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한미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고 한국과 일본이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등 한미일이 결속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에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는 양상이다.
이 속에서 서울에서 한반도 주변 ‘4강(强)’의 외교전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외교전의 사령탑들은 누구일까.
외교를 지휘하는 현장 사령관은 각국 대사들이다. 보통 ‘대사(大使)’라고 약칭하는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는 외교관의 꽃으로 불린다. 임명권자 국가원수로부터 교섭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아 자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4대 강대국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대사관을 설치하고 특명전권대사를 파견하여 외교를 책임지게 하고 있다. 2023년 5월 현재 이들 4대 국가 대사는 모두 ‘직업 외교관(career diplomat)’ 출신으로 임명돼 있다. 주한 러시아 대사는 한국에서 첫 대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지난해 부임한 주한 미국대사는 ‘직업이 대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국 부임 전 다양한 나라에서 대사직을 수행했다.
4대 국가 대사의 ‘격(格)’에도 차이가 있다.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는 직업 외교관 중 최고 레벨의 고위직 외교관, 군 4성 장군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반면 주한 중국대사는 외교부 본부 부사장(副司長·부국장)급으로 미국 대사보다 직급이 낮은 것은 물론, 본부 국장을 지낸 후 한국에 부임한 일본·러시아 대사보다도 ‘급’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민해방군 현역 소장(少將) 계급인 주한국 중국대사관 국방무관보다 본국에서는 위상이 낮다는 분석도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장·차관급 직업 외교관이나 이에 준하는 인사를 중국 대사로 파견하고 있는 한국과도 대조적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주한국 대사는 어떤 인물일까.
직업이 대사… 필립 골드버그
필립 골드버그(Philip S. Goldberg) 대사는 미국 직업 외교관 중 최고위직인 ‘경력대사(Career Ambassador)’이다. 미국 국무부는 ‘재외공관장’으로 부임할 수 있는 고위 외교관을 참사관(counselor), 공사참사관(minister counselor), 경력공사(career minister), 경력대사(career ambassador) 등 4단계로 분류한다. 그중 최고위직인 경력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으로 군(軍) 4성장군(대장)에 해당한다. 직원 수 69,000명, 연간 예산 약 58조 원에 달하는 거대 조직 미국 국무부 내에서도 불과 수십 명만 오를 수 있는 직위이다.
필립 골드버그 대사는 1956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출생으로 보스턴대학(Boston University)에서 라틴아메리카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뉴욕시 정부-유엔 연락관으로 활동했다.
국무부 입부 후 주콜롬비아 대사관 영사, 주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 정치·경제담당관 등을 거쳐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지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08년 주볼리비아 대사로 부임했고, 이후 칠레, 코소보, 볼리비아, 필리핀 주재 대사를 역임했다. 국무부 본부에서는 국무부의 UN 대북 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 정보조사 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주쿠바 대사대리를 거쳐 경력대사로 승진했고 주볼리비아대사로 전임됐다. 그러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의하여 2022년 2월 주한국 대사로 지명됐고 상원 인준 과정을 거쳐 7월 서울에 부임했다.
3번째 한국 근무 한국통 외교관 아이보시 고이치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일본 대사는 재외공관장을 2번 지낸 후 한국에 부임한 베테랑 외교관이다. 대사 부임 전 한국에서 서기관, 참사관, 공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지한파 외교관이다.
1959년생으로 고향은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鹿児島)현이다. 도쿄대(東京大) 교양학부 재학 시절인 1982년 외교관 시험에 합격, 1983년 외무성에 입성했다.
초년 외교관 시절 외무성과 재외공관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고, 1999년 주한국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부임하여 첫 한국 근무를 했고, 이듬해 참사관으로 승진했다. 이후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 국제사회협력부, 중동·아프리카국을 거쳐 경제협력국 유상자금협력과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2006년 주한국 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하여 2번째 한국 근무를 했고, 2007년 공사로 승진했다. 2008년 주베트남 대사관 공사로 전임됐고, 2011년 외무성으로 복귀하여 대신관방(大臣官房·비서실 겸 기획조정실 해당)실 참사관으로 일했다. 이후 주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대사로 승진했고, 대신관방 글로벌과제심의관, 영사국장 역임 후 2018년 주이스라엘 대사로 전임됐고, 2021년 1월 주한국 대사로 부임하여 3번째 한국 근무를 하고 있다.
한반도통 중국 대사 싱하이밍
싱하이밍(邢海明) 중국 대사는 미국, 일본, 러시아 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다. 1964년 톈진(天津) 태생이다. 북중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 사리원농업대를 졸업하였고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1986년 중국 국무원 외교부에 입부하여 아주사(亞洲司)에서 근무했다. 1988~91년 주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했고 1991년 본부로 복귀하여 아주사 조선처 3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싱하이밍은 1992년 한중 수교 후 서울로 발령 나 주한국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1995년까지 일했고, 1995년 외교부 본부 아주사로 돌아와 조선처(한반도 담당과) 3등 서기관, 2등 서기관 부처장(과장 보좌), 처장으로 차례로 승진하며 2003년까지 근무했다. 2003년 주한국대사관 참찬(參贊·참사관)으로 서울로 부임하여 2006년까지 일했고, 2006년 공사참사관으로 승진하여 평양에서 근무했다.
2011년 외교부 아주사 참사관으로 복귀하였고, 부사장(부국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싱하이밍은 첫 재외공관장으로 임명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주재 대사로 부임하여 2019년까지 4년 재임했다. 그러다 2020년 1월 주한국대사로 임명되어 서울로 부임했다.
한국 대사 임명 시 싱하이밍의 외교부 내 서열은 슝보(熊波) 주베트남 대사와 비슷한 정도였다. 외교부 입부 순서에서는 슝보 대사가 싱하이밍보다 앞섰다. 이를 두고 한 전직 외교관은 “중국은 의전 서열에 매우 민감한데, 대사 서열은 중국이 상대국에 부여하는 외교적 중요도다. 한국은 지금 베트남에 맞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부임한 중국통 외교관 안드레이 쿨릭
안드레이 쿨릭(Andrey Kulik)은 1953년생으로 한국 주재 4강(强) 대사 중 최연장자이다. 2018년 부임하여 근무 경력도 길다.
1953년생인 그는 40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다. 한국이 첫 대사 부임지다. 러시아 외교부에서 한국, 북한, 중국, 몽골을 담당하는 아시아1국의 국장을 지냈고, 13년간 주중 러시아 대사관에 주재했다.
안드레이 쿨릭 대사는 구(舊)소련 시절 모스크바에서 태어났고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 졸업 후 외교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76년 구소련 외교부에 입부하여 외교부 본부와 중국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 1976~1980년, 1983~89년, 1993~96년 등 3차에 걸쳐 주중국 대사관에 근무했다. 주중국 대사관 참사관을 끝으로 본부에 복귀하여 1996~2011년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1국(한국, 북한, 중국, 몽골 담당) 부국장이 됐고 2012년 국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다 2018년 7월 주한국 대사로 부임했다.
직업 외교관으로서 꾸준히 승진하여 2002년 특명전권대사 2급이 됐고, 2012년 특명전권대사 1급으로 승진하고 2018년 직업 외교관 중 최고등급인 특명전권대사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