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한국대사관, 尹대통령 비판 환구시보에 공식 항의 “저급한 표현 말라”

최창근
2023년 05월 07일 오후 1:15 업데이트: 2023년 05월 07일 오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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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서 중국 관영 매체에 공식 항의했다. 주중국 한국대사관은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 ‘글로벌타임스’가 윤석열 대통령 방미 관련 보도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쓰고 근거 없는 비난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5월 5일 자 주중 한국대사관 보도자료에 의하면, 대사관은 5월 4일 발송한 항의서한에서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들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해 한국 정상은 물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매우 치우친 시각에서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폄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한에서는 중국 매체의 표현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의 저급한 표현까지 동원해 우리 정상을 근거 없이 비난하는 일부 내용은 언론의 보도인지조차 의심케 할 정도이다.”라며 “만약 한국 언론이 중국 지도자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비난하는 보도를 연일 게재할 경우 중국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신중히 숙고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환구시보 등의 보도는 “한중관계의 건강하고 성숙한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양 국민 간 부정적 인식을 조장할 뿐인바, 글의 게재에 있어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라며 ”이러한 보도가 한중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관한 모든 책임은 귀 신문사에 있다.“고 밝혔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만해협 관련 발언,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두 매체는 4월 23일,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라는 제하의 중·영문 공동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방미 전 대만 관련 발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대사관이 항의한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사로 강한 민족주의 성향과 강경 대외정책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외교 문제 등으로 인해 당국자가 나서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껄끄러운 정부의 ‘속내’를 기사와 사설로 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과 미 의회에서의 연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등에 대해 연일 거칠게 비판했다.

두 매체는 지난달 23일 공동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방미 전 대만 관련 발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사설은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친강 중국 외교부장의 발언에 한국 외교부가 “언행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고 응수한 것에 대해서도 친강 부장이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들은 사람만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들리는 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대만 문제 발언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이 밝힌 최악의 입장 표명이다. 대만 문제는 내정으로서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고, 남북 문제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훈계조로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과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어 “한국 외교가 말하는 국격은 어디에 있는가”라면서 “워싱턴에서 잃어버린 국격과 외교 자존심을 중국을 통해 만회하려고 하느냐?”고 언급했다. 또한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무지하고 악질적인 말을 할지 누가 알았겠느냐?”며 “우리는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잘못된 인식이 이렇게 멀리 갔는지 정말 몰랐다. 한국 외교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4월 28일 자 사설에서 “역대 한국 정부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대한 민족적 독립 의식이 가장 결여됐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방미는 그 평가를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했다.”고도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4월 30일 “북·중·러의 보복이 한국과 윤 대통령에게 ‘악몽’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각국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관이 주재국 언론 보도와 관련해 오보에 대응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나, 구체적인 표현, 내용의 편파성 등을 지적하며 매체에 공식 항의하고 그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이는 1992년 수교 이후 최저점이라 할 수 있는 한중 관계를 방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환구시보는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 중국과 갈등을 빚는 모든 나라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해 지지층과 안티팬을 동시에 양산한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환구시보는 인민일보의 수익사업일 뿐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이 담겼다고 볼 수 없으니 크게 신경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이징 외교가의 생각은 다르다. 주요국 정부들은 환구시보에 악의적인 기사가 실리면 신문사가 아닌 중국 정부에 항의한다. 매체의 논조를 당국이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구시보 기사는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면이 있다. ‘중국은 늘 옳고 서방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가 건전한 여론 형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도 많다. 용법에 따라 사회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언론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