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리전 양상으로 국제 사회의 이목을 주목시킨 남미 파라과이 대선에서 ‘친미·친대만’ 성향의 집권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대만은 당분간 남미 유일 수교국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4월 30일 치러진 파라과이 대선에서 집권 우파 정당인 콜로라도당(공화국민연합당·ANR)의 산티아고 페냐(44) 후보가 개표율 92.24% 기준 43.07% 득표율로 당선을 확정했다. 좌파 성향 정통급진자유당(PLRA·급진자유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에프라인 알레그레(60) 후보는 27.49%의 득표율에 그쳤다.
페냐 당선인은 이날 오후 7시 35분, 수도 아순시온시 콜로라도당 당사에서 한 수락 연설에서 “콜로라도당의 위대한 승리이다. 여러분과 함께 조국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앞장설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페냐 당선인은 개표 초반부터 앞서 나갔다. 10% 포인트 이상 차이를 보이며 여유롭게 선두를 유지한 페냐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를 벌리며 승기를 굳혔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세 초·중반 여론조사에서 친중 좌파 성향의 야당 후보 알레그레가 1위를 차지하며 지지자들에게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다만 알레그레 후보는 유세 막판 야권 대분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알레그레의 득표율은 2018년 대선 출마 당시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51) 현 대통령을 상대로 얻었던 득표율(43.04%)에도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페냐의 당선으로 ‘영원한 여당’으로 자리 잡은 콜로라도당은 집권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파라과이 콜로라도당은 1947년 이후 딱 4년(2008∼2012년)을 제외하고 71년간 정권을 유지해 왔다.
‘경제통으로 평가받는 페냐 당선인은 경제 부양에 우선순위를 두고 국정을 운영할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와 기업 친화 분위기 조성 등 그간의 여당 정책에서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페냐 당선인은 1978년생으로 파라과이 아순시온가톨릭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모교 아순시온가톨릭대 교수로 재직했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외교적으로는 전통의 우방인 미국, 대만과의 연대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과 외교관계는 당분간 유지할 전망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페냐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국가는 대만으로 평가된다.
페냐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친중국 성향의 야당 알레그레 후보에 맞서 “대만과의 현 우호 관계를 증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적 있다. 올해 1월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워싱턴(미국), 예루살렘(이스라엘), 대만이라는 지정학적 관계를 계속 안고 갈 것이다.”라며 “이러한 삼각형은 파라과이 발전을 위한 구도이다.”라고 역설했다.
미국도 한숨 돌린 형국이다. 미국의 뒷마당이라 할 수 있는 중남미의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온두라스, 니카라과 등에서 거센 좌파 물결이 일고 있다. 그 속에서 파라과이는 에콰도르, 우루과이와 더불어 우파 정권 국가로 남게 됐다.
다만 대만으로서도 안심할 수는 없다. 황쿠이보(黃奎博) 대만 국립정치대 외교학과 교수는 “파라과이와 대만이 단교할 것이라는 소문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면서도 “외교관계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밝혔다. 황쿠이보 교수는 “파라과이가 대만과 중국과의 교역액이 각각 2억 달러와 20억 달러로 큰 격차를 보임에 따라 단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광활한 중국의 내수 시장으로 인한 변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대만 언론도 대만이 2005~2014년까지 파라과이에 매년 400만 달러를 투자하고 1천480만 달러(198억원)를 원조한 반면, 중국은 2005~2020년까지 1천300억 달러(약 174조원)를 투자한 사실을 전했다. ‘경제적 유인’으로 인해 파라과이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농업이 주요 산업인 파라과이의 주요 수출품목은 쇠고기와 대두(大豆)이다. 연간 생산량은 각각 30만 톤, 1000만 톤에 달한다. 중국은 대표적인 쇠고기·대두 수입국이다. 대만과 수교 중인 파라과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걸려 중국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