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세계역사·국제질서 속에서 우리 역사 인식해야” 이명희 교수

2022년 04월 07일 오후 8:28

“역사 인식 둘러싼 국민 분열, 국제 갈등 심화”
“다양한 관점의 한국사 편찬 제안”
“역사 정리, 편찬 장려…대한민국 토대 공고화, 미래 유산 창출”

“세계사의 맥락과 국제질서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찾는 노력이 국가의 존속을 보장하는 길이다.”

4월 7일 (재)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현대사학회 회장)는 ‘세계시민으로서 국민적 역사 인식 형성을 위한 역사 정책 방안’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명희 교수는 “글로벌화하는 현대문명의 본질과 국제질서 속에서 자의식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국민적 역사 교양 형성과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역사를 계급적,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개인적 관점, 국민적 관점, 인류적 관점을 조화시킨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며 “특히 학교 차원의 역사 교육에서 이런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국민적 분열과 국제적 갈등의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교과서뿐 아니라 국가기념일을 둘러싼 국민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과거사에 관한 역사 인식 문제가 주요한 외교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제주 4·3 추념식에 대통령 당선인이 참여한 문제를 놓고 지지층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고 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4월 3일 열린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4·3 희생자 추념일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이나 당선자가 4·3 추념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교수는 역사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원칙으로 우선 “역사의 기록과 편찬 그 자체가 후대를 위한 유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후대에 물려줄 가치 있는 유산으로서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 문제에 대한 국가 및 정부 주도의 위험성을 경계하며 “정부와 국가는 아젠다를 설정하고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연구·편찬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진행 과정에는 학계와 국민, 민간 차원에서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특히 “역사 문제 인식에서 국사만 중시하고 세계사를 등한시하거나 우리 역사를 세계사와 분리해 일국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세계사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오른쪽) | 연합뉴스

접근방식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법제 등을 통한 방식보다는 사업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역사 정책 방안으로 ▲역사편찬위원회 확대 개편 ▲대한민국열전 편찬 ▲세계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 토대 구축 ▲4개 정파적 입장의 한국사 편찬 지원 ▲국내·세계10대 사건 선정 및 공표 등 5가지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현 국사편찬위원회를 ‘역사편찬위원회’로 확대 개편하자며 “세계사적 맥락 속의 한국사, 현대문명과 세계질서 속의 대한민국사 체계를 갖추기 위해 이름부터 바꾸고 성격도 달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의 건국, 산업화, 민주화, 교육·과학·기술발전·K컬처 형성 등에 기여한 100인의 국가 위인과 1000인의 국민 위인 열전을 편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70년 넘는 우리 대한민국사는 우리 민족에게만 의미 있는 시대가 아니라 인류에게도 중요한 경험”이라며 “격변의 문명 전환기에 대한민국을 일군 한국인의 활약상을 기록해 남기는 것은 우리의 미래 유산이자 인류를 위한 유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대한민국의 토대를 공고히 하는 이러한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이념적 가치에 의해 대한민국사 전체를 일방적으로 해석, 평가, 재단하는 일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나”라고 반문하며 “국가의 중심이 무엇이고 어떤 이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결여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역사 정책 방안으로 세계 각 민족, 국가의 역사·문화·인물·예술·산업 등을 담은 ‘세계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하자고 주문했다. 그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본보기로 제시하며 ‘세계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한다면 세계 국가 대한민국의 기반을 확립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민족의 문화 유산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 집대성해 편찬한 백과사전이다.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당시까지의 한국학 연구를 집대성한 편찬 작업을 시작해 1991년, 총 27권으로 완간했다.

이 교수는 국민 교양을 위한 다양한 관점의 한국사(통사)를 새롭게 편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4개 정파(우파-중도우파-중도좌파-좌파)적 입장의 한국사 편찬을 제안했다. 국민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해져서 단일한 관점의 역사 편찬 시도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검증된 사실에 입각해야 하고 상대 편찬자의 입장에서도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국내 10대 사건’과 ‘세계 10대 사건’을 선정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는 “역사편찬위원회가 일정한 기준을 세워 통찰력과 문제의식에 기반해 시시각각 일어나는 국내·외 사건을 주간 단위로 기록하자”면서 “매해 연말·연초에 국내 및 세계 10대 사건을 선정해 공표함으로써 국민의 역사의식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희 교수는 “세계사의 추이와 전개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확한 역사 인식의 형성 속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전망하는 노력이 국가의 존속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구한 말 이런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민족 및 자국의 성립, 발전의 역사에 대한 종합적이고 깊은 이해는 국가적·민족적 정체성의 기초가 된다”며 “넓고 깊고 종합적인 역사 인식의 토대 위에서 글로벌 한국인 육성 및 뿌리 깊은 나라, 격조 높은 문화 강국 대한민국이 확립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