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 추산 160억달러(약 19조1천억원)을 들인 공산당 체제 선전 잔치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국제사회에서는 부실 운영과 편파 판정 논란으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중국 내부에서는 미국을 제친 중국의 승리보다는 공산당 체제의 추악성을 나타내는 ‘쇠사슬녀(鐵鏈女)’ 사건에 온통 눈이 쏠린 까닭이다.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는 지난 18일까지 무려 24억 회가 넘은 조회수를 기록한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바로 ‘펑현 8남매 출산녀 사건 조사팀 구성'(#豐縣生育八孩女子事件調查組成立#)이다.
엄청난 조회수로 웨이보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 이 키워드는 일명 ‘쇠사슬녀’로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한 당국의 조사에 중국인들이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보여준다.
정권에 불리한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을 검열하고 게시물을 삭제하는 당국도 이번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검열과 삭제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지만, 취재 기자와 피해 여성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에게 현지 경찰이 주먹질한 일이 알려지면서 역풍이 만만찮다.
이 사건은 지난달 말 중국 장쑤성 쉬저우의 한 시골마을에서 참혹한 삶을 살고 있던 여성의 존재를 한 사회고발 블로거 A씨가 세상에 알리면서 촉발됐다. 이 여성은 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추운 겨울에 문도 없는 헛간에서 외투 하나 없이 지내고 있었다.
A씨는 이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 올렸다.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됐고, 충격을 받은 중국 네티즌들은 관할 지역 당국에 인신매매나 학대 범죄로 보인다며 조속한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건 조사와 책임자 처벌로 간단하게 끝날 일을 전국적 ‘극대노’ 사건으로 키운 것은 지방정부와 여성단체, 관할 공안국의 졸속 대응이었다.
쉬저우 정부는 관할 공안국에서 수사팀을 파견해 조사한 결과, DNA 검사를 통해 이 여성이 중국 남부 윈난성에 살던 양씨이며, 정신질환을 앓던 양씨가 실종됐다가 이 마을에 사는 둥모씨와 결혼해 8명의 자녀를 낳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인신매매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겨울에 얇은 옷만 입고 목에 쇠사슬을 매단 여성이 인신매매가 아니라는 공안국 발표는 네티즌을 격분시켰다. 양씨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경찰의 거짓말이며, 인신매매 후 성폭행을 당해 출산한 것 같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또한 소식을 접한 시민기자들,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해당 지역을 방문했지만 공안들이 마을 입구를 막고 이들에게 주먹질을 하며 쫓아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욱 달아 올랐다. 온라인에서는 이 사건을 전한 게시물이 삭제됐다.
쉬저우 당국은 양씨 사건과 관련해 4건의 공지를 발표하면서 사건을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인터넷 언론만 소식을 전했을 뿐 관영매체는 침묵했다.
그럼에도 ‘쇠사슬녀’ 사건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쉬저우 당국은 지난 10일에야 남편 둥씨 등 3명을 불법 감금 혐의로 기소했고 밝히며 여론 진화에 나섰다. 관영 CCTV는 이날 처음 사건을 보도했다. 쉬저우 당국을 두둔하는 내용이었다.
당국의 게시물 삭제 속에서도 비난 여론이 계속됐다. 15일에는 베이징대 동문 100명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으나 삭제됐고, 여러 대학에서 재학생들이 잇달아 성명을 발표했고, 해외에서는 유학생들이 항의집회를 열였다.
장쑤성 정부는 17일 “철저한 조사로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정말로 진상이 규명되고 관계당국에서 책임 있는 관리들을 처벌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최악으로 치닫는데도 “상황이 좋다”는 허장성세
해외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국 내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로 인해 개막 전부터 세계적으로 논란이 됐다. 미국, 영국 등은 선수단만 파견하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택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가까운 국가들도 적잖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차이나 머니’에 굴복해 공산주의 정권의 이미지 세탁을 거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대내적으로 중국이 선진국에 올라섰으며,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선전에 열중했다. 이례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한 귀화선수 구아이링(谷爱凌)을 이용해 민족주의를 선전했다.
특히 미국에서 자라나 미국 대표선수까지 지낸 구아이링이 미국이 아닌 중국을 선택했다는 점은 정권에 선동된 중국인들에게 마치 중국이 미국보다 앞서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구아이린은 올림픽이 끝나자 거액의 광고료만 챙겨 도로 미국행을 선언해 중국 내 민족주의 세력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듣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쉬저우의 시골마을 헛간에서 목에 쇠사슬을 매단 채 얇은 옷차림으로 혹독한 추위에 노출된 양씨의 모습은 관영언론이 전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선진적’ 분위기와는 극한의 대조를 나타냈다.
중국 네티즌들은 양씨를 성노예, 출산 기계, 인신매매와 성폭행 피해자로 보고 동정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여론의 관심에 불을 지핀 부분이다. 양씨 사건을 계기로 중국 온라인에서는 실종과 인신매매 피해 호소 게시물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아동 정책 담당부서인 중화 전국부녀연합회(이하 부녀연합회)의 대응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다. 부녀연합회는 장쑤성이 수사 방침을 발표한 17일에야 처음 반응을 나타냈다. 최초 폭로 후 3주가 지난 ‘뒷북’이었다.
부녀연합회는 이날 장쑤성 정부가 철저 수사 방침을 발표하자 “장쑤성의 조사가 원활히 진행되길 희망한다”는 성명을 냈다. 여성과 아동을 위한다던 구호가 무색한, 내용 없는 성명이었다.
전날 베이징대학 우비후(吳必虎) 교수는 웨이보를 통해 부녀연합회의 “심각한 무관심”을 꾸짖고 “연합회는 사과해야 하고, 쉬저우 지부는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당국에 여러 차례 구금됐던 인권변호사 류샤오위안(劉曉原)도 “책임을 다하라”고 쏘아붙였다.
시진핑 움직였나…공산당 관리들 뒤늦은 대응
일각에서는 사건의 파장이 확산되자 시진핑이 움직였으리라는 관측이 제시된다.
중국 내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장쑤성 정부 차원의 조사팀 구성이 3주 만에 이뤄졌다. 상당히 느린 반응이다. 이제 와서 무마가 아니라 조사 쪽으로 방향이 잡힌 것은 상위에서 명령이 하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현재 중국 공산당 관리들 중에서는 스스로 책임 있게 정치하는 인물이 없다. 시진핑의 결정만 기다리며 납작 엎드린 상황”이라며 지난해 청년 층에서 유행했던 ‘탕핑(躺平·드러눕기)’이 고위층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형세라고 전했다.
민생에 무관심한 관리들의 평소 성향도 있지만, 시진핑이 권력을 집중시키면서 지방정부의 권한이 축소되자 내부에서 일고 있는 반발 심리도 작용했으리라고 소식통은 분석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 탕징위안은 “2019년 말 후베이성 우한에서 당시 우한 폐렴으로 불린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을 때도 일선 관리들은 중앙 정부 지시만 기다렸다. 시진핑은 1월 20일에야 공식 대응을 지시했는데, 그 사이에 관리들이 한 것은 소식을 은폐한 일뿐이었다”고 지적했다.
탕징위안은 “그 사이에 사태의 위험성을 경고한 내부고발자들, 의사 리원량(李文亮) 같은 인물은 오히려 제재를 당했으며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라는 겁박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이 같은 수동적 대처가 사람들과 외국에까지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라며 “결국 중공 바이러스는 우한을 빠져나가 중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졌다. 공산당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외국에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중국에서는 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한 사람이 오히려 ‘해결당한다'”며 “공산당은 방역 과정에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