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사 왕후닝의 4가지 전략…왜 시진핑을 위기로 몰아넣나

왕요췬(王友群)
2021년 06월 02일 오후 2:54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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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지금 내우외환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시진핑을 반대하고, 욕하고,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시진핑 거취에 관한 4가지 가능성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를 통해 시진핑을 몰아내는 방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시진핑의 위세가 추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진핑의 ‘최고 브레인’인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왕후닝의 어떤 사람인가? 장쩌민(江澤民) 전 공산당 총서기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발탁해 중용한 중국 공산당의 수석 붓대(筆桿子·주요 정책 문건을 작성하는 사람)이다.

1995년, 장쩌민은 중공 당수를 맡았고, 쩡칭훙은 중난하이의 ‘대내 총괄’인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장쩌민이 ‘어용문인’을 찾자 쩡칭훙이 왕후닝을 추천했다. 장쩌민의 명령에 따라 왕후닝은 상하이 푸단대에서 중난하이 중앙정책연구실로 직행했다. 왕후닝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26년간 중난하이에서 일했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공 당수가 됐을 때 왕후닝은 몸을 낮추고 시진핑의 비위를 맞추는 데 ‘극진한 정성’을 쏟았다. 그는 시진핑을 위해 ‘시진핑 사상’을 포장해 주었고, 시진핑으로부터 신뢰를 었었다. 2017년 중공 19차 당대회 때 ‘시진핑 사상’이 당장(당헌)에 삽입됐고 왕후닝은 정치국 상무위원, 중공 이데올로기 총책임자가 됐다.

이후 왕후닝은 그가 장악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와 선전선동 기구를 이용해 시진핑의 공덕을 칭송했다. 그는 ‘저급홍(低級紅)’과 ‘고급흑(高級黑)’ 수법을 번갈아 써가며 끊임없이 시진핑을 위기에 빠뜨리는 ‘함정’을 파놓았다.

여기에서 ‘저급홍’은 주로 소름끼칠 정도로 추켜세우는 것을 말하는데, 베이징연합대학 마르크스주의대학의 한창(韓强) 전 원장의 말을 빌린다면 ‘저급홍’이란 공산당의 신념과 정치적 주장을 단순화하고 저속화하는 것이다.

‘고급홍’은 언어적으로 더 정교하고 유머스럽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 잡지 인민논단(人民論壇)의 글에 따르면 ‘고급홍’은 “겉으로는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역효과를 내는 것, 즉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찬가를 불러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왕후닝이 파놓은 함정은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팬데믹 상황에서 시진핑 띄우기

2020년 1월, 중공은 전염병 실상을 숨기고, 실상을 말하는 의사(醫師)를 탄압하고, “사람 간 전염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예방 및 통제가 가능하다” 등의 가짜 소식을 퍼뜨리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한 시민들이 세계 각지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을 방치했다. 그 결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대유행을 야기했다.

2020년 2월 26일, 신화통신은 국무원 신문판공실의 지도하에 제작한 <2020대국전역(大國戰疫·중국의 전염병과의 전쟁)>이라는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허베이성 우한은 봉쇄 조치가 내려지고 우한에서 수많은 사람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지만 시진핑은 우한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이 “대국(大國)의 지도자로서 인민을 위하는 시진핑의 마음, 사명감, 전략적이고 원대한 식견, 탁월한 지도력을 집약적으로 반영했다”고 소개했다.

시진핑의 공덕을 칭송하는 이 책은 전 세계인이 팬데믹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왕후닝이 펴냈다. 이 책이 출판되자 국내외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쉐푸민(薛扶民)이라는 베이징 시민이 왕후닝을 고발하는 서한을 실명으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고발했다.

하나는 왕후닝이 이 책을 주도해 출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왕후닝이 관장하는 인민일보가 ‘우리의 삶은 꿀보다 달콤하다’는 글을 게재했다는 것이다.

쉐푸민의 서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왕후닝은 이데올로기를 주관하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서 현재 방역의 엄중한 상황에서 인륜과 기본 양심을 무시하고, 방역을 강화하고 개선해 인민의 고통을 덜어줄 고민은 하지 않고, 전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조기 방역 실패로 인해 전 세계인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데 대해 참회하지 않은 채 오히려 방역 성과를 과장해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고, 전 중국 인민이 상심하고 절망하게 했다. 따라서 왕후닝은 더 이상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맡을 자격이 없다. 그는 사죄해야 하고, 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시진핑 머릿속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혼탕(迷魂湯) 주입

2020년 6월 24일 로버트 오브라이언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중 관계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는 왜 중국 공산당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가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명확히 말하면,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이다. 당의 총서기인 시진핑은 스스로를 이오지프 스탈린의 후계자로 본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의 이 말은 중공의 급소를 찔렀고, 오늘날 중국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짚었다. 이것은 왕후닝이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혼탕(迷魂湯·영혼의 본성을 잃게 하는 탕약)을 끊임없이 주입한 결과일 것이다.

예를 들어 2018년 4월 23일 공산당 정치국은 <공산당 선언> 집단 학습을 조직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를 총괄하는 왕후닝이 기획한 것이 틀림없다.

같은 해 5월 4일, 중공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고위급 대회를 열었고, 시진핑은 장문의 연설을 발표했다. 시진핑은 마르크스를 기념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며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진리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확고한 신념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연설문은 틀림없이 왕후닝이 주도해 작성한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당시 실권은 그의 전임인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와 전 정치국 상무위원인 쩡칭훙 국가부주석을 필두로 한 ‘딥스테이트’가 장악하고 있었고, 후진타오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시진핑은 집권 첫 5년 동안 주로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장쩌민과 쩡칭훙의 손에서 최고 권력을 뺏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공산당 선언>이란 책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바로 왕후닝이 쉴 새 없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혼탕을 시진핑의 머릿속에 주입해 그나마 남아있던 정상인의 사고마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설에 물들게 했다.

생각이 바뀌자 모든 것이 따라 바뀌었다.

예컨대 시진핑은 2017년 4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중미 관계를 좋게 할 이유는 천 가지 있지만 중미 관계를 나쁘게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2020년에 와서는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했던 말을 까맣게 잊은 듯했고, 미중 관계는 단교만 하지 않았을 정도로 나빠졌다.

셋째, 중공 최고위 지도층에서 시진핑 고립시키기

공산당 최고 권력기구는 전국인민대표대회도, 중앙위원회도, 공산당 정치국도 아닌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다.

중공 19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은 시진핑·리커창(李克强)·리잔수(栗戰書)·왕양(汪洋)·왕후닝·자오러지(趙樂際)·한정(韓正)이다.

이 중 장쩌민의 측근은 왕후닝·한정·자오러지 등 3명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왕후닝은 장쩌민과 쩡칭훙이 발탁해 중용한 인물이다. 한정도 마찬가지다. 왕후닝과 한정은 장쩌민·쩡칭훙을 필두로 한 ‘상하이방(上海幫)’의 중요 인물이다. 자오러지도 장쩌민·쩡칭훙이 일찍이 발탁·중용했다. 자오러지는 발탁될 당시 최연소 성장, 최연소 성 당서기였다. 자오러지는 ‘장쩌민 이익집단’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는 한때 시진핑의 부패 척결의 주요 우군 중 한 명이었다. 시진핑이 반부패 운동에서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을 때 리커창은 시진핑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19차 당대회 이후 왕후닝이 관장하는 공산당 매체들은 시진핑과 리커창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했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언론 보도에서 시진핑을 띄우고 리커창을 폄하하는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왕후닝 지시: 리커창 관련 뉴스는 톱기사로 올릴 수 없다’는 가오신(高新)의 글을 통해 많은 사례를 들었다. 오늘날 시진핑과 리커창의 동맹 관계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상무위원인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을 지지한 인물이다. 왕양은 일찍이 “모든 경직되고 진부하며 폐쇄적인 사상 관념에 칼을 들이댈 것”을 호소한 바 있다. 그는 개입을 적게 해야만 잘 관리할 수 있다면서 “권력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은 생사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이런 이념들은 시진핑과 크게 다르다. 따라서 왕양은 시진핑의 측근에 속하지 않는다.

왕후닝이 이처럼 계략을 쓴 결과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시진핑의 측근은 리잔수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넷째, 시진핑을 중공 최고지도자 계보에서 ‘외톨이’로 만들기

2021년은 중국 공산당이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중공 이데올로기 총책임자인 왕후닝이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 공산당 당사(黨史)를 재편찬한 것이다.

지난 2월 출간된 이 당사는 현재 중국 공산당원 9100만 명이 학습하고 있는 <중국공산당 약사(中國共產黨簡史)>다. 가장 큰 특징은 두 사람, 즉 전 중공 독재자 마오쩌둥과 현 중공 당수 시진핑을 크게 부각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 100년사에서 마오쩌둥 관련 내용이 많다는 것은 말이 된다. 그가 1921년 공산당 제1차 대회에 참여하면서부터 1976년 사망할 때까지 55년간 집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집권 기간이 2012년 11월 당수가 돼서부터 <중국공산당 약사>가 출간될 때까지 8년 3개월에 불과한데도 책의 4분의 1인 146쪽이 할애됐다.

1976년 10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36년 동안 중국 공산당은 화궈펑(華國鋒),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장쩌민, 후진타오 등 5명의 당수를 거쳤다. 그 사이 중공 당수가 아닌데도 당의 ‘핵심’으로 추앙받았던 덩샤오핑도 있었다. 이들 중공 지도자 6명은 책의 4분의 1 남짓한 163쪽을 차지했다.

즉 왕후닝이 주도해 편찬한 이 <중국공산당 약사>는 시진핑을 화궈펑, 후야오방, 자오쯔양, 장쩌민, 후진타오, 덩샤오핑보다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다.

화궈펑은 중국공산당 중앙 주석·중앙군사위 주석·국무원 총리를 지냈고, 후야오방은 중국공산당 중앙 주석·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지냈고, 자오쯔양은 국무원 총리·중국공산당 중앙 총서기를 지냈고, 장쩌민은 중공중앙 총서기·국가 주석·중앙군사위 주석을 지냈고, 후진타오도 중국공산당 당·정·군의 최고 지도자를 지냈으며, 덩샤오핑은 중앙군사위 주석을 지내는 등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공 원로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 6명의 인품, 능력, 업적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모두 중공의 최고지도자였고 중공의 ‘핵심’이었다. 왕후닝이 시진핑을 이 6명 위에 올려놓은 것 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인심을 잃었을까? 이 6명의 자녀들, 이 6명이 중용한 당·정·군 고위 관리들, 이 6명의 국내외 지지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왕후닝이 시진핑을 이들 6명 위에 올려놓은 것은 시진핑을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 계보에서 ‘외톨이’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맺음말

왕후닝이 시진핑을 함정에 빠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왕후닝의 진정한 주인은 장쩌민·쩡칭훙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집권 첫 5년 동안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척결한 중공 당정군 최고위급 부패 관리 중 상당수가 장쩌민·쩡칭훙이 발탁한 자들이다. 그때부터 장쩌민·쩡칭훙은 시진핑에게 원한을 품게 됐다.

시진핑이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당수가 되기 전에는 자기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시진핑은 집권한 후 전 정부의 사람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왕후닝은 몸을 낮추고 일에만 몰두하며 권세에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왕후닝은 시진핑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데 능해 시진핑을 위해 이론을 ‘포장’해 주면서 신뢰를 얻었다.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에 왕후닝을 앉혔지만 그래도 한 수는 남겨 두었다. 그는 중앙당교 학장 자리에 왕후닝 대신 칭화대 동창인 천시(陳希) 중앙조직부장을 앉혔다.

19차 당대회 이후 지금까지 시진핑의 운세는 좋지 않았다. 그는 아마 왕후닝이 그에게 제시한 아이디어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지난해 10월, 왕후닝이 18년간 맡았던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리가 장진취안(江金權)에게 넘어갔다. 올해 중공 정치국원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서기가 베이징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로 있던 시절 저장성 당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던 천민얼은 시진핑을 위해 많은 글을 썼다. 이후 천민얼은 시진핑의 배려로 승진을 거듭했다. 천민얼이 상경하면 왕후닝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왕요췬(王友群)·중국 전문 기고가

왕요췬(王友群·왕우군)은 중국인민대학 법학박사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웨이젠싱(尉健行)의 전직 비서다. 현재 에포크타임스와 NTD 등에서 중국 전문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