄를 적용해 탄압할 수 있다. 취재하는 외신 기자, 사업을 위해 시장조사하는 외국인 사업가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앞서 6월 27일, 홈페이지 ‘영사소식’ 란에 올린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 대비 안전 공지’를 통해 현지 교민과 중국 방문객에게 위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중국 당국에 체포·연행될 경우 한국 공관에 연락하고 영사접견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라고 공지했다.
대만 정부도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 하루 앞둔 6월 30일, 자국민에게 “대만 입법위원(국회 의원), 학자들 가운데 중국 해관에서 긴 시간 심사 끝에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한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며 중국 여행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서방 국가들은 2017~2018년부터 잇달아 중국 공산당 침투 제재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중국 당국은 서방의 이러한 정책에 대응하는 한편 중국 사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반간첩법을 개정했다는 게 펑 박사의 견해다.
해당 법안을 통해 중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펑 박사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많은 중국인이 중국 당국의 속셈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깨어난 시민들의 반항은 점점 거세질 것이다. 중국 사업을 운영하는 외국인들은 점점 중국을 멀리할 것이며 외자 이탈도 가속화될 것이다. 개정된 반간첩법 실행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 정권과 중국 사회, 자유세계와의 대립은 더 첨예해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개정된 법안에는 ‘간첩 혐의자를 제보한 자에게 현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펑 박사는 “현상금을 타기 위해 타인을 허위로 고발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사회 도덕을 급속히 타락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