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톈안먼 사태 34주년 앞두고 삼엄한 분위기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날’로 꼽히는 6월4일이 다가오면서 중국 공산당 당국의 검열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64’, ’89’ 같은 숫자나 ‘학생’, ‘탱크’ 등 조금이라도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연상시키는 표현은 철저히 금지어가 됐다. 촛불, 꽃 등 추모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나 영상, 명칭이 들어간 게시물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동으로 거부가 된다.
중국에는 매년 6월 4일이 다가오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농담’이 있다. ’89위안’이나 ’64위안’은 이유 없이 송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6월 초 위챗에서는 해당 금액을 송금하려고 하면 “나중에 다시 시도하라”는 안내문과 함께 거부됐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아이디나 닉네임 수정 서비스가 “시스템 점검”을 이유로 중단된다. 게임 서비스 업체가 이용자들의 기습적인 톈안먼 추모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중국 네티즌들은 올해도 비슷한 상황을 예상하고 있다.
매년 톈안먼 추모집회가 이뤄지던 홍콩은 올해 더욱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홍콩 보안국의 크리스 탕 보안국장은 지난 29일 “며칠 내 특별한 때에 국가안보를 해치려 계획하는 이들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며칠 내 특별한 때’가 톈안먼 34주년을 가리키는 것은 자명하다.
홍콩 명보, 창간 64주년 기념 때 ’64’ 자체 검열
톈안먼 사태와는 무관하지만 ’64’라는 숫자를 피하기 위해 행사명을 바꾸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1959년 창간된 홍콩 유력매체 명보는 지난달 20일이 창간 64주년 기념일이었지만, 공산당 당국에 트집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창간을 축하하는 기사에서 “65주년을 향해”라는 표현으로 64주년을 대체했다.

한 언론인은 “10년 전 54주년 기념일에는 당연하게도 ‘창간 54주년’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며 “그야말로 보신(保身)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공산당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는 반응과 함께 “톈안먼 추모일이 보름이나 남았는데, 언론으로서 너무 저자세를 보인 것 아니냐”며 안쓰럽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명보는 과거 문화대혁명 시기, 서슬 퍼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 전통문화를 말살하는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철권통치가 나날이 강화되는 오늘날의 홍콩에서 유서 깊은 명보도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혹은 톈안먼 사태, 심지어 톈안먼 학살로도 불리는1989년 6월 4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전날 늦게까지 민주화 요구 시위를 하다가 잠든 학생과 시민 등 시위대는 이날 새벽 투입된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의 유혈 진압에 학살당했다. ‘인민 해방’을 위해 창립됐다는 당의 군대는 그 인민에 실탄을 발포하고 탱크로 잠든 학생들을 깔아뭉갰다.
중국을 영원히 바꾼 역사적 비극
공교롭게도 34년 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6월 4일도 일요일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광화문은 세계적 관광지이자 600년 전통의 조선왕조의 유산과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무역강국 대한민국의 현재가 만나는 접점이자 랜드마크다.
중국 수도 베이징 중심에 있는 톈안먼 성루는 전혀 다르다. 붉은 담장과 유리기와 전통 유산을 이어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한 이후 공산당 일당독재의 상징이 됐다.
톈안먼은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가 머물렀던 자금성의 정문이었지만, 현재의 톈안먼은 1970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완전히 해체된 이후 재건된 것이다. 공산당이 전통 중국과 단절을 선언했음을 고려하면, 옛 왕조의 유산을 이어받은 게 아닌 셈이다.
중국 공산당은 톈안먼을 권력의 상징으로 만들어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톈안먼이 재건된 1970년을 기억하는 중국인이라면 모두 아는 노래 ‘나는 베이징 톈안먼을 사랑해'(我愛北京天安門)가 그 중 하나다. 이 곡은 문화대혁명 시절의 체제 선전곡이자 어린이용 동요로도 만들어진 노래다.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쉬운 리듬에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밝고 가벼운 멜로디로 작곡됐지만 “톈안먼 위에 태양이 뜨네”, “위대한 지도자 마오 주석”이라는 가사를 통해 톈안먼과 마오쩌둥을 연결시켜 마오쩌둥 개인숭배를 세뇌하는 곡으로 사용됐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상징성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계속되는 중국에서 톈안먼은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장소가 됐다.
중국 공산당이 톈안먼 학살 추모일인 매년 6월 4일을 포함해, 파룬궁 탄압 개시일인 7월 20일이 되면 톈안먼 광장 주변에 겹겹이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경찰과 순찰차량을 촘촘히 배치해 삼엄하게 경비하는 이유다.

전 중국의 시선 모이는 ‘무대’ 역할도
톈안먼 광장은 때로는 중국인들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무대가 됐다.
2013년 10월 28일에는 ‘톈안먼 광장 차량 돌진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톈안먼 부근에서 지프차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해 탑승객 3명과 관광객 2명 등 5명이 숨진 사건이었다. 탑승객 3명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의 위구르인 가족 3명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당국은 이 사건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한 폭탄 테러사건으로 단정하고, 테러 공격을 모의한 혐의로 이슬람 분리주의자 8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8명에게는 2014년 실형이 선고됐으며, 이 중 3명은 사형에 처해졌다.
공안당국의 발표대로 이 사건이 이슬람 분리주의에 의한 테러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국이 이 사건을 명분으로 삼아 신장 위구르 자치구 탄압을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의혹을 일으킨 사건은 20여 년 전에도 있었다. 2001년 1월 23일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이른바 ‘톈안먼 분신 사건’이다.
파룬궁 수련자 5명이 분신을 기도해 2명이 죽고 3명이 중증 화상을 입었다는 이 사건은 짜인 각본에 따라 중국 공안이 실행하고 관영매체가 중계한 조작극이었다는 사실이 2003년 NTD 다큐멘터리 ‘거짓 불꽃(False Fire)’을 통해 드러났다.
사건은 모순투성이였다. 발화 물질을 담았다는 페트병은 분신 이후에도 멀쩡했고, 얼굴 4도 화상 등 전신 40%에 화상을 입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았다는 12세 아이는 사건 일주일 후 방송된 CCTV 인터뷰에서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당시 관영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에 중국인들은 파룬궁에 적개심을 품게 됐고 그렇게 명분을 얻은 탄압은 오늘날까지 2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2023년에도 여전히 닫힌 광장 ‘톈안먼’
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올해 6월4일을 앞두고 톈안먼 광장 주변에 설치된 바리케이드와 검문소를 촬영한 동영상이 다수 게재됐다.
톈안먼까지 가려면 여러 차례의 검문을 거치며 그때마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밀한 감시망을 뚫고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RFA가 2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과거에 4차례나 톈안먼 탄압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펼친 후난성의 인권활동가 천쓰밍(陳思明)은 최근 당국에 구속됐다.
톈안먼 추모일을 앞두고 “여행을 다녀오라”는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이 사실을 트위터에 알렸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톈안먼 추모일 등 중국 공산당이 민감하게 여기는 기간에 국가안전국 요원과 함께 외부와 연락이 되지 않는 곳에 머무는 것을 가리킨다.
천씨는 지난 26일 트위터를 통해 “올해 6월 4일이 다가오고 있다”며 “국가안전국은 이 민감한 시기를 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썼으며, 다음 날 해당 트윗을 삭제하라는 국가안전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구속됐다.
RFA는 천씨의 동료를 통해 천씨가 지역 내 구치소에 갇혀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언제까지 구금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인권활동가들도 천씨와 비슷한 ‘여행’ 조치를 당하거나 톈안먼 추모일을 앞두고 강화된 감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