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국방 기밀 담긴 문건, 창고·화장실 등에 보관”
바이든도 기밀문건 유출해 차고에 보관…형평성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기밀 문서를 불법적으로 유출해 자택에 보관하고, 이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실이 확인됐다.
미 연방 검찰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연방법 위반 혐의를 담은 공소장을 공개했다.
49쪽 분량의 이 공소장에는 총 37건의 혐의가 담겼다. 고의적인 국방 문건 공유 관련 31건, 수사 대상 문건 은닉과 허위 진술 등 사법 방해 관련 6건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2021년 1월20일 퇴임 직후 기밀 문건이 담긴 상자 여러 개를 허가 없이 자신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운반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문건은 샤워실, 집무실, 침실, 참고 등에 보관됐고 일부는 연회장에서 발견됐다. 상자 몇 개는 뉴저지의 트럼프 소유 골프장으로도 옮겨졌다.
트럼프는 이런 기밀 문건을 기밀 취급 인가가 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내용을 말해주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회고록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 자신의 정치 자금을 모금하는 그룹인 ‘세이브 아메리카 정치행동위원회(Save America PAC)’ 고위관계자 등이 포함됐다.
공소장은 기밀 문건이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AS), 국무부, 국방부 등 주요 기관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미국의 핵 프로그램, 미국과 동맹국을 겨냥한 공격에 대한 잠재적 취약점, 적국에 대한 공격 대응 계획 등이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트럼프가 2021년 7월 뉴저지주에 위치한 자신의 골프 클럽에서 기밀이 해제되지 않은 문건을 방문객에게 보여줬다고 시인한 녹취록도 증거물로 제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러한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 이날 법무팀으로부터 기소 사실을 전해들었다며 “지난 7년간 거짓 혐의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공모설부터 시작해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의혹이 무위로 끝난 점을 언급하며 사법부가 바이든과 힐러리 클린턴의 비리는 덮으려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먼지떨기’를 하는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 역시 기밀문서를 반출해 허가되지 않은 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바이든은 델라웨어 대학에 1850개의 상자를 보관하고 있었고, 워싱턴DC 차이나타운에서도 상자들이 발견됐다. 펜실베이니아대학에도 더 많은 상자가 있었고 코르벳을 주차하는 (바이든의 월밍턴 자택) 차고 바닥에도 문서가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기밀 문서 반출과 관련해 “퇴임 전 대통령 신분으로 해당 문서들의 기밀 지정을 해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연방수사국(FBI)이 2022년 3월 30일 관련 수사를 개시했으나 트럼프가 자신의 보좌관인 월틴 나우타에게 수사 대상 문건을 감추도록 지시하고, 다른 변호사들에게는 FBI에 트럼프가 해당 문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공소장은 트럼프의 사법 방해 사례로 작년 5월23일 변호사와의 대화를 들었다. 트럼프는 대배심 요구에 따라 기밀 문건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는 변호사에게 “만약 우리가 전혀 반응하지 않거나 그들과 공놀이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국립기록원의 문서 반환 요구에도 수개월을 끌다가 2022년 1월 기밀 문건 197건이 담긴 상자 15개만 돌려줬다. 다른 문건들은 변호사를 통해 FBI에 제출했으며, 일부는 작년 8월8일 FBI의 마러라고 압수수색 당시 압수됐다.
이날 검찰은 트럼프의 개인 보좌관 나우타도 함께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나우타는 2021년 12월7일 창고에서 문서들이 쏟아진 채 상자 몇 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서 중 하나는 기밀 표시가 돼 있었다.
나우타 보좌관은 동료에게 보낸 문자에 문서 사진을 첨부하며 “창고 문을 열었다가 이것을 발견했다”고 알렸으나, FBI에 “상자들이 어디에 보관돼 있었는지 모른다”고 허위 진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소장에는 나우타가 마러라고에 보관 중인 상자를 여러 차례 옮긴 것으로 명시됐다.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국방 정보 보호법은 “미국의 안전과 안보에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집행돼야 한다”며 “이 법을 위반하면 우리 나라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 나라에 단 한 세트의 법을 갖고 있고 그 법들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 법들의 적용과 사실 수집이 수사의 결과를 결정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포함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관리 다수가 기밀 정보를 잘못 처리한 사실이 당국에 적발됐지만 기소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부통령 퇴임 후에도 사적인 공간에 기밀 문건을 보관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아직 관련 혐의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스미스 특별검사는 “피고인(트럼프 전 대통령, 나우타 보좌관)이 법정에서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돼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라며 “공공의 이익과 피고인의 권리에 부합하는 신속한 재판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 기밀 반출은 건별 최대 10년, 사법 방해는 최대 20년 징역형이 선고되지만, 최대 형량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나우타 보좌관에게는 오는 13일 관할 법원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지방법원에 출석하라는 소환장이 전해졌다. 두 사람은 소환에 응해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법원 출석은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3월 법원 출석은 뉴욕 지방검찰의 기소에 따른 것이었고 연방검찰 기소로 인한 법원 출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미스 특별검사는 이날 공소장 공개 후 성명만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는 않았다 .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수사 최종 책임자인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과 이 사안에 관해 대화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와 전혀 대화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또한 “난 그것에 대해 언급할 게 없다”며 모든 논평을 거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법무부에 트럼프를 기소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트럼프 개인 보좌관 나우타는 기소와 관련해 논평을 거부했다. 트럼프의 변호인인 짐 트러스티와 존 로우리 변호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사임 사실을 알렸다.
* 이 기사는 자카리 스티버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