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가 물 위에 가만히 떠있는 것 같아도 엄청 열심히 발을 젓고 있잖아요. 현상 유지도 사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예요. 노력이 없다면 100% 퇴보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학생들에게 본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이강호 음악원장을 만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찾았다. 이 원장은 첼리스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다. 동시에 음악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세 가지 일을 저글링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며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여러 가지 아이덴티티를 갖고 사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 아닌가요.”(웃음)
이 원장은 이달 20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토너스 콰르텟 연주회를 준비 중이다. 그는 “실내악을 많이 하는 편인데도 현악 4중주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늙기 전에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부가 좋아 시작한 경영학, 음악의 큰 밑거름
첼로의 음역대는 다른 현악기에 비해 넓은 편이다. 오케스트라에 쓰이는 악기 중에서도 음역대로만 본다면 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바이올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높은음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 또한 첼로다. 이 원장은 첼로의 매력이 음역대에 있다고 했다.
“사람의 목소리와 비유하면 첼로의 음역대는 베이스, 테너, 알토, 소프라노 조금 위까지예요.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근접하죠. ‘첼로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인데, 그 질문에 저는 항상 ‘가장 인간적인 악기’라고 얘기합니다.”
이 원장은 어릴 때는 첼리스트가 될 생각이 없었다.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어머니가 아랫집 학생이 첼로 연습하는 걸 듣고 아들에게도 레슨을 시킨 것이다.
“악기 하나는 다루면서 음악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삶이 어떤 면에서 부모님의 로망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누나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어머님께서 ‘네가 첼로를 하면 트리오가 되겠다’면서 저를 독려하셨어요.”
“첼로 배우는 건 어땠냐”는 기자 질문에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별 생각이 있었겠어요”라며 웃었다.
말과 달리 그는 첼로를 참 잘했다. 12세에 서울 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자로 선발되는 등 재능이 남달랐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경희대학교 예비학교에 합격해서 교수님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그때부터 음악을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이강호 원장은 나이 열넷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예원학교 2학년 때 LA필하모닉의 비올라 수석에게 발탁된 덕이다.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크로스로드 스쿨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예술·과학 등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사립학교다.
“음악을 중시해서 음악을 배우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음악 메이저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어요. 요요마, 앙드레 프레빈 등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도 있었죠.”
그는 졸업 후 펜실베니아주의 스워스모어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100% 음악만 하겠다’는 확신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공부와 음악 둘 다 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학에 가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편하게 잘살기 위해서 어떤 분야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음악’이었다. ‘릴케’와 유대인 작곡가 ‘블로흐’가 쓴 책 덕분이다. 그는 “책을 읽고 ‘더 늦기 전에 음악에 몰두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경영학 학사를 받고 예일대에서 음악 석사,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공채를 통해 스물일곱 살, 이른 나이에 서던일리노이대 교수가 됐다. 그는 “투어를 다니는 전문 연주자보다 교수가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가 국내로 들어온 건 2010년이다. 한예종 음악원으로부터 교수 제의를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경영학 전공은) 음악하는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선택이었지만 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건 사실이에요. 예를 들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고민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사고력이 길러졌는데, 그 힘은 음악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경영학 학사를 받고 예일대학교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편하게 잘살기 위해서 어떤 분야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책 두 권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제가 고민하고 있으니까 선배가 읽어보라고 릴케가 쓴 ‘LETTERS TO A YOUNG POET(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라는 책을 선물했는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어떤 시인 지망생이 자신이 시인이 될 수 있을지 고민된다면서 자작시를 릴케에게 보내 조언을 구했죠. 릴케는 그 시를 읽기도 전에 ‘당신이 만약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라고 답변했어요. 그 내용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 작곡가 ‘블로흐(bloch)’가 쓴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충실하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음악이 아닐까. 항상 공부와 음악 두 가지를 동시에 해왔는데 더 늦기 전에 (음악에) 100% 몰두해서 한번 해보자’라고 결심하고 첼로로 대학원에 가게 됐죠.”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브람스요. 자신의 음악에 대해 타협이 없어요. 자신의 철학이나 예술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죠. 브람스는 곡을 많이 썼는데 자신을 대표할 수 있을 만한 곡이 아니면 다 태웠다고 해요. 사실 너무 아쉽죠.”
-지금 소유하고 있는 첼로는 어떤 악기인가요.
“이탈리아 악기이고요. 1770년에 만들어진 악기니까 오래된 악기죠. 피란체에서 ‘가브리엘’이라는 메이커가 제일 유명한데 그 사람이 만든 악기예요. 그때 7~8년간 고민하면서 악기를 찾았던 것 같아요. 동료나 학생들에게 ‘배우자 찾는 것만큼 어렵다’는 얘기를 했어요. 운명인지 모르겠는데 그 악기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 주인이었던 첼리스트가 제가 재직했던 주립대학교에 와서 연주도 하고 강사로 있었다고 하니 참 신기하죠.”
27년 만의 의기투합, 현악 4중주 ‘토너스 콰르텟’
토너스 콰르텟은 1996년 결성된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대표 실내악단이다. 각자의 바쁜 연주 일정과 후학 양성 등으로 활동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재결성했다. 27년 만이다. 기존 멤버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경희대 교수), 첼리스트 이강호와 비올리스트 한연숙, 바이올리니스트 김예지가 합류했다. 공연의 주제는 프랑스어로 ‘재생, 소생, 부흥’을 뜻하는 ‘르네상스’다. 이 원장이 제안했단다.
–연주회 준비는 잘 되나요.
“양고운 교수는 저를 ‘오빠’라고 부르는 유일한 음악계 교수예요. 그 정도로 오래 알던 사이라 이번 연주는 큰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연주회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세요.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선라이스(Sunrise, 일출)라는 부제가 붙은 하이든의 작품이 있는데요.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선라이스를 연주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중 콰르텟 8번을 연주하는데요. 쇼스타코비치는 오해를 굉장히 많이 받은 작곡가인데, 공산당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들게 살았던 인물입니다. 8번은 쇼스타코비치가 공산당에 할 수 없이 가입한 다음에 썼다고 해요. 죽고 싶어서 유언처럼 썼다고 합니다. 이 곡은 평소에 연주하고 싶었던 곡인 데다가 전쟁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쓰인 곡이라 우크라이나 사태도 있고 어떤 면에서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
현악 4중주는 4명의 현악 연주자로 이루어진 연주 형태를 말한다. 실내악에서 가장 중요하고 완성도가 높은 장르다. 실내악 연주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이 원장은 바이올리니스트 양고운과 함께 1996년에 창단한 토너스 트리오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2018년에는 브람스 트리오 음반 발매와 함께 벽산음악상을 수상했다.
–현악 4중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현악 4 중주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협업해서 작품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거라고 보고요. 그래서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 같아요. 솔로곡은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야 하지만 현악 4중주는 음악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 또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결국 끝까지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빨리빨리 문화가 있어서 당장 결과가 안 나오면 자기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라는 거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자기가 그 일을 정말 좋아하고 자기의 운명, 소명으로 생각한다면 ‘끝까지 사랑하고 즐기면서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이다’라고 얘기해 주고 싶네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예술의 경지가 높은 어떤 사람이 결국은 자신을 다 내려놓고 친구의 아들을 가르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자신의 것을 어린아이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 모든 걸 내려놓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나눔이 있는 연주나 교육 등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난달 26일 학교 차원에서 간호사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죠.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고생하신 간호사분들을 위해 연주를 했는데요. 취지가 좋다 보니 유명한 분들이 총출동했어요. 음악을 통해 서로 위안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떤 간호사분은 나가시면서 2년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다 날리고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좋았습니다.”
-현악4중주 연주회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현악4중주는 ‘네 명의 지식인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이번 연주회는 음악을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는 사람이 모여서 곡을 연주합니다. 오셔서 함께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강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 미국의 명문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스워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음악 석사,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음악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남일리노이주립대학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Edwardsville)과 코네티컷주립대학 (University of Connecticut)의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