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흑인·히스패닉 특혜정책에 “평등 위반”
“대학, 피부색 아닌 학생의 개인 경험 평가해야”
바이든 “정상적인 법원 아냐”, 트럼프 “멋진 날”
한국 등 아시아계, 명문대 입학 형평성 개선 기대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대학 입학 시 적용하던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인종차별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기관에서 학생 다양성을 위해 60여 년간 유지되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적극적 차별 시정조치)’이 사실상 폐기됐다. 미국 대학들은 그동안 시행하던 학생 선발 전형방법을 재검토해야 한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할 때 인종이 아니라 개인이 축적한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평가할 때 어떤 도전을 했는지, 어떤 기량을 쌓았는지, 어떤 교훈을 터득했는지가 아니라 피부색을 기준으로 삼아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헌법의 역사는 그러한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종 차별을 줄이겠다며 피부색에 따라 소수인종에게 우대를 준 정책이야말로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며 미국 수정헌법에서 금지한 일이라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다만, 연방대법원에서 가장 진보성향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이번 판결은 수십 년의 판례로 이룬 중대한 진전을 되돌린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번 판결은 2014년 보수단체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A)’이 하버드대학과 노스캐롤라나이나대학을 상대로 각각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이 단체(SFA)는 학생과 학부모 등 2만 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SFA는 하버드대에 대해서는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노스캐롤라이나대에 대해서는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하고 있다며 주장해 1심과 2심에서는 패소했으나 헌법소원까지 간 끝에 위헌 결정을 받아내며 승소했다.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가 소송 대상이 된 것은 두 대학이 각각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대학, 공립대학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는 대학이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인종적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았다”며 “다양성 및 다양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학문적 이점을 얻으려 입학 기준을 제한했다”고 판결했으며, 2심 재판부 역시 이를 지지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대학 측이 인종에 가산점을 주긴 했지만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유연하게 적용했다며 대학 측 손을 들어줬다. 대학은 “현재 인종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관행을 고려할 때, 다양성 달성을 위해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사건은 2심까지 가기 전에 원고 측인 SFA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연방대법원 승인하에 연방대법원으로 이관됐다.
연방대법원은 하버드대 사건에 관해서는 6대 3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고, 노스캐롤라이나대 사건은 하버드와 관련 있는 잭슨 대법관이 빠진 상태에서 6대 2로 위헌 판결했다. 모두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소수인종 우대,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할 제도”
미국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위헌이라는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6년 퇴임한 보수성향의 산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은 2003년 그루터 대 볼린저(Grutter v. Bollinger) 사건에서 “대입에서의 특정 인종 우대는 위험하다”며 “평등 보호 조항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지지하는 판결로 끝났지만, 오코너 전 대법관은 “그러한 정책은 한시적이어야 하며 영원히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학 입학 시 소수인종을 배려하는 정책은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계기로 탄생했다. 이 명령은 정부기관 직원 채용 시 인종·신념·출신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기업 고용과 대학 입학에서 비슷한 제도 도입이 확산됐다.
이번 판결로 미국 대학들이 학생 전형제도를 손보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주요 대학의 흑인 우대에 밀려 불이익을 얻었던 한국 등 아시아계 지원자들에게 더욱 공정한 입학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미국 대학들의 인종 배려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버드대는 판결이 전해지자 발표한 성명에서 “다양성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버드대는 성명에서 “깊이 있고 혁신적인 교육·학습·연구는 다양한 배경과 관점, 경험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에 달려 있다는 기본원칙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로버츠 대법원장 역시 대학이 지원자 선발 과정에서 인종에 대한 논의를 전혀 하지 말라는 판결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인종 차별을 극복한 학생에게는 그 학생의 용기와 결단력에 근거해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며 이는 인종이 아니라 학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차별은 아직 미국에 존재하며 오늘의 판결은 차별이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각 대학을 향해 “인종이 다양할수록 우리 대학은 강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학생들의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입학전형 때 경제적 배경과 인종차별을 포함한 고난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에 관해 “무법한(rogue) 법원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상적인 법원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판결와 관련해 “미국에 멋진 날”이라고 논평했다. 트럼프 재임 전까지 연방대법원은 진보 우세 구도로 각종 진보적 판결을 내렸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보수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하며 연방대법원 구도를 뒤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노스캐롤라이나대는 연방대법원 판결과 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역시 학교의 원칙을 지키겠다면서도 “법원의 새로운 판단에 어긋나지 않도록 우리의 본질적 가치를 유지할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매튜 밴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