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은 중국판 GPS 베이더우, 화물차 운전자 극단 선택

강우찬
2021년 04월 11일 오전 9:22 업데이트: 2021년 04월 12일 오후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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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개발한 자체 GPS 신호가 끊긴 것을 모르고 차량을 운전하던 화물트럭 운전자가 차량을 압류당한 뒤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처지를 비관해 음독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위성 신호가 끊긴 책임을 운전자에게 묻는 중국 공산당(중공)의 기이한 정책에 대해 온라인 공간에서 운전자들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논란이 된 중국판 GPS는 중공이 야심차게 개발한 위성항법시스템인 베이더우(北斗·북두칠성)다. 이번 사건은 중공이 미국 GPS 대항마로 요란하게 선전해 온 베이더우 시스템이 실제로는 헛점이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허베이성의 화물트럭 운전자 진더창(金德强 ·51)은 지난 5일 중국판 카톡 위챗 단톡방에 “여러분이 이 글을 볼 때쯤이면 난 이미 6시간 전에 죽은 사람일 것”이라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겼다.

진씨는 이 글에서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힌 뒤 “운수업을 10년 했는데 돈은 얼마 못 벌고 병만 얻었다. 3고(고혈압·고지혈·고혈당)에 심장도 안 좋지만 계속 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오늘 펑룬구(허베이성 탕산시의 한 지역) 검문소에서 트럭의 베이더우 연결이 끊긴 게 걸려 벌금 2천 위안(34만원)이 나왔다”며 “나 같은 기사가 어찌 그런 걸 알았겠느냐”고 당국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생활고와 가족에 대한 걱정을 써내려간 진씨는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 내 죽음을 통해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어 이번 사건(베이더우 불량)을 중시하도록 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진씨의 유서, 그의 형과 동료 운전기사들이 언론 및 SNS에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진씨는 이날 검문소에서 과적단속을 통과했지만 차내에 설치된 베이더우 장비의 위성 연결이 끊긴 것이 ‘적발’돼 과태료 2천 위안이 부과됐다. 과태료를 바로 내지 못해 트럭도 현장에서 압류당했다.

진씨는 화물차 운전자가 어찌 그런 것까지 다 확인하겠느냐며 검문소의 공안에게 정상 참작을 부탁했지만, 그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낙담한 진씨는 인근 슈퍼마켓에 가서 농약 한 병을 산 뒤 다시 검문소로 돌아와 이날 오후 3시30분께 이를 마셨다. 이를 목격하고도 10여분 가량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던 공안은 17분 뒤 진씨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했다. 그러나 진씨는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밤 11시 50분께 숨을 거뒀다.

중공 정부의 ‘도로운수차량동태감독관리법(운수차량감시법)’은 대형 버스와 트럭 등에 설치된 베이더우 수신 장비에 이상이 생겨 위성 연결이 끊기면 관할 당국은 시정명령을 내리고 운전자는 불이행 시 과태료 800위안(약 13만원)을 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좌] 중국 화물트럭 등에 설치가 의무화된 베이더우 주행기록장치. 빨간 동그라미 안의 작은 안테나 아이콘과 전파 강도가 위성연결 여부를 나타내는 표시다. | 웨이보

또한 베이더우 수신 장비 파손 혹은 고의로 신호 송수신 방해·차단이 적발되면 시정명령과 함께 2천위안 이상 5천위안(약 8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번에 숨진 진씨에게는 고의 차단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진씨는 유서에서 고령의 모친을 모시고 처자식도 보살펴야 하는데 막막한 상황이라고 알렸다. 유족들이 사후 확인한 진씨의 통장에 남은 돈은 6천 위안(약 102만원)이 전부였다.

동료 운전기사들은 “고작 2천 위안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당국의 무자비한 행정에 격분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베이더우 시스템에 대해 “장비 고장과 오류를 자주 일으켜 스트레스”라는 원성도 이어지고 있다.

베이더우는 중공이 지난 1990년대 말부터 개발해온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이다. 중공은 20년 넘도록 400여개 기관, 30만명의 과학자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총 55기의 위성을 쏘아 올려 이를 구축했다. 미국의 GPS에 맞서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었다.

GPS는 미국 국방부가 개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전 세계에 무료로 서비스된다. 중공은 미국의 GPS에 의존하면 전투기와 미사일의 유도 등 군사행동시 GPS가 차단되거나 심지어 조작돼 미국과 맞설 수 없다고 판단해 베이더우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중공은 작년 7월 31일 베이징에서 성대한 행사를 열고 베이더우를 정식 출범하면서 “미국 GPS에 대한 의존을 끝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중국판 GPS인 베이더우는 잦은 오류와 접속 불량으로 중국 운전자들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에 진씨의 트럭에서 문제가 된 장비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주행기록계(行駛記錄儀)였다. 운전석 앞쪽에 부착되는 셋톱박스 형태의 이 장비는 구형 폴더폰 같은 녹색 확면에 검은 글씨로 기기 번호, 현재 속도와 방향, 시간, 날짜와 시간 등이 표시된다.

중공 당국은 2014년 7월 1일부터 운수차량감시법을 시행하고 전국 고속도로에 운행하는 관광버스, 전세버스, 3종 이상 승용차, 위험물 운송 차량, 대형 화물트럭 등에 위성항법시스템을 이용한 주행기록계 설치를 의무화했다.

주행기록계가 운전자들을 괴롭히게 된 것은 미국 GPS 대신 중국산 베이더우 시스템을 이용하면서부터다. 주행기록계는 화면 왼쪽 상단의 작은 안테나와 신호강도 표시로 접속 여부를 나타낸다. 구형 폴더폰에 표시되는 것과 비슷한 작은 아이콘으로 접속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운전에 집중하다 보면 깜빡 놓치기에 십상이다.

진씨의 형은 “주행기록계는 졸음운전이 감지되면 운전자를 깨우기 위해 경고음을 낸다. 하지만 졸음운전을 안 하면 아무런 안내가 없어 접속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행기록계의 기록이 실제 운전기록과 차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운전자들의 불만 섞인 글도 중국 온라인에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베이더우 시스템을 이용한 내비게이션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거나 심지어 멈춰있는데도 저속 주행 중으로 표시된다는 이들도 있다.

차량에 따라 3천위안(약 51만원)에 달하는 설치비와 매년 지불해야 하는 수백 위안의 서비스 요금도 운전자들에게 적잖은 부담다. 위성신호 품질 외에도 주행기록계 자체의 불량까지 겹쳐 이래저래 신경 쓸 부분이 적지 않다.

한 운전자는 “요즘 대형 차량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안전운전’ 대신 ‘베이더우 연결 확인 잊지 말자’라는 인사말이 유행”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