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규탄 시위를 유혈진압한 카자흐스탄 사태가 주말을 고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AP통신은 카자흐스탄 당국 발표 등을 인용해 이번 시위로 6천여명이 체포되고 16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자국 시위대를 향해 “경고 없이 사살하라”고 명령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보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중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자흐스탄과 더 긴밀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7일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내 유혈 진압을 “과감하고 효과적인 조치였다”고 지지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지지 메시지를 받고 얼마 뒤 “경고 없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시위는 지난 2일 LPG(액화석유가스) 가격이 두 배 이상 폭등하자 카자흐스탄 서남부 지역에서 시작해 4일 최대 도시 알마티까지 확산했다. LPG는 카자흐스탄인들에게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5일 전국에 2주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LPG 문제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는 점점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폭력성 짙은 시위로 성격이 바뀌어 갔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는 군인들을 동원하며 장갑차까지 도심에 등장했다.
6일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사건은 내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음 날 시 주석은 중국이 “카자흐스탄의 형제이자 이웃이며 영구적인 전략 동반자”라고 언급한 뒤 “모든 것을 다해 필요한 지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적극적인 지지로 입장을 변경한 것이다.
시 주석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외세 개입” 주장에 대해서도 근거 없이 동의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시위가 “외국에서 훈련받은 테러리스트가 개입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 주석 역시 이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아 “외부 세력이 고의로 카자흐스탄에 불안을 조성하고 ‘색깔 혁명’을 일으키려는 데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 주석은 “(외부 세력이) 중국과 카자흐스탄 우호를 파괴하고 양국 협력을 교란하려는 기도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즉, 1000만명 이상 거리로 나와 정권을 규탄한 시위가 중공과 카자흐스탄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외국 세력의 음모라고 본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거점 국가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을 자국 수출의 물류 전진 기지로 삼고 있다. 중국에 있어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물류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해 중국은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는 중국과 동맹국임에도 인도에 자국 무기를 팔았다. 2018년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해 사거리 400㎞에 달하는 S-400 첨단 방공미사일 시스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는 이달 초부터 미사일을 전달받아 중국과 파키스탄의 대응용으로 삼을 방침이다.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 중국 교두보
카자흐스탄 정부는 친중, 친러 성향이 짙다. 카자흐스탄은 2001년 중국과 러시아의 주도로 출범한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회원국이다. 상하이협력기구는 반미 연합 전선이라 할 수 있다. 2005년 기구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권 교체에 외세의 개입을 반대하며 이 지역의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카자흐스탄은 2013년 9월 시 주석의 일대일로 구축 제안을 받았고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이듬해 11월 내수 경기 부양과 아시아-유럽을 잇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물류의 거점으로 부상하겠다며 누를리졸(Nurly Zhol)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목표에 영향을 받아 그 목표에 부합한다고 평가됐다. 카자흐스탄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발을 맞추면서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주요 교역국이자 투자국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30년간 지속하는 나자르바예프 독재 정권에, 친중 친러 정책에 불만이 쌓여 갔다. 사회적으로 반중 정서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에 예의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로 이들의 속을 썩이고 있는 러시아의 공수부대 개입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에 자국 공수부대를 직접 파견한 것과 관련해 미국도 대책이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배경에는 러시아의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8월 “카자흐인들은 한 번도 자기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6일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과 세계는 인권 침해 여부를 예의주시하겠다”며 “우리는 (러시아군의) 카자흐스탄 주요 기관 장악을 우려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및 정치적 지원을 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EU도 같은 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이번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대해 “피해야 할 기억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인의 권리 및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며 “유럽연합은 카자흐스탄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U는 오는 2025년까지 5천 명 규모의 유럽합동군을 창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