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 합리적인가…“필수 의료 인력난 해소에 도움 안 돼”

이윤정
2023년 06월 29일 오후 5:14 업데이트: 2023년 06월 29일 오후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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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후 3시,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변호사회관 10층에서 의료인력 쏠림현상을 비롯해 필수의료 붕괴의 원인을 짚어보고 의료제도개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의대정원 증원, 과연 합리적인 결정인가’ 주제로 열린 포럼은 자유통일을 위한 국가대개조네트워크(NRNet)와 보건복지분과, 의료포럼이 주관하고 BT & Liberty, 펜앤마이크,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공동 주최했다. 이번 포럼은 ‘의료인력 쏠림현상’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불합리한 의료 수가제와 단일보험공단에 대한 논의·성찰이 필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의도에 대해 ▲필수 의료 분야 전공자 고갈 및 그로 인한 의료 공백 ▲수도권 중심의 의료서비스 체제로 인한 지방 의료 붕괴 ▲과잉 진료에 따른 의료비 증가 등 많은 담론을 의사 수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파악한 정부의 해결책 등을 분석했다.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 자유통일을 위한 국가대개조네트워크 제공

박 교수는 한국 의료정책 변천사를 통해 오랫동안 잠재돼 온 한국 의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선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으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꼽았다. 적자의 지역의료보험이 남아있는 직장의료보험 준비금을 이용하고자 시행한 의료보험 통합으로 진료전달체계의 붕괴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또한 박 교수는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상급병원 가산금이 경증 질환에도 적용돼 3차 혹은 상급병원에 몰려드는 경증 환자까지 진료하며 개원가와 경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병원의 의료인력 흡수로 2차 병원이 의료인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이 밖에도 박 교수는 △저비용, 저수가로 인한 과잉 진료와 과잉 의료소비 조장 △실손보험 등장으로 인한 비보험 진료 증가와 그로 인한 필수 의료인력의 비급여 진료영역 이동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인력난 해소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공의대 출신 의사라고 해서 과연 공공 영역에서만 활동하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자기 지역구에 의과대학을 유치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더불어 새로운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면이 있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 근무 시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드니 대형병원은 급작스레 인력난이 발생했다”면서 “그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환자 안전은 더욱 불안해졌고, 전공의들의 필수 의료 분야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거대 담론을 통해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며 “국민의 의료 소비 패턴과 의료진의 진료 행태도 서서히 물길을 돌려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필요한 적정 의료인력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잉진료, 과잉 의료 소비를 방치한 채 현재 시점에서 필요 의료인력을 논하는 것은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현상 유지에 필요한 치료만 하는 것으로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와 관련해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의료 현안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 자유통일을 위한 국가대개조네트워크 제공

이 교수는 “의료 시장의 왜곡 문제로 필수 의료를 회피하고 의료 보험의 가격 통제를 벗어나며 의료 사고의 위험이 적은 쪽으로 의료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우려는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응급 진료 시설과 인력 부족에 대한 우려는 오래된 사회적 이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의료계가 의대 정원의 확대에 반대하는 논리를 “지금처럼 가격의 왜곡 상태에서 인원을 늘려 봐야 필수 의료 부문의 의료인력의 부족 문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면서 “거주 인구 1000명 당 의사의 수는 2020년 기준 2.51명으로, 세계 24위를 랭크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2.6명, 미국의 2.64명과 큰 차이가 있지 않다. 따라서 정원의 문제보다는 가격에 의한 시장 왜곡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한국 의료 산업의 구조적 문제 중 하나로 정부의 가격 통제를 들었다. 그는 “의료 가격의 통제와 의료 보험료 책정의 권한이 정부에 의해 독점돼 있어 시장의 원리가 수요공급을 해결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진 의사평론가와 석희태 경기대 명예교수는 토론에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필수 의료 부족 ▲응급의료시설 및 수용 능력 개선 ▲기피과 개선 등 현재 한국 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