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하고 측근 그룹 ‘시자쥔(習家軍)’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파벌 간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다툼이 일단락되고 시진핑의 앞날이 탄탄대로일까?
그렇게 되기에는 시진핑 반대 세력의 반발력과 응집력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 중심에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주석이 있다. 그는 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의 모든 약점을 이용하고 전 세계 반시진핑 세력을 규합해 반격에 나설 것이다.
쩡칭훙이 반격에 이용할 ‘자산’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다음 5가지 사건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 후진타오가 끌려나간 사건을 이용한다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0월 22일 20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강제로 퇴장당했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쩡칭훙일 것이다. 산회할 때 쩡칭훙은 웃음을 머금고 시진핑에게 인사를 하면서 105세 고령의 ‘공산당 원로’ 쑹핑(宋平)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장쩌민(江澤民) 전 공산당 총서기는 집권 당시 쩡칭훙을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당교 교장, 국가부주석 등 핵심 요직에 앉혔다. 이 네 가지 직무는 후진타오가 장쩌민의 뒤를 이어 총서기에 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장쩌민이 이렇게 배치한 의도는 분명하다. 쩡칭훙을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뒤를 이어 총서기 자리에 앉히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쑹핑을 비롯한 ‘공산당 원로’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쑹핑은 후진타오를 발탁, 중용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당시 후진타오와 쑹핑은 쩡칭훙의 정적이었던 셈이다. 20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가 회의장에서 ‘끌려’ 나가자, 쩡칭훙은 수년 전의 원한을 마침내 풀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구나 후진타오가 강제 퇴장당한 사건은 적지 않은 사람의 불만을 살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후진타오는 공산당 원로다. 따라서 시진핑은 공산당 원로들의 미움을 살 것이다. △후진타오는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를 지낸 공청단파 수뇌다. 따라서 시진핑은 공청단파의 불만을 살 것이다. △후진타오는 퇴임할 때 당·정·군의 최고 권력을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시진핑의 반부패 사정을 지지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시진핑은 많은 사람의 반감을 살 것이다. △후진타오는 집권 10년 동안 시진핑을 위협할 세력을 구축하지 않았다. 시진핑의 도를 넘은 견제에 많은 사람이 등을 돌릴 것이다.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최고지도자를 미리 지명함)’한 후계자다. 따라서 덩샤오핑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살 것이다.
쩡칭훙은 분명 이 사건을 십분 활용해 시진핑에 맞설 것이다.
◇ 20차 당대회 인사에 대한 불만을 이용한다
20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정치국 상무위원은 장쩌민·쩡칭훙 계파의 자오러지(趙樂際)·왕후닝(王滬寧)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진핑 계열 인사다.
19기 정치국 상무위원인 리커창(李克強)과 왕양(汪洋)은 유임되지 못했고, 정치국위원을 두 차례 지낸 후춘화(胡春華)도 20기 정치국에서 탈락했다. 시진핑의 이 같은 인사는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시자쥔 구성원들을 살펴보자. 리창(李強) 상하이시 당서기는 중앙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 그는 지난 3월 말부터 경제도시 상하이를 두 달 이상 봉쇄했고, 그 과정에서 민중의 원성이 들끓었다.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는 2018년 한겨울에 베이징의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민)’를 강제 퇴거시켜 논란이 된 바 있다. 부총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딩쉐샹(丁薛祥)은 줄곧 인사·비서 계통에서만 근무해 지방 당서기나 성장과 같은 ‘제후’ 경력이 없다.
또한 새롭게 정치국에 진입한 훙얼다이(혁명 원로 2세), 관얼다이(고위 관료 2세)는 한 명도 없고, 여성 정치국원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 명도 없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이 지금까지 이어온 각종 관행을 깨고 자기 사람들만 임명했다. 이는 다른 파벌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하다.
쩡칭훙은 이를 십분 활용해 시진핑에 맞설 것이다.
◇ 민중의 反시진핑 운동을 이용한다
20차 당대회를 불과 3일 앞둔 10월 13일 베이징 하이뎬(海淀)구 쓰퉁차오(四通橋) 다리 난간에 시진핑의 파면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2개 내걸렸다.
왼쪽 현수막에는 “핵산 검사 말고 밥을(不要核酸要吃飯), 봉쇄 말고 자유를(不要封鎖要自由), 거짓 말고 존엄을(不要謊言要尊嚴), 문혁 말고 개혁을(不要文革要改革), 수령 말고 선거를(不要領袖要選票), 노예 말고 공민의 삶을(不做奴才做公民)”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오른쪽 현수막에는 “휴교하고 파업하라! 나라의 도적 시진핑을 파면하라!(罷課, 罷工, 罷免 國賊 習近平)”라고 적혀 있었다.
이 구호는 민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 여러 지역에 비슷한 구호들이 속속 등장했고, 해외에서도 수백 개 대학의 유학생들이 시진핑을 반대하는 포스터를 붙이며 ‘쓰퉁차오 의거’에 호응했다.
Macquarie University #四通桥勇士 #罢免独裁国贼习近平 pic.twitter.com/oKMFdAF1ip
— 洞物员DongWuyuan Zoo🇺🇦 (@Horror_Zoo) October 16, 2022
시진핑은 첫 임기 5년 동안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부패 관료를 척결하면서 한때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후퇴하고 일반 대중이 혜택을 받지 못한 데다 정권 유지를 위해 민중 통제를 강화하면서 두 번째 임기부터 시진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시진핑이 20차 당대회에서 권력을 한층 더 집중해 1인독재 체제를 굳힘으로써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고, 민중의 반발도 점점 커질 것이다.
쩡칭훙은 민중의 반발을 십분 활용해 시진핑에 맞설 것이다.
◇ 국제적 반시진핑 세력을 이용한다
시진핑은 지난 10년 동안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다)’ 정책을 버리고 공격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펼쳐 국제사회의 반감을 샀다.
그동안 중국 공산당에 유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중국 공산당 권력자들과 결탁한 해외 정재계 인사들은 시진핑의 폭력적인 대외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시진핑이 집권하기 이전의 시기, 즉 양측이 손을 잡고 ‘조용히 떼돈을 벌던’ 호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들은 공산당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시진핑만 비판하는 글을 적지 않게 발표했다. 월가의 금융 거물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2021년 8월 13일과 30일, 9월 8일, 2022년 1월 31일 등 5차례나 시진핑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쩡칭훙은 시진핑에 반대하는 국제 여론을 십분 활용해 시진핑에 맞설 것이다.
◇ 대만 문제를 이용한다
대만은 화인 세계에서 자유 민주주의 등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만의 민주정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경제 성장은 ‘아시아의 4마리 용’ 중 1위를 달리고 있고, 문화 사업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코로나 방역에서는 세계적인 모범을 보였다. 또한 대만 국민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충분한 신앙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대만은 오늘날 세계에서 보기 드문 ‘무릉도원’일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것은 2300만 대만인에게는 물론 14억 중국인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산업시설과 삶의 터전이 파괴되지만, 백성들은 아무런 혜택도 없이 피해 복구의 짐만 떠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한국, 필리핀 등 주변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전 세계에도 재앙이 될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본인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시진핑이 대만해협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국내외의 공적이 될 것이다.
장쩌민은 재임 기간 대만 면적 40배에 달하는 100만㎢의 영토를 러시아 등에 넘겨줬다. 장쩌민은 이 때문에 현대 중국 최대의 매국노로 불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 고위층에서 대만 침공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장쩌민, 쩡칭훙일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주장하는 ‘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어부지리를 얻기 위해서다. 그것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시진핑을 몰아낼 기회를 얻는 것이다.
쩡칭훙은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시진핑이 대만해협의 수렁에 깊이 빠지도록 함정을 파고 밀어넣을 가능성이 높다.
쩡칭훙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쩡칭훙은 시진핑의 최대 정적이다.
시진핑이 반부패 사정을 통해 척결한 570여 명의 부성장급 이상 고위 관료는 대부분 장쩌민과 쩡칭훙이 발탁하고 중용한 인물이다.
은퇴한 공산당 원로들 중 쩡칭훙의 지위는 독특하다. 그는 장쩌민파, 태자당, 상하이방, 장시방(江西幫), 석유방, 궈안방(國安幫·국가안전부 인맥), 홍콩방, 대외선전방 등 8개 파벌에 발을 담그고 있다.
시진핑은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쩡칭훙 측근 여러 명을 친청(秦城)감옥에 보냈다. 베이징시 창핑(昌平)구에 위치한 친청감옥은 차관급 이상의 거물급 정치범을 주로 수감한다.
2021년, 시진핑은 쩡칭훙의 ‘장시방’ 요원인 라이샤오민(賴小民) 전 화룽(華融)그룹 회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했고, 사형 언도 후 가장 빠른 속도로 사형을 집행했다.
2022년 들어 첫 번째 체포된 정부급(正部級·장관급) 고위 관리는 쩡칭훙의 ‘장시방’ 요원인 선더융(沈德詠) 전 최고인민법원 상무부원장이었다.
2022년,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은 ‘금융 거물’이자 밍톈(明天)그룹 창업자 샤오젠화(肖建華)는 쩡칭훙 등 중국 공산당 권력 가문을 대신해 금융시장에서 돈을 그러모으는 ‘대리인’이다.
둘째, 쩡칭훙은 ‘쑨리쥔(孫力軍) 정치집단’의 배후다.
2022년, 시진핑이 정법계통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반대 세력인 ‘쑨리쥔(孫力軍) 정치집단’을 제거한 것이다. 그중 사형 집행유예를 받은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과 푸정화 전 사법부장, 왕리커 전 장쑤성 정법위 서기를 비롯해 궁다오안 전 상하이시 공안국장, 덩후이린 전 충칭시 공안국장, 류신윈 전 산시성 공안청장 등 ‘정법계 6대 호랑이’의 보스는 멍젠주(孟建柱) 전 정치국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이고, 그 위의 보스는 바로 쩡칭훙이다.
셋째, 쩡칭훙은 줄곧 시진핑의 경고 대상이었다.
쩡칭훙은 시진핑의 첫 임기 동안에 친청감옥에 갈 뻔했다.
2015년 2월 25일은 설 연휴 첫날이었다. 이날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웹사이트에는 경친왕(慶親王)을 비판하는 기고문이 실렸다. 경친왕은 능력 없이 고위직을 세습하며 부정·부패에 앞장선 청(淸)나라의 마지막 ‘철모자왕’(鐵帽子王·세습 특권 귀족)인 혁광을 일컫는다. 이 글을 통해 우회적으로 쩡칭훙을 비판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015년 2월 2일, 시진핑은 성장·부장급 고위관료 세미나에서 “법치하에서 그 누구도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되고, 법을 초월해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며 “죄를 면해주는 ‘단서철권(丹書鐵券·면죄부)’도 없고, ‘철모자왕(鐵帽子王)’도 없다”고 했다.
쩡칭훙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에서 ‘철모자왕’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공산당 기관지는 “철모자왕은 없다”는 말을 자주 꺼내 쩡칭훙에게 경고했다.
넷째, 쩡칭훙은 중국 공산당 ‘혈채방’ 두목 중 한 명이다.
1999년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은 쩡칭훙의 도움으로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다. 장쩌민과 쩡칭훙이 주도해 23년간 지속한 박해 과정에서 파룬궁에 피의 빚을 진 집단, 이른바 ‘혈채방(血債幫)’이 형성됐다.
장쩌민·쩡칭훙을 위시한 혈채방의 가장 큰 죄악은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기를 불법으로 적출한 것이다. 이는 천인공노할 집단학살죄, 고문죄, 반인륜 범죄다.
시진핑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데는 훙얼다이라는 출신 배경이 도움이 됐지만, 혈채방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장쩌민과 쩡칭훙은 시진핑에게 청산당할까 봐 항상 불안했고, 그래서 그들은 혈채방 인물을 최고위에 올리려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맺음말
2021년 7월 21일 장쩌민파 색채가 짙은 해외 인터넷 매체 둬웨이왕(多維網)은 <쩡칭훙: 그는 어떻게 장쩌민이 가장 신뢰하는 ‘지다성(智多星·지모가 뛰어난 사람)’이 되었는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기사는 “쩡칭훙이 장쩌민의 핵심 참모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비서 출신인 그의 원만한 일 처리 스타일, 두터운 훙얼다이 인맥,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정치적 수완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알려지지 않은 정치적 수완”은 무엇일까? 바로 계략을 꾸미는 능력이다.
쩡칭훙이 은퇴한 후에도 그의 세력이 각계에 포진해 있다. 쩡칭훙은 한때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두목’으로 불렸고, 지금도 전 세계에 깔린 국가안전국 스파이 네트워크에 쩡칭훙의 사람이 많고 대외선전망에도 마찬가지다. 또 중국 공산당의 권력가 가문의 해외 이주자 중에는 쩡칭훙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쩡칭훙의 사람들은 해외 정치인, 기업가, 유명 인사들을 대거 포섭했다. 일찍이 호주로 이주한 쩡칭훙의 아들 쩡웨이(曾偉)도 해외 인맥이 두텁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쩡칭훙의 각종 음모가 실현될 수 있었다. 쩡칭훙이 시진핑과 반부패 캠페인의 일등 공신인 왕치산(王岐山) 사이를 ‘이간질’하고, 시진핑과 그의 정치적 동맹인 공청단파 사이를 ‘이간질’하고, 시진핑과 태자당·고위관료 2세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장쩌민파의 중요 인물인 자오러지(趙樂際)와 왕후닝(王滬寧)이 숙청당하지 않고 상무위원에 들어가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쩡칭훙의 가장 큰 계략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바로 시진핑을 몰아내고 자기편 사람을 권좌에 올려놓는 것이다.
시진핑은 가만있을까? 그는 이미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은 ‘쑨리쥔 정치집단’을 숙청했고,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부를 시자쥔 일색으로 채웠다. 이제 사정의 칼날은 쩡칭훙을 향하고 있다.
시진핑과 쩡칭훙, 이들의 진검승부는 시작됐고 곧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