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패션 브랜드 쉬인, 인플루언서 초청 통해 ‘이미지 세탁’ 시도했다가 역풍

강우찬
2023년 07월 2일 오후 1:14 업데이트: 2023년 07월 3일 오후 1:36

중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쉬인(SHEIN)’이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이미지 세탁을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저렴한 가격에 트렌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특징을 내세운 성장은 지난 수년간 급속히 성장하며 패스트패션 여성복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과 강제노동 의혹, 노골적인 타 업체 디자인 베끼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인체에 유해한 원료를 사용하고 대량의 폐기물을 생성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의혹에도 휘말렸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려 쉬인은 지난 6월 중순, 미국의 유명 패션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 6명을 엄선해 중국 남부 광저우의 ‘혁신 공장’으로 초청해 투어를 진행했다.

총 4일간의 여행 비용은 전부 쉬인 측이 부담했다. 6명의 인플루언서들은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 항공권을 제공받았고 투어 기간 고급 호텔에 숙박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곧 중국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영상에는 깨끗한 공장,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인스타그램에 50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을 ‘자신감 활동가(confidence activist)’로 소개해온 다니 카르보나리(Dani Carbonari)는 “인간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자동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카르보나리가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또 다른 영상에는 자신을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라고 소개한 한 공장 직원이 미국에 퍼져 있는 중국 기업의 강제노동 등 부정적 정보에 관해 마치 처음 듣는 사실무근의 헛소문처럼 반응하며 놀라워하는 장면이 담겼다.

그녀는 “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독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실을 알게 됐으며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쉬인에 관해) 퍼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여행은 진실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에는 강제노동 등 쉬인에 관한 부정적 정보가 퍼지고 있지만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봤더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다른 인플루언서들도 비슷한 영상을 잇달아 올렸다. 틱톡에서 4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데스틴 수더스(Destene Sudduth,)는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줄로 예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모두 평범하게 일했다”며 “앉아서 근무했고 땀도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마리나 사베드라(Marina Saavedra)는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보를 많이 접했었다”며 그동안 쉬인에 대해 알려진 부정적 소식들을 “잘못된 정보”라고 선언했다. 그녀의 틱톡 계정은 총 4천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3명의 인플루언서들도 각각 올린 영상을 통해 “공장 직원들은 노동에 걸맞은 임금을 받고 있다”며 아동 노동이나 비인도적 상황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평소 그들의 콘텐츠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던 팔로워들은 이번에는 전혀 다른 태도를 나타냈다.

한 팔로워는 카르보나리의 영상에 등장해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중국인을 지목하며 “그는 탐사보도 기자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취약한 근로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꼭두각시”라고 질타했다. 그 외에도 많은 댓글에서 비슷한 비판을 제기했고 결국 이 영상은 현재 삭제됐다.

그 밖에도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에는 “자신의 도덕성을 내던져가면서까지 (그들의) 선전을 도울 만큼 그 가방(명품백)이 가치 있었나”, “그들(쉬인)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런 일을 꾸민 악덕 마케팅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그들의 선전에 이용당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쉬인은 중국에 약 6천 개의 공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인플루언서 투어를 진행한 광저우의 ‘혁신 공장’은 자동화 기술이 적용된 최첨단 공장으로 6천 개의 공장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쉬인 측이 전체의 극히 일부만 보여주는 식으로 인플루언서들을 선전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쉬인이 ‘인종’을 이용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흑인 인플루언서인 카르보나리는 삭제된 영상에서 “쉬인은 자신을 브랜드 투어에 초청한 첫 번째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쉬인이 일부러 날씬한 백인 여성들을 제쳐두고 기업 후원을 적게 받는 플러스 사이즈 여성과 흑인 여성 인플루언서들을 선별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이와 관련해 쉬인은 언론의 논평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성이 도쿄에서 쉬인 쇼핑백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2.11.13 |YUICHI YAMAZAKI/AFP via Getty Images/연합

역풍으로 끝나긴 했지만 쉬인이 이미지 개선을 시도한 이유가 내년 미국 뉴욕증시에 기업공개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2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쉬인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 신청 서류를 제출한 상태다. 빠르면 올 연말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전해졌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쉬인은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옷을 구매하는 Z세대(1996년 이후 출생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맞아 의류 구매에 많은 돈을 소비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성향을 잘 포착했다.

여기에 한번 발을 들이면 한동안 앱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는 알고리즘도 한몫했다. 틱톡 등 중국 동영상 플랫폼이 사용 중인 전략을 패션 쇼핑몰에 접목한 것이다.

그러나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쉬인과 테무 등 중국 플랫폼 기업들이 강제노동과 관련됐다며 인권탄압 기업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작년 10월 발표된 영국 채널4의 탐사보도에서도 쉬인 노동자들은 하루 18시간의 노동을 강요받고 있으며 휴가는 한 달에 하루만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당된 근무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급여가 삭감된다는 내용도 보도됐다.

광저우의 쉬인 봉제공장을 잠입 취재한 기자는 “노동자들은 개 취급을 받고 있다”며 숨기고 가져간 카메라로 내부 상황을 촬영해 전하기도 했다.

앞서 2021년에는 스위스 비정부기구(NGO) 퍼블릭 아이는 쉬인이 중국 노동법을 위반해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직원들을 일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중국 노동법에서는 주당 근로시간이 44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지만, 쉬인은 근로자에게 주 75시간의 근로를 강요했으며 공장에는 비상구도 없었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박혀 있었다고 밝혔다.

쉬인은 품질 문제나 디자인 무단 사용 등도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2년간 쉬인은 미국에서 상표권·저작권 침해와 관련해 50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소송을 제기한 기업에는 청바지로 유명한 리바이스, 랄프 로렌, 닥터 마틴 등 대기업도 포함됐다.

제품의 안전성도 논란이다. 캐나다 보건부는 2021년 쉬인이 유통시킨 어린이 코트에 기준치의 20배에 가까운 납이 포함돼 있었다며 리콜 명령을 내렸다.

쉬인은 또한 폐기물도 대량 배출하는 것으로 지목됐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쉬인은 생산한 의류의 약 85%를 매립하거나 소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렴하고 품질이 낮은 의류가 환경오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의견이다.

중국 현지 투어에 관한 논란이 일자 인플루언서들은 해명성 영상을 올렸다. 카르보나리는 12분짜리 영상을 통해 “투어에 참가하기 전 더 알아봐야 했었다”며 자신이 신중치 못했음을 시인했다. 투어에 참가한 쉬인 판매자 케냐 프리먼은 “내가 실수했다”며 쉬인과의 스폰서 계약 종료 사실을 알렸다.

쉬인은 이번 방문 논란에 관해 “투명성을 중시하고 있다”며 이번 투어에 관해 “쉬인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인플루언서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주고 이들을 통해 팔로워들에게 그 내용을 공유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환경 오염 논란에 관해서는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과잉생산과 낭비를 줄일 수 있으며, 수요를 확인 한 후 공장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식을 통해 2030년까지 쓰레기 배출량을 25%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해명했다.

쉬인은 아직 한국 시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진 못하지만, 조용히 물밑 작업 중이다. 작년 10월부터는 총 3차에 걸쳐 한국 디자이너 33명을 선발해 K-패션도 흡수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카타벨라 로버트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