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경제학계 거두 원톄쥔 인민대 교수
공산당 당대회 앞둔 시점…‘여론 떠보기’ 분석도
재미 경제학자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주장”
중국 공산당이 오는 16일 최대 정치행사인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을 앞둔 가운데, 한 원로 경제학자가 ‘인민경제(人民經濟)’라는 개념을 들고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3연임을 확정 짓고 집단지도 체제를 폐기하면서 ‘공동부유(共同富裕)’로 표현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되돌아가는 정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종의 ‘여론 떠보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유명 농업문제 전문가이자 원로 경제학자인 원톄쥔(溫鐵軍·71) 인민대 교수는 최근 한 영상에서 “중국 경제가 인민경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교수는 서구에 대항해 중국 학계에 눈을 돌리는 일부 한국 언론을 통해 세계 지성 혹은 중국의 대표적 학자로 소개되는 인물이다.
원 교수는 최근 공개된 한 영상에서 인민경제를 강조하며 그 정의를 “국가 주권을 수호하고 자주적으로 발전하며 애국심을 지닌 경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립성, 현지성, 포괄성, 인민 중심’이란 4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1980~90년대 중국 정부기관에서 농촌 경제를 연구한 원 교수는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추진해온 토지사유화나 시장경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서구의 농촌 이론에 맞서 주체적인 이론, 정책 연구에 힘을 써온 인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시진핑이 추진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의 회귀에 가장 걸맞은 원로 학자로 평가된다.
그러한 원 교수가 사회주의 색채가 농후한 ‘인민경제’라는 개념을 당대회를 코앞에 둔 미묘한 시점에 공론화한 것을 두고 해외 중국전문가들은 물론 중국 내부에서조차 갸우뚱하는 반응이 나온다.
같은 인민대 교수인 중견 경제학자 샹쑹쭤(向松祚) 교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원 교수가 인민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속인다”고 비난했다
샹 교수는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를 통해 원 교수가 제시한 인민경제의 4가지 특징인 ‘독립성, 현지화, 포괄성, 인민 중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독립성은 국경을 폐쇄하고 나라를 봉쇄해 외국과의 합작 기업을 모두 제한하자는 것인가, 현지화는 중국 경제를 제한하고 자급자족하자는 주장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한 “포괄성은 기업들을 더 큰 사회적 공동체로 흡수하자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과거 인민 중심의 공유제로 회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면서 “머리가 빈 것 같은 이야기”라고 일갈했다.
샹 교수의 게시물은 곧 삭제됐지만, 원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울림이 이어졌다.
프랑스 RFI 중국어판 보도에 따르면, 몇몇 중국 경제학자들이 샹 교수의 주장에 가세하며 원 교수를 비판했다.
경제학자 런쩌핑(任澤平)은 웨이보에 “원 교수는 시장경제를 멀리하고 계획경제와 국경폐쇄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많은 민간기업 경영자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민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국무원 거시경제 연구실 부국장을 거쳐, 증권사와 부동산 개발업체 등 정부와 민간기업에서 두루 경력을 갖춘 런 교수는 원 교수의 ‘인민경제’가 사실상 사회주의 계획경제이며 “이미 전 세계에서 실패로 끝난 경제 실험”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경제실험은) 수백만 인민에게 매우 힘겨운 대가를 치르게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런 교수 웨이보 게시물 역시 삭제됐으며, 원 교수의 ‘인민경제’ 주장을 비판한 다른 경제학자들의 게시물도 삭제됐다.
“원 교수, 공산당 대신 분위기 떠본 것”
이러한 중국 검열당국의 움직임은 원 교수의 주장이 단순히 개인의 학술적 견해를 뛰어넘어 시진핑 당국이 실행하는 ‘모종의 분위기 조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이해됐다.
중국 출신의 재미 경제학자 정쉬광(鄭旭光)은 “원 교수가 제시한 ‘인민경제’는 새로운 개념이 전혀 아니다”라며 “이는 중국 공산당의 공유제를 모양만 바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쉬광은 에포크타임스에 “중국 공산당은 집권 후 경제를 국유화했으며 이를 ‘공유제’로 이름 붙였다. 공유는 모두의 것이라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정권이 독차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인민들은 실제로 거의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이번 당 대회 이후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원 교수가 말한 ‘인민경제’는 실제로는 이미 다가오고 있는, 민간기업과 자산의 국유화를 뜻한다”고 분석했다.
정쉬광은 원 교수가 인민경제의 4가지 특징 중 첫 번째로 ‘독립성’을 꼽은 점에 주목하며 “중국 정부가 문호를 닫고 중국 내 자산을 모두 국유화하기 전에 외국 자본을 향해 철수하라고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정부가 쇄국을 추진하는 이유로는 ‘민주화 요구에 대한 거부감’이 제시됐다.
정쉬광은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제사회와 연결되고 안팎에서 정치적 개혁(민주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며 “이러한 개혁을 실행하면 당이 무너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당 지도부는 문호를 닫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 그 자신은 1970년대 말~80년대 초에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에 분노하고 반대했던 인물 중 하나”라는 점도 공산당이 외국 자본을 밀어내고 통치를 강화하는 또 다른 이유로 들었다.
정쉬광은 “문호를 폐쇄하면 중국 경제는 결국 북한 경제와 같이 취약해질 것”이라며 이를 “악마의 소환”에 비유했다. 수백만 명이 기아로 숨진 참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마오쩌둥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인민이 굶어 죽는 사이 그는 온갖 산해진미를 즐겼다”고 역사적 사실을 거론했다.
다시 어른거리는 마오쩌둥의 그림자
마오쩌둥은 1958년부터 미국과 영국 경제를 뛰어넘겠다며 ‘대약진 운동’을 벌였다. 이 기간 중국 공산당은 인민공사(코뮌)를 설립해 농촌을 집단농장화했다. 모든 재화가 ‘공유’됐고 그 결과 농업생산량이 극도로 낮아졌다. 이미 소련에서 발생했던 일이었다.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한 네덜란드 역사가 프랑크 디쾨터가 쓴 ‘마오의 대기근’에 따르면 대약진 운동은 오히려 거대한 퇴보를 일으켰고 45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디쾨터는 이 책에서 “1958~1962년 중국은 지옥에 떨어졌다. 마오쩌둥은 15년 이내에 영국 경제를 따라잡고 추월하겠다는 대약진 운동으로 나라를 광란에 빠뜨렸다. 그의 경제 실험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끝났다”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중국은 인구 수천만 명의 도시를 한 달 이상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수시로, 심지어 충분한 사전 통보기간 없이 단행했고 33개 도시에서 총 6500만 명을 전면 혹은 부분적인 외출제한에 처하게 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나라 전체를 닫아걸고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시진핑 총서기는 ‘공동부유’와 함께 ‘3차 분배’를 내세우고 있다. 1차 분배는 가계 소득을 높이는 분배로 소득 격차 해소가 목적이다. 2차 분배는 세금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재분배다. 정부의 개입으로 특징지어진다.
3차 분배는 고소득자,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가리킨다. 표현만 ‘자발’일 뿐 성공한 기업, 고소득자, 유명인에게 사회적 책임과 대의에 따를 것을 들이미는 강요다. 언론, 소셜미디어에서는 공산당에 충성하는 논객, 네티즌이 기부에 열광하고 기부하지 않으면 냉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산당은 지난해부터 대기업, IT기업을 중심으로 민간 분야를 숙청하며 자발적 기부를 강요해왔다. 여기에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2분기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0.4% 성장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