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올 1, 2월 두 달 동안에만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위험한 지역인 ‘다리엔 갭’을 지나 미국-멕시코 국경에 도착한 중국인이 2000여 명을 기록했다. 현지 정부와 이민을 돕는 민간 기관들은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이를 ‘줄타기(走線)’라고 부른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3월 29일 불법 입국하는 중국인이 급증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국내 정책에 저항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뉴욕주의 주도(州都) 알바니에 거주하며 이민법정 출두를 기다리고 있는 한 중국인 아버지는 2월 16세 아들을 데리고 태국, 터키, 에콰도르, 파나마, 과테말라 등 11개국을 거쳐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광저우(廣州)에서 당국의 극단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거리시위에 참여한 그는 심화하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권위주의에 두려움을 느껴 중국을 떠났다. 그의 아내와 막내아들은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다. 허난성 출신으로, 올해 40대인 그는 중국 공산당의 보복을 우려해 샘(Sam)이라는 가명을 썼다.
샘 일행은 무비자 여행으로 에콰도르에 도착한 후 미국을 향한 여정에 올랐고, 중남미 7개국을 지나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 진입하면서 국경순찰대에 체포돼 5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샘은 악시오스에 “(중국인들의) 이번 탈출은 중국인들이 시진핑의 퇴행적 정책과 엄격한 봉쇄 조치에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것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들이 놀라서 도망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국경 기자 “미 당국이 체포한 중국인 수, 작년의 9배”
미국 뉴스네이션(NewsNation)의 조지 벤쳐 기자는 3월 20일 트위터에 중국인 밀입국 관련 글을 올렸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국경 뉴스를 보도해 왔지만,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불법 입국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미 국경 당국의 중국 시민 체포 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900% 이상 급증했다.”
미국 국경 이민 기관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 1일~2023년 9월 30일)에 미국 남부 국경을 넘은 중국인이 4300명에 달한다. 미국 국경순찰대는 2월 한 달에만 중국 입국자 1345명을 체포했다. 2022년 회계연도에 국경을 넘다가 체포된 중국인은 2000명 미만이었다.
한편 파나마 정부의 이민 통계에 따르면 올 연초 두 달 동안 2200명에 가까운 중국인이 다리엔 갭의 정글을 통해 파나마로 입국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파나마에 입국한 중국인 수(2000명)를 넘어선 것이다. 2021년에는 총 77명에 불과했다.
구호기관 “도움 요청하는 밀입국자 급증했다”
중국의 대표적 소셜미디어 위챗(微信)에서 ‘줄타기’ 키워드의 검색량이 2021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위챗의 공개 자료에 따르면 이 키워드 검색량이 급증한 시점은 2월 1일로, 당일 ‘줄타기’ 관련 콘텐츠 검색 및 리트윗 건수는 55만 회에 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인권단체 대화원조협회(對華援助協會)의 푸시추(傅希秋) 회장은 현재 그들 협회가 미국에 막 입국하는 중국인들의 도움 요청을 매주 접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국에 불법 입국하는 중국인의 수가 급증한 이유를 분석했다.
“중국의 인권 상황과 종교의 자유가 더욱 악화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행정부 시기에 엄격했던 미국의 국경 정책이 후퇴했고, 중국인들이 국경을 넘는 게시물 등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편승효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주립대 올버니캠퍼스에서 중국인 이민 현상을 연구하는 량자이(梁在) 사회학과 교수는 악시오스에 미국 국경을 넘는 중국인이 급증한 것도 팬데믹이 중국 경제에 미친 심각한 영향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는 “4~5년 전과 비교하면 이번에 중국 경제가 입은 피해는 저숙련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당국이 중국인에 대한 비자 심사와 여행 제한을 강화하자 일부 중국인들은 미국으로 직접 가는 대신 남부 국경을 통해 밀입국하는 경로를 택하고 있다고 했다.
텍사스 현지 이민기관 브라운스빌(Brownsville)의 관계자는 2018년 처음 설립됐을 때는 응대하는 중국인이 소수였는데, 지금은 하루 평균 수십 명을 상대한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LA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 LA에서 이민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중국계 미국인 정춘주(鄭存柱) 변호사는 “(중공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일반 중국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며 “많은 사람이 예전에는 정치에 무관심했지만 이번 코로나로 각성했다. 그들은 중국에 정말 자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미국에 불법 입국한 자의 망명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이민자들에게 남부 국경에서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부여한 종전의 자격을 5월 11일 이후 대부분 박탈할 수 있다.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자들은 대부분 미국 남부의 다른 나라를 경유하는데, 미국의 새 이민법에 따르면 이들 나라에서 비호 신청을 하지 않은 이민자는 미국 남부 국경에서 망명 신청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인의 미국 망명 승인 비율은 약 58%로 상대적으로 높다. 이에 반해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남미 국가의 평균 망명 승인율은 10%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