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8일째를 맞은 가운데 러시아군 주력 병력이 현지 원전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공사는 4일(현지시각) 오전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자포리아 원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원전공사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방송에 “포탄이 원전에 직접 떨어져 6개 원자로 중 하나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투즈 대변인은 “공격을 받은 원자로는 수리 중이고 작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부에 핵연료가 있다”며 “소방관들이 총격을 받고 있어 화재 지역 근처로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리아 원전 우크라이나 전체 발전량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는 “발전소 인근에서 높은 수준에 방사선이 검출됐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공사 경영진은 러시아군이 아포리아 원전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며 “운동복 차림에 칼리시니코프(AK-47 돌격소총)로 무장한 젊은이들 다수가 시내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가와 주택 출입문을 부수고 안에 들어가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 부대가 원전 장악을 시도하는 사이, 우크라이나 측 방어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일종의 양동작전으로 여겨진다.
자포리아 원전 인근에 위치한 도시 에네르호다르에서는 시민들이 러시아 병력의 진입을 막기 위해 차량과 타이어, 모래주머니로 바이케이드를 구축하고 결사항전으로 맞서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군 병력은 원전 4km 거리까지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이 장악될 위험에 빠지자, 우크라이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3일 저녁 성명을 내고 서방 국가들에 자포리아 원전 상공 봉쇄를 요구했다. 슈미갈 총리는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야 한다”며 “이는 전 세계의 안전을 위한 긴급요청”이라고 말했다.
슈미갈 총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도 같은 요청을 했지만, 미국과 나토는 난색을 나타냈다. 나토가 자포리아와 인근 지역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할 경우, 서방 군대와 러시아군이 직접 충돌해 전쟁이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푸틴 측근 재벌 등 추가 제재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제재 대상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러시아 신흥재벌 19명과 그 가족 47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과 함께 일종의 과두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 철강·광물업체 ‘메탈로인베스트’ 소유주이자 142억달러(약 17조원)의 자산가인 알리셰리 우스마토프는 독일이 압류한 것으로 알려진 호화 요트와 전용 제트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됐으며, 미국에 있는 자산이 동결됐다. 미국 개인·기업과 금융 거래도 차단됐다.
미 백악관은 또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을 비롯해 단체 7곳과 개인 26명에 대해서도 “러시아에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제재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페스코프 대변인을 “푸틴에 대한 선전을 가장 잘하는 인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한편 키예프로 진군하는 러시아군의 탱크와 장갑차, 보급차량 행렬이 무려 64km로 길게 늘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파상공세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타임스는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의 발언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다수의 러시아군 차량을 공격해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부다노프 국장은 구체적인 파괴 대수와 사망한 러시아군 인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 업데이트: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원전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우크라이나 원전공사 측 발표 내용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