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법원이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기간, 집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 퇴거를 전면 보류하도록 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결정을 “권한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제6 순회항소법원은 23일(현지시각) CDC의 세입자 퇴거 유예 조치가 연방 정부의 권한을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라는 지난 3월 테네시주 연방지방법원 1심 판결에 판사 3인의 만장일치로 동의했다(판결문 PDF).
CDC는 지난해 9월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고 자가격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미국 전역의 모든 주거지에서 세입자를 쫓아내는 행위를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CDC는 당초 금지 기간을 지난해 연말까지로 예정했으나 총 3차례 연장해 올해 7월 말까지로 늘렸다. 그러면서 미국의 세입자가 약 4300만명이며, 퇴거 유예 조치가 없다면 3천만~4천만명이 거리로 내쫓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조치에 따라 세입자들은 “제때 집세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해낼 수 없었다”고 선언하면, 지난해 9월부터 열 달 가까이 집세를 내지 않고 계속 살던 집에 머물 수 있었다. 다만 실제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위증죄가 적용될 수 있다.
CDC는 이 조치가 권한 남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CDC 측 변호인단은 “의회가 코로나19 구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CDC에 퇴거를 유예할 권한이 부여됐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항소법원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쪽에 유리한 입법 규칙을 만드는 것은 판사로서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부 관료들의 몫 역시 아니다”라며 “세입자와 건물주 간 입장차가 크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선출된 대표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소송이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대법관들은 5대 4로 CDC의 손을 들어줬다. 이 결정에는 진보 성향 대법관 3명 외에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손을 들어줬다.
캐버노 대법관은 “기본적인 요청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 “유예 조치가 한 달가량 남은 데다, 이 기간에 주거 보조예산이 질서 있게 분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조치 유지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CDC의 퇴거 유예 조치는 집주인과 건물주들에게는 적잖은 손해를 안기고 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테네시주의 부동산 개발업체를 비롯해 집주인, 건물주 연합은 “퇴거 유예 조치로 매달 130억달러(약 15조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CDC의 월권행위로 인해 1년간 총 손실이 최대 2천억 달러(약 23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 조치를 추가로 연장하지 않는 대신, 주거 안정 자금을 투입해 세입자들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뉴욕, LA 등 미국 진보 성향 지역에서는 세입자들이 ‘임대 취소(cancle rent)’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이 운동 참가자들은 정당하게 임대료를 내려는 다른 세입자들에게도 참여를 강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 CDC가 이번 판결에 상고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에포크타임스는 변호인단에 논평을 요청했으나, 기사를 내기 전까지 응답받지는 못했다.
/잭 필립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