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송유철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2021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이후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IPEF는 중국이 금년 1월 출범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이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대한 미국의 대응방안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후 그 후속협정으로 추진되었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지 않아 아태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중국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IPEF를 통해서 공정하고 안정성 있는 무역, 공급망 안정성, 사회기반시설·클린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라는 4가지 분야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핵심 산업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참여국들의 공통 기준을 만들고 미국에 투자하거나 미국 기업과 협력하게 만들어 자국의 경제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IPEF는 공급망 재편을 포함한 미국의 바이든 정부의 중국 견제 구상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즉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군사 분야뿐 아니라 핵심 동맹국과 경제 포위망을 구축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경제협력체인 IPEF는 지난 5월 23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에서 ‘번영을 위한 IPEF’ 출범 행사를 주재하면서 공식 출범되었습니다.
호주, 브루나이,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미국 등 13개국이 최초 회원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IPEF는 기존 FTA와 달리 팬데믹 이후 부각되는 공급망 안정성, 디지털, 청정에너지 등 새로운 통상의제를 핵심이슈로 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경제통상플랫폼이라 할 수 있습니다.
IPEF는 경제통상과 안보 개념이 함께 포괄되어 있는 전략적 협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논의되는 내용과 관점 역시 경제적 이익에 더하여 국가안보적 관점도 포함될 것이며 IPEF가 다루게 될 의제도 기존 무역협상의 의제보다 훨씬 다양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급망 안정성을 논의하는 경우라도 경제적 효율성에 기반을 둔 공급망 구축방안에 추가하여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과 동맹 간의 협력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디지털무역의 표준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의 통제나 기술 투자도 안보 관점에서 당연히 검토될 것입니다.
또한 범세계적 과제라 할 수 있는 저탄소 문제와 청정에너지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과 민주적 가치도 IPEF의 논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상품과 서비스 시장 개방 위주의 기존 무역협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협정이 될 것이며 기존의 FTA 협상에 비해 타협이나 절충이 더욱 복잡해질 것입니다.
IPEF는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을 둔 국가끼리의 협정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중국 견제의 실천적 수단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안보 측면에서 미국은 대중 견제책으로 쿼드(QUAD)를 이용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중국의 견제의 유효한 수단은 IPEF를 활용한 공급망 안정화와 첨단기술의 통제가 될 것입니다.
미국을 위주로 한 동맹들이 IPEF를 통하여 디지털무역의 표준을 만들 경우 중국의 디지털무역을 무력화할 수도 있습니다. 더하여 IPEF에 가입을 선언하였지만 아직 별다른 유인책을 제시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는 아세안 개도국들에도 2021년 7월 G7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대항책으로 합의된 바 있는 대(對)개도국 인프라 투자도 IPEF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억제할 수 있는 구체적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IPEF는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CPTPP의 지각 가입 추진을 만회하면서 공급망 안정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디지털무역의 국제표준을 만드는 주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첨단기술 개발과 보호, 저탄소 사회로의 이행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요 신흥국이 동참함으로써 인프라 투자, 역량 강화 등 공동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의 진출 확대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처음의 논의 과정에서부터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기대이익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만일 논의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전반적인 IPEF가 미국의 입장에만 기반하여 구축될 경우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입장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처음의 논의 과정에서부터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전체적인 협상의 틀과 구조, 세부 주제 및 운용 방향을 제시하면서 협상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IPEF는 이제 출발하였지만 이를 통해 많은 변화도 예상됩니다. IPEF는 현재 회원국 모두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RCEP 무력화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IPEF가 CPTPP보다 강력한 21세기 표준이라고 주장하며 CPTPP보다 선진화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CPTPP의 노동, 환경, 디지털 무역 등의 조항은 효과적인 대중국 견제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반중 공급망 재편, 반도체, 수출 통제, 인프라 관련해서는 해당 규범 자체가 없기 때문에 미국은 CPTPP 가입보다는 IPEF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최근 국제 경제질서의 핵심 화두는 경제안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세계 주요 경제 강국들은 자국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무역 갈등과 기술 패권 경쟁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에 기반한 수출 주도 개방형 경제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은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 비중과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 경제 구조에서 글로벌 공급망 관리는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주도하는 IPEF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우리는 IPEF 출범 초기 창설국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공급망, 디지털신기술, 청정에너지·탈탄소 등과 관련된 인도 태평양지역 통상규범 논의에 룰메이커(Rule Maker)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협력, 조기경보 시스템 등을 통한 공급망 위기 대응 등 정부 간, 기업 간 역내 공급망 협력도 개선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IPEF 출범을 위한 미국의 움직임에 그간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하여 왔고 공식 출범이 선언된 이후 미중 간의 긴장이 더욱 심화될 전망입니다.
중국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IPEF는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를 미국 패권의 앞잡이로 삼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아직 대만의 IPEF 가입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 역시 중국 정부의 민감한 반응을 가져올 것임은 분명합니다.
한국이 IPEF에 가입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과거 사드 배치에 따른 피해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업계에서는 산업 내 중국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한미 경제동맹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도 고려하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IPEF 출범에 따른 중국의 반응에 비추어보면 중국과의 불필요한 갈등 관계를 조성하지 않도록 정치·외교적인 노력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물론 IPEF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의 지위가 개선될 수 있겠지만 우리 경제의 체질과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보다 고도화되고 종합적인 공급망을 비롯한 새로운 이슈의 제기에 따른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공급망 전체에 대한 범정부 관리체계를 확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환경 변화에 맞춰 국내 통상 거버넌스도 현재의 FTA 협상 중심에서 공급망 재편, 핵심 기술·산업 육성과 보호, 수출 통제 등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하며 통상조직의 개편 역시 부처 이기주의가 아닌 이러한 요인에 기반하여 추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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