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판 국가안전법’ 시행 후 첫 톈안먼 사태 기념일을 맞아 홍콩 정부가 경찰 병력 7천 명을 동원해 철통 경계에 들어갔다.
홍콩 정부는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을 이유로 시민들의 추모행사를 금지했지만, 톈안먼 32주년 전야인 3일 시내 중심지 곳곳에는 경찰 병력이 경계 태세를 펼치며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범민주 진영인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는 4일 빅토리아파크에서 촛불집회를 예고했지만, 경찰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불허했다. 경찰 당국은 빅토리아 파크에만 경찰 병력 3천명을 집중 배치해 집회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한 소식통은 “만약 누군가가 빅토리아 파크 일대에서 (집회와 무관하게)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촛불을 든다면 불법집회 참가자로 간주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차이야오창(蔡耀昌) 지련회 서기는 “모든 개인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 집회 참가자가 아니라 한 개인이 촛불을 켜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다”며 “6월 4일 오후 8시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촛불을 들 것”이라고 밝혔다. 투옥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 수십만 명이 무참하게 유혈 진압된 사태 이후, 지련회를 비롯해 홍콩 시민들은 매년 6월 4일이면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해왔다.
이 집회에는 매년 시민 수십만 명이 참석했지만, 홍콩 당국은 작년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금지했고 올해도 같은 이유로 집회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올해 6월 4일은 중국 공산당의 홍콩판 국가안전법 강행 이후 첫 톈안먼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작년 6월말 국가안전법 시행 이후 홍콩에서는 대표적인 독립언론 애플 데일리(빈과일보) 사주 지미라이와 주요 임직원들이 체포되고, 조슈아 웡 등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이 줄줄이 투옥됐다. 홍콩 국회격인 입법회에서도 민주파 의원들의 활동이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 2월 홍콩 경무처에 따르면 작년 국가안전법 위반으로 체포된 홍콩인은 97명이며 이 중 55명이 민주 진영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입법원 선거 예비선거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의회에 민주 진영을 진입시키지 않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입김의 결과였다.
예상 밖의 조치들도 내려졌다. 지난달 30일 톈안먼 사태 기념관인 홍콩 ‘6·4 기념관’이 재개장해 관람객들의 입장이 허용된 것. 기념관에는 당시 톈안먼 광장의 모습들과 빅토리아 파크 집회 모습들이 전시됐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지련회가 운영하는 이 기념관은 코로나19 사태로 폐쇄됐었으나 이번에 재개관하면서 새로운 테마 전시도 추가됐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8·9 민주화 운동과 홍콩’ 전시였다.
그러나 ‘당국이 웬일로?’라는 반응을 얻었던 6·4 기념관은 다시 문을 연 지 3일 만에 폐관했다. 이번에는 ‘공공오락장소 영업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지련회 차이 서기는 홍콩 환경위생처의 기념관 폐쇄 결정에 대해 “정치적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어 “홍콩 국가안전법 시행 이후 홍콩의 정치적, 법률적 환경은 더욱 위험해졌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자유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원칙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역량을 어떻게 최대한 보존할 것인지를 지련회와 범민주 진영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홍콩 정부가 본토 중국인들의 홍콩 이주를 독려하는 한편, 홍콩 시민들의 해외 이주를 압박하고 있으며, 이는 홍콩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민들을 내쫓아 공산주의 사회에 물든 중국인들로 대체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적잖은 홍콩인들이 머물지 떠날지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일부 민주 진영 인사들이 가혹한 환경을 감수하고서도 홍콩에 머물겠다고 선언하는 이유다.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대로 되도록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부 시민들은 민주·자유 진영과는 별도로 ‘신앙의 자유’를 위해 홍콩에서 중국 공산당의 폭정을 알리는 파룬궁 수련자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파룬궁은 1999년부터 중국의 탄압을 받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수련단체다.
한 시민은 에포크타임스에 “홍콩의 민주·자유 진영이 나날이 위축되고 있지만, 20년 이상 중국 공산당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견뎌내고 있는 파룬궁을 새삼 다시 보게 됐다”고 전했다.
/장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