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원한 봄(長春)>, 북미 최대 다큐영화제 ‘핫닥스’ 관객상
진실을 알리는 모든 채널이 폐쇄되고 오로지 당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공산주의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국영 TV 방송에 검열되지 않은 뉴스 영상을 송출한 중국인들의 실화가 애니메이션 다큐로 제작됐다.
캐나다의 영화감독 제이슨 로프터스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영원한 봄(Eternal Spring·長春)>이 지난 5월 북미 최대 다큐 영화제 ‘핫닥스(Hot Docs) 캐나다 국제 다큐 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20년 전 중국 지린성 장춘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지방 국영방송에서 가짜뉴스를 대대적으로 방송해 사람들을 악독한 방향으로 이끌자, 검열되지 않은 뉴스를 방송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한 작전을 펼친 18명의 용감한 중국인과 그들의 후일담을 다뤘다.
로프터스 감독은 미국에 진출해 ‘저스티스 리그’, ‘스타워즈’ 등 코믹스 작품에 참여한 중국 출신 만화가 궈징슝(郭競雄)과 협업을 통해 정교하고 세련된 연출을 보이며 극적인 사건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달했다.
만화가 궈징슝은 2006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전에서 최고상인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 시장에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당시 그가 출품한 작품은 홍콩의 전설적인 무협소설 작가 고(故) 김용과 작업한 ‘천룡팔부’였다.
미국에서 다슝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는 궈징슝은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홍콩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포스터를 그려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시민들은 그의 의협심 넘치는 포스터를 출력해 들고 다니며 용기를 냈다.
궈징슝은 홍콩 시위를 비롯해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다양한 작품으로 엮어왔고, 중국 공산당의 잔혹한 박해 대상이 된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로프터스 감독, 만화가 궈징슝은 이 작품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이타적인 동기에서 초인적인 용기를 발휘하고 이후 혹독한 대가를 감당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용기, 희생정신 그리고 믿음을 생각하게 했다.
국영TV에 ‘검열되지 않은 뉴스’…中 초유의 사건
<영원한 봄>은 지난 2002년 3월 5일 중국 북동부 지린성 창춘시의 국영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 시스템에 개입한 18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이날 장춘시 케이블방송 8개 채널에는 <분신자살인가, 속임수인가>, <파룬따파,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라는 2편의 다큐가 45분가량 방송됐다.
파룬궁은 진(眞)·선(善)·인(忍)을 원칙으로 하는 명상 수련으로 1992년 중국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됐고 신체적·정신적 건강 개선 효과가 뛰어나 큰 인기를 얻었다. 중국 스포츠 분야 담당기관인 국가체육총국의 공식 추정치에 따르면 1999년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는 7천만 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던 장쩌민은 파룬궁의 인기를 공산정권의 전체주의 통치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고, 1999년 7월 20일부터 본격적인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다.
탄압은 파룬궁과 그 수련자들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표적 사례가 2001년 1월 23일 발생한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이다.
이는 처음부터 파룬궁이 혐오의 대상이 되게 할 목적으로 꾸며낸 날조극이었다. 자신을 파룬궁 수련자라고 밝힌 5명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죽어서 천국에 가겠다’며 분신했다는 게 겉으로 드러난 이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이는 파룬궁의 가르침과는 위배된다. 파룬궁은 살생은 물론 자살을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이 사건은 허술한 점이 많았다. 분신 장면은 마침 사건 현장 부근을 비추고 있던 톈안먼 광장 CCTV에 생생하게 포착됐고, 운 좋게 현장에 출동한 방송 카메라에도 잡혔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톈안먼 광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이뤄지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관영언론은 이 영상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아침저녁으로 내보내며 선전 공세를 폈고, 사람들은 충격적인 사건과 영상에 압도됐다. 그렇게 파룬궁은 말살돼야 마땅한 ‘사이비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많은 중국인이 파룬궁을 위험하다고 여기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동료, 이웃, 심지어 가족을 당국에 신고했다. 문화대혁명 때 혁명에 반대하는 가족과 친구를 고발했던 비극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같은 영상을 수백 번 방송하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영상에선 연기와 소화기 분말이 자욱했지만, 영상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불길에 휩싸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는 당국의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불길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전혀 촬영되지 않은 것 역시 미심쩍인 부분이었다. 영상을 보면 소화기 분말에 가려 사람도 잘 안 보인다.
이는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신속히 대응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해외 비영리단체가 CCTV 영상을 자세히 분석한 다큐 <분신 자살인가, 속임수인가>를 보면, 사건 당시 경찰들은 불과 몇 분 사이에 경찰차에서 소화기 20여 개와 담요를 가져왔고, 예기치 못한 사고임에도 당황한 기색도 없었다.
이 밖에도 인화물질을 담는 데 사용됐다는 PET병이 전혀 녹지 않은 채로 희생자의 품에서 발견됐다. 후속 보도에서는 엄마 손에 이끌려 분신을 시도했다가 전신 화상을 입은 어린이가 기관지 절개 수술 나흘 만에 기자가 내민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속출했다.
중국 장춘에서 수련자들이 TV방송 신호에 끼워넣어 방송한 다큐가 바로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다큐는 해외의 비영리기관이 제작한 것으로, 중국에 있는 수많은 사람은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고 해외 파룬궁 수련자들을 통해 그 존재와 내용이 일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당국이 검열하고 허용한 뉴스만 접할 수 있던 중국인들은 아침저녁으로 방송에서 틀어주는 내용만 봐야 했고, 그렇게 관영언론은 파룬궁에 대한 흑색선전으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이 파룬궁 수련자 18명이 이러한 다큐를 여러 중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국영방송 신호를 가로챌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 다큐가 전파를 타자, 당국은 대대적인 단속을 시행해 장춘시 안팎에서 파룬궁 수련자 5천명 이상을 체포했고 이 중 최소 7명이 수일 안에 폭행과 고문 끝에 숨을 거뒀다.
다큐 제작진, 중국 측 ‘불이익’ 위협 받아
로프터스 감독은 <영원한 봄>을 찍는 동안 중국 정권이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고 중국에 있는 그의 가족을 위협했다고 말했다.
이번 다큐와 별개로, 로프터스 감독은 만화가 궈징슝과 비디오 게임 제작에 참여했고 이 게임은 중국 엔터테인먼트·IT 대기업 텐센트를 통해 중국 시장에 출시됐다.
로프터스 감독은 “다큐를 만드는 동안 중국 정부는 텐센트 측의 내 사업파트너들에게 연락해 우리 회사와의 관계를 끊도록 강요했다”며 “결국 거래가 끊겼다”고 지난 5월 수상 직후 에포크타임스에 말했다.
그는 “중국에 살고 있는 내 아내와 가족이 중국 공안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일종의 협박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리는 것은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프터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이 이야기에서 만나는 인물들에게서 감동을 받고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려 얼마나 많은 것을 겪었고 희생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자유를 사용해야 할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