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 달 들어 두 명째다. 아파트 주민이 높은 층에서 뛰어내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것도 내가 사는 동과 바로 건너편 동에서 주민이 추락이라는 자살 수단을 선택했다. 그중 한 건은 직접 목격한 일이라 충격이 오래간다. 그 일이 있은 후 아파트 건물 통로를 지나다니기가 두려워 될 수 있는 한 건물과 멀찍이 떨어진 길을 택해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전 11시 30분경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겸 마트를 가려고 내려왔다. 그 시간대 단지는 주민들의 왕래도 거의 없고 동네가 조용하다. 음식물을 통에 막 버리고 돌아서는 순간 건물에서 어떤 물체가 추락했다. 그때 건너편 동에 이삿짐을 운반하는 사다리차가 오르내리고 있어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체가 추락한 자리는 경비실과 보행자 통로 사이였다. “사람이 떨어졌다” 경비원이 소리쳤다. 내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동안 동 전체 경비원들이 모여들었고 이내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자살자는 흰 천으로 감싼 채 들것으로 옮겨 구급차에 실려 떠났다. 경찰 몇 명이 경비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그들도 돌아갔다. 나를 알아본 경비원은 “이쪽으로 지나가지 말고 돌아서 가세요.” 경비원들은 사고 뒷수습을 하느라 얼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현장을 치울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동네 주부들이 여럿 나와 웅성거리며 서로를 향해 “누구야? 몇 호에 사는 사람이래?” 묻곤 했지만 경비원이나 그들이나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누군지도 모르는 세상 아닌가. 자살자가 누군지 신원을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몇 층에서 투신했는지 주민들은 알 길이 없다. 1인 가구 세대가 많은 데다 옆집에 사는 사람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공동주택의 현주소다.
내가 마트에 다녀오니 사고 현장 출입 통로는 물청소가 끝나고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새 수습이 끝난 모양이다. 경비원들은 옆 정자에 둘러앉아 쉬고 있었다. 참혹한 시신을 수습하는 119 구급대원이나 사고 현장을 치우는 경비원들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아파트단지는 평소와 똑같은 풍경이다. 조금 전에 어떤 이가 추락이라는 자살수단을 선택했고, 시신은 구급차에 실려 떠났으며 사고 현장은 말끔히 치워졌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하루가 지나고 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이토록 짧은 순간이다.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고층에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것이다. 한 생명은 그렇게 끝났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사고 현장은 재빠르게 정리되어 여전히 주민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오간다. 자살자가 죽음을 선택한 그 시간은 한산한 때라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어떤 이의 죽음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열흘이 지났을까. 밤 9시경 119 구급차 소리가 단지에 울려 퍼졌다. 다음 날 또 한 사람의 주민이 건너편 동에서 투신했다는 말을 경비원에게 전해 들었다.
한국인 자살률 OECD 국가 1위, 자살에 둔감한 한국 사회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보다 2.1배로 높아 2003년 이래 2017년 한 해만 제외하고 자살률은 부동의 1위다. 자살자 수는 매해 증가하지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한국인들의 삶과 정신이 건강하지 않고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심각한 병폐를 앓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분명히 폭넓게 다각도로 진단이 필요한 사회문제임에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들추고 싶지 않은지 그냥 덮어두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넘쳐남에도 자살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해마다 꼭 챙겨 보는 자료가 보건복지부 발간 ‘자살예방백서’로 매해 자살사망 현황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또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전 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도 가끔 방문하여 전국 자살사망 통계와 분석 자료를 살펴본다. 올해 <2021년 자살예방백서>가 발간되어 다운로드받았다. ‘2021년 자살예방백서’는 2019년 기준으로 통계가 작성되어 있으며, 총자살자 수는 1만3799명으로 전년 대비 129명이 증가하였다. 하루 평균 38명꼴이다.
‘2021년 자살예방백서’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30대, 40대, 60대, 70대 이상 연령별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자살률은 60대 이상이 증가 추세로, 80세 이상 연령대의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높아 고령에 접어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성별로는 전체 자살사망자 중 남자 70.5%, 여자 29.5%로 전 연령대에 걸쳐 남자가 높다. 월별로는 5월, 7월과 10월 순으로 동절기에는 자살자 수가 적다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청소년(9~24세) 사망 원인 중 자살이 가장 높다는 것은 청소년 정신건강 및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이 깊다는 방증이다. 직업별 자살현황을 보면 학생이 압도적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경기도 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의 무서움
2020년 초 발생한 코로나19는 현재까지 2년째 진행 중이다. 세계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에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여러 부작용들이 이제부터 속출할 시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 한국인들에게 두려움과 위축감을 주는 것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겠지만 그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현상이다. 코로나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치 한 세트처럼 묶여 불안감을 조성하는 말이 되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리의 삶을 가장 옥죄이는 부분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러온 일상의 정지 상태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클수록 이동의 제약, 인간관계 두절 등은 지독한 고립감을 안겨준다. ‘2021년 자살예방백서’의 자살동기 분석에도 있듯 청년 세대 남자는 정신적 어려움이 가장 비중이 높았으며, 여자 역시 전 연령대에 걸쳐 정신적 어려움이 자살 동기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곧 대화의 위축이다. 자유롭게 떠들고 웃으며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인지 코로나 시대에 절실히 깨닫는다. 대화의 단절은 자살을 하는 사람이 극단적 선택하기 전 반드시 마지막 신호를 주변에 보내는 것조차도 차단한다. 신체적, 정신적 위축감은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평소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일자리 감소와 더불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라도 안정된 일자리 종사자는 여행이나 여가 활용 등 문화적으로 즐기는 부분은 제약이 있을지라도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풍족해졌다고 말한다. 그동안 해마다 2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가는 데다, 뮤지컬이다, 공연예술 관람이다 지출하는 돈이 현저히 줄어 저축이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코로나만 물러가면 그때는 해외여행도 갈 것이고, 돈 좀 쓰겠다.” 고 벼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경제적 어려움 정도에 따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극명히 갈린다. 경제적 약자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만큼 공포감을 주기도 쉽지 않다. 그것은 경제활동의 단절이요, 스트레스를 해소할 감정까지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적 활동을 위해 걷기 운동을 하더라도 어디 쉴 공간조차 없다. 벤치, 정자 등 휴게 시설은 온통 테이프로 감겨있어 앉을 수도 없이 금방 귀가해야 할 판이다. 현관문을 나서면 아파트 단지, 휴게시설 곳곳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한 현수막이 붙어있다.
앞으로 심각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위기가 있을 때는 자살률이 조금 감소하다 2~3년 후면 급증한다는 통계다. 내년, 내후년 발간될 ‘자살예방백서’의 내용이 새삼 두렵다. 코로나가 종식이 되어도 일상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과 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인의 정신건강 상태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 불명예일지라도 이제는 공개적으로 정신건강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제까지 한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것인가. 첫 번째 대안이 한국인의 자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오세라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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