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명에 대한 푸틴의 경고, 뒤바뀐 이데올로기 지형

박상후 /국제관계,역사문화평론가
2021년 10월 24일 오전 11:11 업데이트: 2022년 05월 28일 오전 11:36

푸틴 “서방 좌파, 구 소련서 폐기처분한 이념 다시 들고 나와”
“‘정치적 올바름’, ‘차별 반대’ 등 모두 소련에서 써먹었던 것”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방세계에 독버섯처럼 일어나고 있는 극좌 소위 ‘깨어난(Woke)’ 이데올로기를 거세게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소치에서 열린 18회 ‘발다이 클럽'(Valdai Discussion Club) 총회에서 ‘깨어난 이데올로기’가 서방세계 전체에서 사회악을 낳고 있다며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발생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진보의 기함으로 착각하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비 현상을 보고 있자니 당혹스럽다”고 꼬집은 푸틴은 “서구의 사회 문화적 충격과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러시아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스스로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려 기를 쓰는 이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들은 ‘사회를 변혁한다’는 명분으로 소위 ‘소수자’ 이익을 과잉옹호하고 있으며 어머니, 아버지, 가족 그리고 성 구분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포기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구 국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권리가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압도적 다수가 그런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소위 ‘사회적 진보’에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인간성에 새로운 ‘깨어남’과 ‘더 올바름’을 이식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에 기반한 ‘깨어난 이데올로기’를 향한 강력한 경고다.

푸틴은 “하나만은 분명히 밝혀두겠다”면서 서구 ‘깨어난 사조’의 레시피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이미 봤던 것이고,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전후에 발생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볼셰비키가 마르크스-엥겔스의 도그마를 따랐던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엥겔스와 마르크스 | 위키커먼스

푸틴은 “볼셰비키들이 전통적 정치 경제적 생활방식은 물론이고 도덕의 개념, 건전한 사회의 기본원칙을 바꿀 것을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볼셰비키가 수 세기 동안 지켜진 가치관을 바꾸려,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려 시도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을 고발하도록 독려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런 행위들이 소위 ‘진보’라는 용어로 포장됐다며, 이런 행태가 한때 전 세계에서 유행처럼 번졌는데 또다시 이런 현상을 보게 됐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볼셰비키는 자신들과 다른 모든 여론에 대해 절대 용납하지 않았는데, 지금 벌어지는 행태가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며 “지금 서구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과거 러시아에서 봐 왔던 것들이며, 이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평등을 위해서” “차별에 반대한다”는 명목의 투쟁이 말도 안 되는 공격적 도그마로 흘렀다면서 최근 서구세계에서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가 ‘젠더나 인종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낡은 고전’이라고 낙인찍혀 학교에서 교육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푸틴은 과거 스탈린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혐오했음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일찍이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모스크바 극장에서 햄릿을 올리려다 스탈린이 그 작품을 상연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바람에 공포에 질려 포기한 적이 있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스탈린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반역적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건 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소련에서는 상연되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취소문화(Cancel Culture·캔슬 컬처)는 서방이 아니라 소련이 원조다.

푸틴은 미국 할리우드에 과거 소련의 선전부 시정보다 더 심각한 사상지침이 존재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영화 배역에 따른 배우들이 인종과 성을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엄격한 지침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원래 숭고했던 인종주의 타파투쟁이 새로운 취소문화에 따른 역차별로 변질돼 사람들을 갈라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은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의 모범사례로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 “나는 꿈꾼다(I have a dream)”도 인용했다. “내 4명의 아이들은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닌 사람 자체로 평가받는 나라에 살 게 될 것”이라고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바로 이게 진정한 가치”라고 말했다.

푸틴은 볼셰비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볼셰비키는 국유화를 논하면서 재산뿐 아니라 여성도 국유화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런 볼셰비키의 극단적인 시도를 옹호하는 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개념 자체를 없애기를 원했다고도 말했다.

덧붙여 남녀 간의 성구분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는 생물학적인 사실이라고 용기 있게 말하는 이들이 거의 사라져버렸다고도 말했다.

어머니(mother), 아버지(father) 대신 부모1(parent 1), 부모2(parent 2)로 부르거나 모유라는 말 대신 휴먼밀크(human milk)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면서 이런 해괴한 용어에 습관이 되다 보면 극좌세력의 성(姓) 어젠다에 무감각해지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고 말했다.

에포크타임스 역작 ‘공산주의 유령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

푸틴은 이런 ‘용어전술’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920년대 소비에트가 이미 시도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에트의 맞춤형 사상 기술자들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가상의 언어인 뉴스피크(Newspeak)와 같은 것을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일찍이 정치적 언어 즉 뉴스피크는 “거짓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고 살인을 좋게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고의 폭을 좁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고도 했다.

말은 생각을 지배하고 새로운 인식체계와 가치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소비에트 사상기술자들의 판단이었으며, 유년 시절부터 사고를 지배하면 바로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푸틴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남자아이에게 쉽게 여자아이가 될 수 있다고 교육해 성 정체성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 ‘부모를 무시하고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을 해라’라고 몰아가게 되며 결국 인생을 망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는 인간애(humanity)에 대한 범죄로 인식되는 행태가 진보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푸틴은 비판했다.

푸틴의 이 역사적인 연설에 전 세계인들은 깜짝 놀라고 있다. “내가 푸틴의 생각에 동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비에트 정권의 추종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반대여서 놀랐다”는 의견도 많았다.

또 “푸틴이 서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굉장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서구국가의 정부가 각성해야 한다”며 “도덕적 나침반이 오랜 세월에 걸쳐 부패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하버드, 예일, 뉴욕타임스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푸틴의 연설에 귀 기울이라”고 촉구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한 미국인은 “푸틴이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사고지배의 위험을 아주 명민하게 분석했다”면서 볼셰비키의 역사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도 경탄했다. 또 “푸틴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푸틴 같은 대통령을 가진 러시아인들은 지독하게 행복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이 말한 바를 푸틴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다.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피터슨은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상가이다.

‘정체성 정치’에 반대하는 피터슨 교수는 학생운동, 여성운동, 전위예술, 해체주의 등을 포괄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좌파 운동가들이 아주 질색을 하는 인사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발다이 강연은 세계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과거와는 180도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러시아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에 가깝게 변했다. 권위주의적 측면도 있지만, 러시아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폐기 처분한 사회주의의 유산을 미국과 서유럽이 받아들여 자본주의가 총제척 위기에 빠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박상후의 시사논평 프로그램 ‘문명개화’ 지면 중계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