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이 ‘로열 요트 브리타니아’호를 타고 홍콩에서 출항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저널리스트 겸 사회활동가로 홍콩에 첫발을 내디뎠다. 홍콩은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도시였다.
나는 홍콩 반환 직후 처음 5년간 홍콩에서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이 홍콩 반환의 근간으로 세운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시작을 목격할 기회를 가졌다.
또한 동서양을 잇는 관문인 홍콩이라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특권을 누렸다. 동양과 서양, 현대와 전통이 뒤섞인 이 도시는 민주주의 세계와 세계 최대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했다.
처음 5년 동안 중국 공산당은 대체로 일국양제 원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홍콩의 자유는 대부분 보장됐다. 고도의 자치권이 유지됐고 법치주의도 실현됐다.
나는 작은 잡지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폐간된 민주 진영 일간지인 <홍콩아이메일>의 수석 편집장 겸 칼럼니스트로 재직했다.
지금 홍콩에서 그런 일을 했다면 당장 투옥됐겠지만 그 당시 나는 중국의 지도자와 홍콩에 있는 그의 부역자들에 대한 칼럼을 썼다.
당시 홍콩 보안장관이었던 레지나 입(葉劉淑儀)은 리셉션에서 내 동료 기자들에게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동료 기자들은 편집실에 돌아와 웃으며 “레지나가 행복하지 않대”라고 말할 뿐이었다.
내가 편집하는 잡지 <차이나 스태프(China Staff)>에서 베이징 철도 노동가 출신의 노동 권익 운동가 한둥팡(韓東方)을 인터뷰했을 때 문제가 되긴 했지만, 기껏해야 인터뷰 내용이 실린 호(號)만 중국 본토에서 판매 금지되는 정도였고, 그 사건을 제외하면 나는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홍콩은 내게 저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쌓은 도시이자, 자유를 거부당한 아시아 전역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유의 허브가 됐다.
홍콩에서 나는 북한 주민들을 도우려는 국제 활동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카오에 체류하는 동티모르 난민들과 함께 1999년 동티모르 대학살에 항의하는 홍콩 집회를 준비하기도 했다. 홍콩 기독교 단체와 힘을 합쳐 아시아 지역 난민들을 도운 일도 있었다.
내게 1997~2002년 사이의 홍콩은 분쟁과 억압 속에서 도움이 긴급한 사람들을 도울 아시아의 전초 기지였다.
그때는 내가 홍콩을 위해 시위를 하거나 홍콩 시민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를 설립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홍콩에 있는 내 친구들이 투옥되거나 해외로 망명하거나 침묵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환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홍콩은 모든 사람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된 도시에서 가장 억압적인 경찰국가로 변모했다.
중국 공산당이 엄격한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지 2년 만에 홍콩의 언론, 집회,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 자치권, 법치주의가 박살 났다.
한때 자유의 오아시스였던 도시에서 이제는 누구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
오늘날 홍콩에서는 모두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아시아의 진주’, ‘세계도시’였던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제 외국인과 감히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홍콩 국가안전법이 실행되기 이전에, 나는 수십 명의 홍콩 친구들과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현재 나는 친구들에게 거의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까 봐 걱정돼서다.
나는 2017년부터 홍콩 입국이 거부됐다. 런던에 있는 내 본가, 이웃, 어머니와 내 고용주는 익명의 협박 편지를 받았고, 주영 중국 대사관은 나를 침묵시키려 영국 의회와 의원들에게 로비했다.
2022년 홍콩 경찰과 국가안전처는 내게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며 거액의 벌금형과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협박했다. 홍콩 입국이 거부돼 런던에 머물고 있는 내게 말이다.
중국 당국이 내게 무슨 제재를 가할 수 있겠는가. 다만, 홍콩이나 중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은 국가라면 이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콩 반환 25주년을 맞은 홍콩인들의 걱정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영국과 협정을 체결했다. 유엔에 제출된 이 협정은 2047년까지 유효한 ‘중영공동선언’이다. 흔히 ‘홍콩반환협정’으로 불린다.
이 협정에는 홍콩인의 자유, 기본적 인권, 자치, 법치, 생활 방식을 반환 이후에도 계속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약속했던 기한의 절반도 지나기 전에 중국 공산당은 이를 완전히 어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무너뜨렸다.
홍콩반환협정을 짓뭉개버린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응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우선 두 가지 주요한 조치가 떠오른다. 홍콩을 탈출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선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계략에 가담하는 이들의 생명선을 끊어야 한다.
영국은 잠재적으로 수십만, 수백만 홍콩인들에게 ‘영국 해외국민 여권(BNO)’을 발급해 주기로 했다. 이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들은 비자를 신청하면 5년간 영국에 거주하고 1년 뒤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자유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셈이다.
캐나다와 호주도 홍콩인을 구제할 방안을 발표했지만, 아마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도울 수 있고, 가능하다면 뉴질랜드, 일본도 홍콩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자유세계는 하나로 단합해,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인권을 유린하는 잔악한 정권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일에 좀 더 과감해야 한다.
자유세계의 경제적 관계는 더 다양해져야 한다. 각국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연금기금이 대량학살, 반인륜적 범죄, 억압 및 감시의 도구에 투자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약속된 홍콩의 자유를 짓뭉갠 자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전 세계 주요 민주국가들은 상호 협력을 기반으로 중국의 폭압 위정자와 홍콩의 반역자에 대해 더욱 강경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지난달 ‘홍콩일기’를 출간한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 경은 지난 1일 인권단체 ‘홍콩워치’가 런던의 에마뉘엘 센터에서 개최하는 행사에서 참석해 수백 명의 홍콩인과 홍콩 친구들에게 연설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홍콩을 지지하자고 외쳤다.
홍콩의 친구인 우리는 홍콩인들과 함께 노래할 것이다. 우리 가슴속에 그렇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의지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먼저 홍콩인을 돕기 위해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홍콩을 파괴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것 두 가지가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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