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⑨ 이어도, 韓 산업·안보 대동맥 지키는 보루

해양주권의 최전선

이윤정
2023년 04월 30일 오전 10:22 업데이트: 2024년 03월 09일 오전 9:44
P

이어도는 오늘날 한국의 해양 주권을 상징하는 해양 영토다. 이어도와 그 주변 해역은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확정 문제, 해상 관할권 문제 등이 걸려 있다. 2003년 이어도에 국내 최초로 해양과학기지가 설치된 이래 중국은 해당 수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왔다.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가 2022년 발간한 ‘이어도 오디세이’는 이어도 종합해양기지에 관한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주변국의 무리한 권리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담은 책이다.
에포크타임스코리아는 이어도연구회의 도움을 얻어 책을 바탕으로 이어도에 관한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담은 특집 기획을 마련했다.
그 아홉 번째 순서로 한·중·일 각축전 속 우리 해양영토 이어도를 지키기 위해 실효 지배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바닷길·하늘길 지키는 이어도

이어도 해역은 한·중·일 해양 경쟁이 치열하게 각축하는 곳이다. 지금까지는 3국 간 합리적·외교적 판단에 따라 갈등이 휴면상태에 있을 뿐 해양 자원 등 경제적 가치를 고려할 때 언제든 심각한 분쟁이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이어도 주변 수역은 연간 수십만 척의 배가 통과하는 해상교통의 요로다. 한국의 핵심 해양 수송로일 뿐 아니라 중국에도 경제적·전략적으로 중요한 해양 수송로의 길목이다. 군사적으로는 중국의 해양 방어 반경이어서 미국·일본 등과 힘 대결도 벌어질 수 있다.

순찰 중인 국립해양조사원 | 이어도연구회 제공

중국은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안정성을 흔들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가해질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 일본, 한국 등 주변국이 세력 균형을 위한 군비 증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어도 해역은 바닷길뿐 아니라 하늘길로도 국가를 지키는 경제·안보의 요처다. 중국 항공기가 이어도 인근 항공에 출현하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국 해군 군함과 잠수함도 한국 해군의 이어도 작전구역을 침범하고 있다.

중국은 2011년 이후 이어도 해역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직·간접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 대표적 징후가 ‘방공식별구역’ 선포다. 중국은 2013년 11월 23일 이어도 상공이 포함된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CADIZ)을 전격 선포했다.

영공은 영토와 영해의 수직 상공, 주권이 미치는 하늘 공간이다. 영공은 완전하고도 배타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공역이다. 공역은 국제법의 제한을 받지 않지만 국제 조약, 판례, 관습, 국내법 등에 의해 통제받을 수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자국 영공 방위를 위해 영공 바깥쪽 공해 상공에 설정되는 가상의 공역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적 근거가 미약하며 선포와 운용 방식도 국가별로 다양하다. 국가 방위를 명목으로 접근하는 비행물체에 대한 사전 탐지, 식별, 적절한 조치를 위해 영공 밖에 임의로 설정한다. 영해기선에서 200해리인 배타적 경제수역과 달리 방공식별구역은 거리나 면적 개념 자체가 없다. 현재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20여 개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있다.

중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은 이어도 상공을 포함한다. 특히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상공도 포함하고 있어 일본을 바짝 긴장시켰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한 동중국해 상공은 일본이 1969년 일찌감치 선포한 방공식별구역(JADIZ)의 동중국해 공역과 상당 부분 겹친다.

한국은 1951년 6·25전쟁 중 미군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이 있었는데 중국에 대응해 이를 대폭 확대했다. 한국 정부는 2013년 12월 11일 이어도 상공을 포함한 새로운 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했다. 한국이 이렇게 즉각 대응한 데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와 해양 관할권 현안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방호 인력도 시설도 없지만, 동중국해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대한민국의 존재감 그 자체다. 해양과학기지라는 실체가 서 있기에 이어도 해역은 반드시 지켜야 할 수역이 됐다. 이어도 실효 지배가 한국 산업·안보 대동맥을 지키는 보루인 셈이다.

이어도 지키는 제주해군기지

제주도 서귀포 제주해군기지 연병장에 도열한 해군 장병들 | 연합뉴스

중국은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열도를 놓고 무력행사를 불사하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직전인 2013년 8월엔 중국 해경선 4척이 이틀간 센카쿠 해역에서 일본 어선과 순시선을 쫓아버리며 시위를 벌였다. 일본도 중국의 섬 상륙에 대비해 대규모 탈환 훈련을 벌이는 등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를 빚었다.

중국은 매번 공세적 태도를 보여왔으나 전면적 군사력 사용으로 확대하지는 않고 있다. 아직은 중국 해군력이 일본 해상자위대에 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력 부상과 함께 중국 해·공군력이 대폭 증강되고, 미국의 서태평양 지역 군사력이 감소할 경우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충돌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해군은 동아시아에서 북한 해군을 제외하면 가장 약체인 것으로 평가된다. 해상전력 증강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중국·일본과 동등한 수준의 해군력 확보는 어렵고 중·일 해상전력의 30%가 투입될 경우를 대비한 제한적 근해 우세를 목표로 제시했다. 유사시 중·일에 맞설 수 있는 최소한의 해군력이라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독도, 이어도 분쟁에 대비한 기동함대 창설 제안이다. 기동함대는 해군이 보유한 전력을 필요한 지역에 신속히 파견해 작전을 수행하는 함대로 보통 3개 기동전단으로 구성된다. 기동함대가 창설되면 제주 남방 해역에 대한 해군의 대응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어도 해역에서 한국 해군의 결정적 약점은 접근성이었다. 가장 가까운 부산 해군기지에서 이어도까지 가는 데 23시간(507㎞)이 걸린다. 그런데 중국 해군은 닝보에서는 18시간(398㎞), 일본 해상자위대는 사세보에서 21시간(450㎞) 만에 출동할 수 있다. 이 같은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제주해군기지 건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제주해군기지는 제주 남방 해상교통로 확보와 주변국 견제, 대북 전력 우위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시설이었다.

환경 파괴 논란 등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됐다. 이로써 이어도까지 거리가 176㎞로 대폭 단축돼 8시간 만에 닿을 수 있게 됐다. 적어도 기동성 면에서는 중국을 앞서게 된 것이다.

제주해군기지에는 해군작전사령부 직할 제7기동전단이 부산에서 모항을 이전해 해상교통로 보호, 대북 대비 태세 유지, 국가 대외정책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군은 제7기동전단을 2025년 기동함대사령부로 확대·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해군 전력 확보 계획은 최소한의 억지력 유지 수준이어서 이어도 해양 안보의 필요충분조건에 이르지는 못한다. 분쟁에 대비한 해군 전력 증강을 통해 무력시위, 충돌 시 대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분쟁에서 무력은 직접 충돌 외 시위 효과가 중요하다. 해·공군력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면 외교전에서 높은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외교와 전쟁은 동전의 양면이라 한다. ‘전쟁은 피 흘리는 외교, 외교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어도 해역은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 획정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외국 군함이나 해양감시선 등의 항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무기 발사, 군사훈련, 군함 기동, 항공기 발진·착함, 군사 장비 설치 등 명백한 군사 활동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주위 500m에 설정된 안전수역은 위협 행위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는 효력이 있다.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이어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탐방행사 | 이어도연구회 제공

해양의 미래가치가 높아질수록 한 치라도 더 넓은 해양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 간 각축은 피할 수 없다. 해양은 경계 없이 하나로 이뤄진 드넓은 세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여러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경계선이 불확실한 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의 해양 경계가 이뤄진 것은 1994년 해양법 발효 이후다. 해양법은 새로운 세계 규율하는 기준이 됐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합의해 만든 해양법 체제가 역설적으로 해양 경쟁을 첨예화시키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대륙붕 등 핵심 영역을 둘러싼 분쟁을 가리는 명확한 잣대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은둔의 조선이 펼쳐 온 정책 탓이 크다. 조선은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한 공도정책(空島政策)과 일반 백성의 해상활동을 전면 금지한 해금정책(海金政策)을 시행했다. 바다를 멀리하고 어부를 천대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확산했다. 이런 풍조는 조선시대 내내, 이후 근대화 과정까지 한국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영토는 국가와 주권을 상징하며 그 주체는 바로 국민이다. 해양영토 또한 다르지 않다. 해양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하고 해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권익을 지키는 기본은 해양주권에 대한 국민 의식에서 출발한다.

해양영토와 관련해 발생하는 각종 분쟁은 경제·군사안보 국익을 놓고 벌이는 해양주권 쟁탈전이다. 해양 분쟁 이슈는 내용이 전문적이고 절차가 번잡해 대중의 이해와 인식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럴수록 해양영토에 대한 주권 의식이 강조된다.

이어도 문제도 근본은 마찬가지다. 해양 시대인 오늘날 해양 국익, 해양주권, 해양영토가 걸린 문제는 모두의 각성과 이해, 열망과 행동 의지를 요구한다. 독도와 마찬가지로 이어도 역시 대한민국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해양영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