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90여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콘텐츠 중 역대 최고 인기작에 등극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사람의 인성(人性)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차단된 중국 온라인상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드라마 속 모습은 공산당의 인간개조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을 쥔 소수의 사람들이 그저 ‘유희’나 혹은 어떠한 이상향을 추구하며 무력한 소시민들에게 비슷한 상황을 강요하는 미래가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 드라마로 90여 개국에서 시청률 1위 대기록
‘오징어 게임’은 한국어로 된 한국 드라마인데도 전 세계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전례 없는 흥행 공식을 써내려간 덕분인지, 이정재 등 주연배우 4명은 미국의 인기 토크쇼 ‘지미 팰런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필자는 먼저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이 드라마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19세 이상 성인만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 얘기를 하는가? 내용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회 최하층 약자들이 단순해 보이지만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해 456억 원의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미스터리한 제안을 받는다. 스토리는 여기서부터 펼쳐진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이 드라마는 패배자, 즉 ‘루저(losers)’의 이야기라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우화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회 현실과, 인성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관해 토론하는 논평과 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소수 권력 엘리트들이 인류를 공산주의로 이끌려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의 소수 엘리트들이 인류를 공산주의로 이끌려 한다’고 예고하고 있다고 본다. 감독이 이 점을 의식하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가 그런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오징어 게임’은 적어도 두 가지 요점을 폭로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공산당이 정상인을 개조하고 망가뜨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인성을 상실한 ‘비인간(非人間)’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막대한 자본을 가진 권력자들이 인류를 공산주의 독재 체제로 끌고 가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공산당과 매우 흡사한 게임 시스템과 규칙
우선 ‘오징어 게임’이 주는 첫인상은 게임의 건물이 장관이고, 의상 컬러가 화려하다. 하지만 게임 이면에는 거대한 거짓말과 투쟁, 살기가 숨어 있다. 이것은 공산당의 본성인 ‘가대공(假大空·거짓, 허풍, 헛소리)’과 기만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외자 유치를 위해 부풀린 통계수치를 발표하고, 언론과 외빈에게 화려한 건물이나 견본도시를 보여주며 공산당의 발전상을 과시한다.
작년 팬데믹 기간, 공산당은 의료진의 활약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퍼뜨렸다. 긍정의 에너지를 퍼뜨리는 것은 좋지만, 당의 공덕을 칭송하고, 전염병의 실상을 은폐하려는 악랄한 목적이었다.
게임 속 강렬하고 화려한 배경과 구조물, 붉은색 의상에 총을 멘 진행요원들은 공산당의 거짓과 허풍의 이미지와 매우 맞아떨어진다.
게임 참가자들은 모두 ‘참가 동의서’에 서명해야 하고 세 가지 게임 규칙을 지켜야 한다. 두 가지는 ‘참가자는 임의로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과 ‘게임을 거부하는 참가자는 탈락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산당 조직 가입 절차와 유사하다. 일단 공산당 조직에 가입하면 무조건 당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당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설령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라고 해도 항명해서는 안 된다. 공산당 치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게임 속에서는 목숨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
또 게임 관리자는 참가자들에게 ‘게임이 민주적이며 평등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시종 강변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데 참가자들을 참여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들이 규칙을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면서도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공산당과 흡사하다.
흔히 비공산권 국가의 사람들은 공산당이 어떤 형태로 국민들에게 보여지는지 잘 모른다. 공산당은 늘 민주, 평등, 인권을 외치며, 국제사회의 주요 국가인 것처럼 선전한다. 공산당이 하는 모든 일이 국제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에 따른다는 느낌이다.
민주를 외칠뿐만 아니라, 기이한 제도와 명칭을 만들어 사람들의 개념을 혼란시킨다. 예컨대 ‘민주집중제’라는 헛소리다. 민주적으로 권력을 집중시킨다는 개념인데, 실상은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독재체제를 포장만 바꾼 것이다.
인권에 대해서는 ‘잘살 권리’라는 구호로 대체한다. 인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살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생억지다.
‘오징어 게임’의 관리자들이 그렇다. 그들은 드라마에서는 ‘공정성’을 외치고,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민주, 평등,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며 대중을 현혹한다. 실제로는 참가자들을 한 걸음씩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한 기만술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관리자들은 입으로는 이런 구호를 외치면서 행동은 포학하고 인간성이 없으며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점 또한 공산당과 판박이가 아닌가? 입으로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신중국을 건설하겠다고 외쳤지만, 결국 계속되는 정치투쟁과 학살로 수천만 명이 죽지 않았는가.
게임 시스템도 공산당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 공산당은 당의 의지와 지도자 또는 권력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아끼지 않는다.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모든 생명을 희생할 수 있고 수하들의 부패도 방임한다.
드라마에서 말단 병사들이 아직 죽지 않은 참가자들의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한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게임 관리자는 이 문제를 발견한 후 중요한 것은 ‘게임 규칙을 깨지 않는 것’이라며 산 사람의 장기를 훔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게임 관리자는 인성이 없다. 이 점도 공산당과 판박이다. 당의 목표를 달성하고 당수의 뜻을 거스르지만 않으면 아랫사람이 아무리 비인간적이어도 상관없다. 일례로 중국공산당은 1999년부터 수련단체인 파룬궁(정식명칭 파룬따파[法輪大法])을 박해하고 그들의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이런 만행은 20여 년간 지속됐고 당수가 두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는 매우 전형적인 사례다.
지금까지는 게임의 전반 시스템이 공산당과 비슷하다는 점을 살펴봤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게임 운영’
끝없는 투쟁은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하는 무기이자 공산당이 전체주의 정권을 유지하고 인민을 억압하는 예리한 무기다. 이런 투쟁 수법과 과정이 ‘오징어 게임’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몇 가지 뚜렷한 투쟁 수단을 들어 보자.
◇내부 분열과 불신 조장=계급투쟁은 공산당의 정치철학이다. 계급투쟁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계급을 나누어야 한다. 즉, 인민을 두 집단으로 나눈 후 서로 투쟁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먼저 인민을 분열시킨 다음 군중과 군중이 투쟁하도록 선동한다. 군중과 군중이 투쟁하면 당의 적을 섬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군중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군중의 응집력을 흩트리는 효과가 크다.
예를 들면 게임에서 끊임없이 참가자들이 편짜기를 하는데, 이는 사실 끊임없이 무리를 나누고 군중을 분열시키는 과정이다. ‘줄다리기’ 게임은 10인 1조로 하는데, 이는 사람들을 큰 그룹 두 개로 나눠 싸우게 하는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협력해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과 싸운다. 이는 ‘외부 투쟁’에 해당한다.
다음 게임은 구슬치기인데, 팀은 2인 1조로 바뀌고 규칙은 두 사람이 팀으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싸우는 방식으로 바뀐다. ‘내부 투쟁’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서로 믿고 팀을 이루던 두 친구가 갑자기 죽고 죽이는 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투쟁은 사람 간의 신뢰를 깨뜨릴 뿐 아니라 인성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린다.
공산당은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내부 투쟁을 부추기는 데 정통하다.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가족 간이나 지인 간에 서로 비판하고 고발하도록 압박해 사회 전체에 불신 풍조를 조성했다. 그 결과 군중은 한 사람 한 사람 외톨이가 돼 고립됐고, 중국공산당은 군중 항쟁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고 군중을 각개격파하기도 쉬워졌다.
◇탐욕심 부추겨 투쟁 선동=게임에서 관리자들은 거액의 상금을 걸고 참가자들을 시스템에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결국 서로 섬멸하는 결과를 이뤄냈다. 이 게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참가자 456명 가운데 한 사람뿐이다. 이것이 이익으로 사람의 탐욕을 자극하고 잔혹한 투쟁을 부추긴 결과다.
현실에서 공산당도 그렇게 해 왔다. 공산당은 막대한 돈과 명예, 권좌를 이용해 사람들을 매수하고 투쟁을 선동한다. 예를 들면, 대만의 친공(親共) 매체와 친공 조직은 중공의 자금을 받고 대만에 대한 통일전선 선전과 여론 투쟁을 담당한다.
◇서로 죽이게 만드는 공포 분위기=대규모 집단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 전 세계 모든 전체주의 체제의 상투적인 통치 수단이다. 공포로 인민이 말을 듣게 하고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공포는 사람의 ‘악(惡)’과 ‘사(私)’를 촉발하는 촉매제이자 도덕과 인성을 파괴하는 예리한 무기다.
게임에서 관리자는 ‘죽음’으로 집단 공포를 조성한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고 심지어 죽여야 한다.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다리에서 밀어낸다. 선량한 사람도 두려움과 이기심 때문에 이처럼 흉악해진다.
중국 공산당 통치 기간 토개개혁, 3반(三反), 5반(五反), 반혁명 진압, 문화대혁명 등의 정치 운동에서 항상 먼저 한 것은 살인을 통해 대규모 집단 공포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공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주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팔아먹고 모함하고 해치게 한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은 이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증오심 심어줘 갈등 심화시키기=게임에서 관리자는 저녁 식사로 달걀 1개, 사이다 1병씩만 나눠줘 참가자들이 음식을 뺏기 위해 싸우게 한다. 음식을 통해 사람 간의 생존 갈등과 증오심을 조장하기 위함이다. 결국 한밤중에 사활을 건 싸움이 벌어진다. 이 수법은 중국 공산당의 그것과 똑같다.
예를 들면,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공은 군인들이 사건 진상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하는 한편, 군인들에게 “학생들이 군인들을 폭행했다”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주입해 학생들을 증오하도록 부추겼다. 결국에 군대를 출동시켜 천안문 대학살의 비극을 초래했다.
◇살인을 종용해 양심·인성 말살=이 게임은 사람 간의 생사를 건 싸움이다. 시스템의 폭력적인 위협하에서 모두가 자기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친다. 참가자들은 부부든 혈육지간이든 친지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해친다.
이 과정은 사실 권력자가 인성을 소멸하고 양심과 윤리를 말살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은 이런 지극히 잔인하고 양심을 말살하는 행위 속에서 시스템에 순응하고 양심에 반하는 선택을 한다.
드라마에서 남자 2호 조상우의 경우, 원래 관문을 뚫어 모든 사람을 도와준 캐릭터이지만, 나중에 자신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형제를 속이고 상대를 다치게 한다. 마지막에는 완전히 통제력을 잃고 그를 지탱하던 마지막 남은 인성마저 상실한다.
중국 공산당도 마찬가지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비(非)인간으로 전락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 신고하고 고발했다. 교사와 학생, 심지어 부모와 자녀까지 서로 간의 투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인성과 도덕, 윤리를 잃었다. 나중에는 고문을 가해 죽이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졌다.
◇인성이 없어진 자리에 악랄한 특성 주입=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친다. 처음에는 감히 사람을 해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습관이 돼’ 자연스러워졌고, 관리자들은 계속해서 승자의 승리를 축하하고 상금을 들먹이며 동기부여를 한다.
죽은 사람의 목숨 따윈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이렇게 유혹하고 선동하는 것이 사상을 개조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이러한 수단으로 사람의 가치관을 왜곡하고 참가자들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한마디로 이런 과정이 바로 사람을 인성과 양심이 없는 ‘비인간’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 대신 조직은 조직에 복종해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또 다른 가치관을 심어준다.
조직에서 나온 이런 변이된 가치관을 ‘당성(黨性)’이라고 한다. 당성으로 인성을 대체하면 사람은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모든 일을 당 조직의 생각대로 하게 된다. 로봇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한다. 인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공산당은 오랫동안 이렇게 공산당원과 중국 인민에게 당성을 주입했다. 그들은 “붉은 유전자를 주입한다”고 한다. 또한 “당을 따라야 한다”, “당의 말을 들어야 한다”, “용감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당의 말을 듣지 않으면 타도당하거나 체포된다. 당이 미국을 반대하라고 하면 미국을 반대해야 하고, 누구를 공격하라고 하면 그를 공격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게임이든 공산당이든 모두 각종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인성을 말살하고 사상을 개조함으로써 사람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자주적인 사상이 없도록 개조한다. 목적은 물론 권력자가 군중을 쉽게 조종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소위 ‘승자’도 사실 ‘루저’다. 그가 인성, 양심, 이성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부·권력 쥔 소수의 세계 개조…공산당식 전체주의
필자는 이 드라마 초반의 일부 묘사 부분이 ‘소수의 자본가들이 인류를 공산주의로 이끌려 한다’고 예고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부분에서는 매우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보듯이 이 게임은 VIP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도박 게임이고 참가자들은 마치 경주마 같다.
이 VIP들의 정체는 상당히 신비롭다. 그들은 가면을 썼고 상당히 부유하다. 이는 그들이 자본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자본가들은 공산당과 매우 유사한 전체주의 체제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두는데, 이 체제에서는 권력자만이 자유롭고 모든 참가자는 마치 경주마 같아 그들의 목숨은 중시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 권력자들과 게임 체제는 겉으로는 약자를 도와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이용해 게임을 벌이면서 즐긴다. 동시에 서로를 해치게 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를 없앤다. 참가자들은 권력자들을 즐겁게 하고 섬기는 데 이용되는 노예들이다.
그렇다면 이 권력자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알 수는 없지만 감독은 약간의 암시를 주고 싶은 것 같다. 우선 관리자의 호화 엘리베이터에는 특이한 도안이 그려져 있고, 마지막 참가자 3명이 함께 식사를 할 때 테이블 디자인은 커다란 삼각형이다.
삼각형은 세 사람이라는 구도를 강조하기 위한 효과가 될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의 도안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역시 ‘전시안(全視眼)’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는 감독은 신비감을 주고 극적 효과를 더하려는 연출상의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우리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가? 세계적인 권력자, 정치 지도자들이 ‘그레이트 리셋(The Great Reset)’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레이트 리셋으로 세계를 좋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절대다수의 세계인은 계획의 수립과 추진에 전혀 참여할 수 없다.
그레이트 리셋은 현재 유엔 시스템을 능가하는 더욱 막강한 세계 정부의 출연을 예고한다. 그들에게 세계의 권력을 독점할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공산주의가 제시한 전체주의적 통치와 어떤 구별점이 있을까.
감독이 10년을 묵힌 시나리오에 따라 만들었다는 ‘오징어 게임’은 이 특별한 역사적 시기에 전례 없는 흥행을 기록하며 특히 넷플릭스가 차단된 중국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관람했다.
공산주의 혁명 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한번 공산주의가 국제사회로 범람하려 시도하는 이 시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의도치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공산당이 인간을 박해하고 인성을 말살하는 과정을 매우 탁월하게 그려냈다.
동시에 소수의 자본가들이 세계를 공산주의식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고 갈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과도 같은 작품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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