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통령, “트럼프 기소는 정치적 목적” 반대 표명

한동훈
2023년 04월 06일 오후 1:58 업데이트: 2023년 04월 06일 오후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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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통령이 미국 맨해튼 지방검찰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기소에 대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AFP, AP 통신에 따르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르라도르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기소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선거를 목적으로 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법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맨해튼 지검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가해진 혐의를 “흑색선전”이라고 비판하고 “모든 것은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페스 오르라도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이지만, 트럼프와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는 트럼프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양국 사이에 국경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정책을 내놨을 때도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는 초기 멕시코 대통령과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으나, 로페스 오르라도르 대통령이 불법 이민 차단을 지지하자 비판을 삼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국경장벽에 반발해 중남미 국가들이 반트럼프 연대를 이룰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국경장벽이 불법 이민을 줄여 멕시코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다. 또한 마약 조직과의 전쟁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자국 언론에 대해 자주 비판해 왔으며, 선거에서 자신의 승리를 저지하려는 세력이 대규모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는 공통점도 있다.

로페스 오르라도르 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 여론을 선동하고 있으며, 2006년과 2012년 대선에서 대규모 선거 부정이 발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보수적 정책을 도입, 미국 우선(아메리카 퍼스트)을 외치며 미국을 건국이념과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위대한 국가로 재건하려 한다고 자신의 국정을 설명해왔다.

반면, 로페스 오르라도르 대통령은 좌파연합 후보로 대선에 승리했으며, 기득권층의 부패와 비리 일소에 힘을 쏟고 있다.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 이용자들은 그를 이름 각 단어 첫 글자를 따 AMLO로 칭하며 ‘좌파 포퓰리스트’라고 부른다.

로페스 오르라도르 대통령은 여느 국가지도자와 달리 트럼프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이어왔다. 트럼프 계정을 차단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을 비난했으며,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인 지난해 11월에는 트럼프 계정 복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트럼프 기소와 관련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식이긴 했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국가지도자급 인사 중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4~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된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트럼프 기소에 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외교통상부 장관 격)은 나토 회의에서 트럼프 기소가 화제가 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각국 장관들은 핀란드의 가입을 허용할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자신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토 회의에서 기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말해줄 수 있다”며 “(장관들이) 지금 하고 있는 실질적인 일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 밝혔다.

러시아도 트럼프 기소에 관한 논평을 거부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주 기자들에게 “이는 우리가 논평할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미국 국내 문제”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삿돈으로 합의금을 주고 이를 감추기 위해 회사 문서를 조작한 혐의 34건으로 기소됐다. 4일 진행된 법원 절차에서 트럼프는 혐의를 모두 부인했으며 플로리다의 자택으로 복귀했다.

기소를 주도한 민주당 소속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장은 트럼프의 문서 조작이 더 큰 범죄를 감추기 위한 범죄이자 중범죄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100건의 소송을 제기했다”며 트럼프 저격수를 자처한 브래그 지검장은 이번 기소가 정치적 목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법 앞에서는 모두 공평하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에 대한 탄핵 추진이나 법적 절차를 추진할 때마다 뒤따르는 정치적 논란을 해소하려 비슷한 문구를 반복해왔다.

2016년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한 후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비판했고, ‘하원 1·6 의회 난입 특위 위원장인 베니 톰슨 의원도 “누구도 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기소가 전직 대통령도 법 앞에서는 공평함을 입증하기보다 오히려 미국의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 트럼프를 반대하는 측에서도 나오고 있다.

미국 UCLA 대학의 선거법 전문가 리차드 하센 교수는 “트럼프의 성격과 행동이 공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뉴욕 지검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소하는 데 이르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센 교수는 정치전문 좌파 온라인 매체인 ‘슬레이트’에 “검찰의 지나친 기소는 정치적 라이벌을 범죄자로 몰고 가는 위험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우리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를 손상한다”고 분석했다(기사 링크).

그는 “‘왕을 추격하려면 놓치면 안 된다는 격언이 있다”며 검찰이 충분한 근거 없이 무리한 기소를 할 경우 오히려 트럼프의 광폭 행보만 더 키워주는 서커스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 이 기사는 잭 필립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