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 9일 대선에 야당인 국민의힘당(PPP) 후보로 출마하여 근소한 표차로 여당의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파 간, 지역 간, 세대 간, 이념세력 간 경쟁 등 다양한 경쟁구도들이 뒤섞인 이번 대선의 성격을 딱히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과거 어느 대선보다도 이념대결·정책대결 성격이 강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좌우 스팩트럼의 왼쪽에 위치한 집권세력과 그보다는 좀 더 오른쪽에 위치한 야당이 이념과 정책노선을 놓고 ‘좌우 대결’을 벌였다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소위 ‘우파’로 분류되는 유권자들, 즉 문재인 정부가 1948년에 건국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친북(親北)·종중(從中)·탈미(脫美)·반일(反日) 기조하에서 국가안보를 경시한 것으로 비판해온 한국인들은 누가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고 안보와 외교를 굳건히 할 후보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윤 당선자가 선거 중에 밝힌 공약과 당선 직후 발표한 인사말을 종합할 때 차기 정부는 이런 우파 국민들의 기대에 대체로 부응하는 안보 기조를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즉, 윤석열 정부하에서 한국은 전임 정부가 답습해온 친북·친중·탈미·반일 대외 기조에서 탈피하고 독자역량 강화, 동맹역량 복원, 서방국가들과의 협력 등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당당한 외교와 튼튼한 국방 그리고 동맹 재건”
선거 다음 날인 3월 10일 오전 윤 당선자는 국회도서관에서 발표한 인사말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겠다”고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나 이념과는 멀리하겠다고 했다.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중심의 경제’를 약속했고 “성장이 있어야 따뜻한 복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윤 당선인은 북핵 위협과 미중 전략 경쟁 긴장 속에서 글로벌 외교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당당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거듭나겠다”고 했고, ‘상호존중의 한중관계’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약속했으며, 글로벌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경제안보 외교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신냉전 국제구도에서 자유민주주의 서방국가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상호 존중의 한중관계’라는 표현으로 중국이 지금까지 한국을 존중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앞으로는 중국의 일방적인 주권 침해 언행에 대해서는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표현에는 파탄에 이른 한일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문제와 동맹에 대해서도 선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윤 당선인은 국민 안전과 재산 그리고 영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도발을 억제하는 강력한 국방력을 구축할 것이며, “북한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되 남북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어놓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미동맹을 재건하고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북한관련 발언은 ‘남북 협력 추구와 확고한 안보 태세의 병행’이라는 대북 기조의 정론을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동맹 관련 발언 역시 문재인-트럼프 정부 동안 이완된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 과제
윤 당선자가 밝힌 ‘줄기’에 해당하는 안보 기조들은 지체 없이 시행해야 하는 대과제들이다. 즉, 안보 정론에 입각한 북핵 대응, 상호 존중의 한중관계와 동맹 중심의 안보외교, 남북 협력과 확고한 안보 태세의 병행이라는 대북 원칙, 한일관계 복원을 통한 한·미·일 안보 공조 등은 새 정부가 지체 없이 시행해야 할 안보 기조들이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가지’에 해당하는 무수한 안보 과제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 문재인 정부 동안 유약화된 한국군을 재정비하고 한미동맹의 새 출발을 위해 각종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한국군 재정비를 위해서는 과도한 군 복무기간 단축과 병력 감축, 과도한 병사 봉급 인상, 복지 증진을 빙자한 군기강 이완, 군 고위직 인사에 대한 정치적 개입, 주적 개념 및 안보교육의 실종 등 문재인 정부 동안 실시된 인기영합식 정책들을 폐기하고 강군 육성을 위한 제반 시책들을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화되지 않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한반도 평화시대 개막 및 평화정착’을 전제로 약소(弱小) 지향적 국방력 조정을 지향해온 ‘국방개혁 2.0’을 즉각 다시 개혁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막무가내식 핵무력 증강으로 당분간 북핵과의 공존이 불가피해졌음을 인정하고 ‘한국형 3축 체제’의 강화 등을 통해 독자적 억제력을 키워나가면서 동맹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새 출발과 한미일 안보공조 복원을 위해서도 시급한 정책 이슈들이 많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취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동맹을 중심에 둔 상태에서 중국과의 상호 호혜적 관계를 모색해나가는 ‘alliance plus hedging’ 원칙으로 대체하는 문제, 방위비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증액해 나가는 문제,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안보협력체인 QUAD, Five Eyes 등에 참여하는 문제, 사드(THAAD)의 추가 배치, 연합훈련 복원 등 동맹 결속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문제, 재미 좌성향 한인단체들의 미 정치권 및 정부를 향한 친북 로비에 대응하는 문제, 섣부른 종전선언이 가져올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문제, 보다 효과적인 북핵 억제를 위해 미 핵우산의 신뢰성을 강화하고 ‘작계 5015’를 수정하는 문제, 한미일 안보공조 복원을 위해 실무협의체를 재가동하는 문제 등 무수한 정책 과제들이 윤석열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순탄하지 않을 새 정부의 앞길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막중한 안보 과제들을 수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정치지형 속에서 윤 당선자가 뜻을 관철시켜 나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안보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전략 마인드가 필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향후 세계는 냉전시대 유산인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 다시 내려진 가운데 민주주의 국가들이 전제주의 국가들에 맞서는 신냉전이 본격화될 수 있고,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두둔으로 북핵에 대해 유엔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시대를 맞을 수 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시대에 북핵과 팽창주의 중국을 머리맡에 둔 한국의 장단기 생존 전략을 설계하는 안목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선거에 공을 세운 정치인들이 전문가의 영역인 정책 분야를 장악하는 정부에서는 이런 전략마인드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정치 초년병으로서 ‘골수 지지세력’이 부재한 가운데 당선된 윤 대통령에게는 새로이 여당이 된 국민의힘당을 국민이 바라는 대로 개혁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을 우군화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전히 국회 의석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거센 저항을 극복하고 전임 정부가 양산한 좌성향 법제도들을 청산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윤 당선자가 자신들을 깜짝 놀라게 할 ‘소신과 뚝심’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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