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이징 창펑(長峰)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병원장과 부원장, 총무과 주임, 시공 관계자 12명이 구속됐다.
베이징 고위 관리들의 사과나 징계 등은 없었다. 중국문제 전문가 스산(石山)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분석했다. 시진핑이 5년 전 또 다른 화재 사건을 이용해 베이징 고위층을 자기편으로 물갈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칼럼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대형 참사 수습과정에서도 권력 다툼을 우선시하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정권의 민낯을 파헤쳤다. – 편집부
지난 18일 낮 베이징 창펑(長峰)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숨졌다. 베이징에서는 5년 전에도 화재가 두 차례 발생했다. 당시 베이징시 당국은 ‘하층민(低端人口)’을 대거 ‘청소’하기 시작했다. 화재 원인을 하층민에게 돌린 것이다.
그 바람에 십만 명 이상의 빈곤층이 한겨울에 거주지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베이징시 밖으로 추방됐다. 애꿎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청소’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화재의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먼저 5년 전에 발생한 화재 사건을 짚어보자.
2017년 11월 10일 오전 10시경, 베이징 방문을 끝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우두(首都)국제공항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베트남 다낭으로 향했다. 1시간 30분 후,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도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떠났다.
시진핑은 공항 동쪽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전용기가 이륙한 후 수행원들은 곧바로 베이징시에 연락했고, ‘화재는 베이징 순이(順義)구 리차오(李橋)진의 한 화물창고에서 발생했고, 이미 진화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시 시진핑은 트럼프도 검은 연기를 봤을 것이기 때문에 몹시 언짢아하며 “망신살이 뻗쳤다(丟人現眼)”고 했다.
이 말이 베이징시 위원회에 전해졌다. 베이징시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졌음은 불문가지다.
화재가 또 발생했다. 11월 18일 베이징 다싱(大興)구 신젠(新建村)촌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불이 나 1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시진핑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베트남과 라오스를 방문하고 11월 15일 베이징으로 돌아온 지 사흘 만이다.
베이징시 당국은 이 두 화재 사건에 신속하게 반응했다. 차이치(蔡奇) 베이징 당서기를 비롯한 베이징시 관리들은 베이징시 안전 점검 특별행동을 위한 화상회의를 열고 화재 점검을 전면적으로 전개할 것을 지시했다.
베이징시 당서기로 막 부임한 차이치는 당시 간부회의에서 그 유명한,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기층 민중을 대할 때는 그야말로 진짜 총칼을 빼 들어야 한다. 총검으로 피를 보여야 하고, 대담하게 나가야 한다. … 베이징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큰일이다.”
이후 40일 동안 베이징 당국이 전면 ‘청소’에 나섰고, 이어 2만5000여 곳의 위험 지구를 정리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로 베이징시 물류업체들이 대거 피해를 당했고, 10만 명에 달하는 빈민이 한겨울에 졸지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더러는 베이징 밖으로 쫓겨났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베이징의 ‘하층민 청소운동’이다. 이 조치는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베이징시 당국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베이징의 전문가들은 “베이징에는 하층 산업은 있을지언정 하층민은 없다”며 베이징 당국이 ‘하층민’을 겨냥한 사실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일주일 전에 발생한 베이징 창펑병원 화재는 어떻게 처리할까? 29명이 죽었으니 피해 규모가 더 큰데, 베이징 당국의 논리대로라면 이번에는 더 큰 총검을 빼 들어야 하지 않을까? 베이징시 고위 관료도 청소 대상에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차이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차이치는 당시 베이징의 하층민 청소 작업을 주도함으로써 비난 여론에 휩싸였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해 20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입성했다. 그는 시진핑,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에 이어 서열 5위에 올라 공산당 이론 선전을 주관하고, 중앙판공청 서기처 서기 자리까지 꿰찼다.
차이치는 1955년 푸젠(福建)성 융안(永安)에서 태어났고,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17세에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하방(下放)됐고, 문화대혁명 말기인 1975년에 ‘공농병학원(工農兵學員)’으로 추천돼 푸젠사범대 정치교육과에 진학했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한 뒤 당무(黨務) 간부로 대학에 남아 있다가 1983년 푸젠성 당위원회 판공청으로 자리를 옮겨 정식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차이치는 1983년부터 1999년까지 16년 동안 푸젠성에서 성 위원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싼밍(三明)시 시장으로 승진했다. 이 기간은 마침 시진핑이 푸젠성에 근무할 때다. 이후 차이치는 황쿤밍(黃坤明) 룽옌(龍岩)시 시장과 함께 저장(浙江)성으로 자리를 옮겼고, 시진핑도 2002년 11월 저장성 당서기에 부임했다.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로 있는 동안 차이치는 시진핑의 부하가 돼 취저우(衢州)시 서기, 타이저우(臺州)시 서기를 역임했다.
시진핑은 2007년 상하이 당서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차이치를 항저우시 시장으로 발탁했다. 시진핑이 2013년 공산당 총서기가 됐을 때 차이치는 저장성 부성장이 됐고, 2014년 베이징으로 옮겨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을 맡았고, 2016년 베이징시 당서기가 됐다. 이때 차이치는 중앙위원이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 역사상 중앙위원이 아닌 베이징시 당서기는 차이치가 유일하다. 2017년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차이치는 중앙위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정치국위원이 됐다.
차이치가 이처럼 수직상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진핑의 최측근이자 시진핑의 저장성 부하 인맥인 ‘지장신진(之江新軍)’인 데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독종(毒種)이라는 점이다.
차이치는 지식청년이자 공농병대학생으로 푸젠사범대에서는 정치공작을 전공했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 청년 특유의 투쟁 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의 표독함은 베이징 하층민을 청소하기 위한 간부회의에서 “총검으로 피를 보여야 하고” 따위의 발언을 한 데서 충분히 보여줬다. 그런 말은 지식인 출신 관료라면 절대로 할 수 없다.
독재자로서는 수하에 모질고 악랄한 혹리(酷吏)를 둘 필요가 있다.
당시 차이치가 베이징의 하층민을 대대적으로 청소한 배경에는 사실 정치적 요인이 컸다. 베이징은 경기(京畿) 요충지이므로 반드시 측근이 장악해야 한다. 전임 베이징시 당서기 궈진룽(郭金龍)은 사실 후진타오(胡錦濤) 사람이었다.
2015년 인민대(人民大學) 석사과정 학생 레이양(雷洋)이 베이징 파출소 경찰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시진핑은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베이징시 공안경찰 3천여 명이 사임(辭任)을 무기로 시진핑을 압박했고, 시진핑은 한발 물러나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는 당시 공안부장이었던 푸장화(傅政華)가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차이치는 2016년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에서 내려와 베이징시 부서기와 부시장을 지냈고, 2017년 5월 베이징시 당서기에 올랐다. 그의 최우선 목표는 베이징시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었다.
2016년 차이치가 베이징으로 부임한 후 베이징 공안국장 푸정화가 공안부 상무부부장(常務副部長)으로 승진했지만 더 이상 중앙정법위원회 위원을 맡지 않았다. 공안부 상무부부장 자리는 실권이 없는 한직이다.
2017년 11월의 화재는 차이치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됐다. 화재가 발생한 다싱(大興)구의 추이즈청(崔志成) 구청장이 사퇴하고 두즈융(杜志勇) 다싱구 안전생산 담당 부구청장이 정직 처분을 받는 등 다싱구 당·정 관료 21명이 ‘처리’됐다.
사실 시진핑은 베이징시를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최측근인 왕샤오훙(王小洪)을 차이치보다 먼저 베이징시에 입성시켰다.
왕샤오훙이 2015년 베이징시 공안국장으로 부임한 지 두 달 만에 레이양 사건이 터졌고, 그는 사태를 전혀 수습하지 못했다. 결국 차이치가 2017년 베이징 당서기를 맡은 후에야 공안국까지 장악했다.
2017년 화재를 통해 차이치는 시진핑의 베이징 대리인으로서 베이징을 완전히 장악했다. 하층민 청산은 핑계일 뿐이고, 시진핑 당국에 불복하는 관리들을 청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차이치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돼 중앙서기처를 관장하게 됐다. 그는 선전 시스템은 물론 국가안전위원회의 구체적인 업무도 겸한다. 차이치는 3월 중순 딩쉐샹(丁薛祥) 후임으로 당 중앙판공청 주임 겸 당 총서기판공실 주임을 맡았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중앙판공청 주임을 겸임하는 것은 최근 40년 이래 처음이다. 그는 4월 4일부로 중국공산당 중앙 및 국가기관공작위원회 서기까지 겸직하게 됐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중난하이 내무(內務)와 공산당 지도자들의 경호 업무를 관장하는 특수한 직책이다. 업무 특성상 공산당 지도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동시에 장악하는 위치에 있고, 내부적으로는 쿠데타 방지 책임을 맡고 있어 권력이 막강하다. 역대 중앙판공청 주임은 모두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차이치가 겸임하고 있는 중앙과 국가기관 공작위원회 서기의 권한도 막강하다. 최고위급인 중국공산당 당정기구의 당무를 관리하는 동시에 당정 고위관리를 감시하는 임무까지 수행하고 있어 스파이 색채가 강한 기관이다.
차이치에게는 외부에서 간과하는 직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주임직이다. 차이치는 2016년 베이징시 당서기로 부임하면서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7년 뒤인 2023년 초에 다시 국안위 판공실 주임으로 돌아와 시진핑의 국가안전 업무를 돕고 있다.
차이치는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독살스러운 성정과 행동으로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실세 중 실세가 됐다. 실권 서열로 보면 사실상 시진핑과 리창(李强) 총리에 이어 3위에 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차이치가 당정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역할의 초점이 주로 내부의 이견, 특히 중앙기관 내부의 각종 잡음을 일소(一掃)하고 기강을 숙정(肅正)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측면에서 마오쩌둥의 부하 캉성(康生)의 배역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번에 발생한 베이징 창펑병원 화재로 인해서는 누구도 정리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민간에서 제기하는 각종 의혹도 짓눌리고 봉쇄될 것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지금의 베이징시는 2017년 당시의 베이징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베이징시의 권력은 이미 시진핑 중앙이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데 더 숙청할 필요가 있겠는가?
마오쩌둥 시기의 캉성은 중앙사회부의 책임자로 내부 숙청이 주 임무였다. 이는 미움을 사는 역할이다. 덩샤오핑은 집권한 후 죽은 캉성을 바바오산(八寶山) 열사릉원에서 쫓아내고 당적도 박탈했다.
절대 권력을 등에 업고 총검으로 피를 뿌리는 자의 말로는 비슷할 터. 차이치의 명운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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