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의 경제정책 기조에 중대한 변화가 포착됐다. 안정에서 보장으로, 세계화에서 국내화로의 전환이다. 국제경제 질서에서 고립을 시사하는 정책 전환에 대해 “속수무책인 상황을 쇄국으로 덮으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상하이에서 열린 루자쭈이(陸家嘴) 금융 포럼에서 등장한 ‘경제내순환’(經濟內循環)이란 용어가 중국에서 핫키워드로 떠올랐다. 이 용어는 중국 국무원의 경제 브레인인 류허 부총리가 해당 포럼에 보낸 기고문에서 사용됐다.
기고문에서 류허 부총리는 “우리는 여전히 경제 하방 압력에 시달리지만, 형세는 좋은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국내순환을 위주로, 국제와 국내가 서로 촉진하는 쌍순환 발전이라는 새로운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류허 부총리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장밋빛 미래처럼 묘사했지만, 이 기고문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경제내순환’이 회자되고 있다. 외부와 담쌓고 중국 내부에서 모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 담겼다.
앞서 지난 4월 리커창 총리 역시 비슷한 맥락의 정책을 밝혀 대중의 의구심을 촉발시켰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6개 안정’(六穩)에 쏟아붓던 역량을 ‘6개 보장(六保)’ 쪽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6개 안정은 취업·금융·무역·외자·투자·시장전망이고, 6개 보장은 취업·민생·시장주체·식량에너지안전·산업공급망 안정·기층 조직운영이다. 리커창 총리 발언은 경제성장에 쏟던 에너지를 내수경제 안정 방향으로 돌리겠다는 의미다.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내세우며 인권을 억압하고 언론자유를 억누르던 정권에서 갑자기 민생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6개 보장’을 선언하자 항간에는 “나라에 곧 심각한 물자 부족, 특히 식량부족이 곧 닥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한 네티즌이 쓴 게시물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곧 발생할 현실, 3년은 고생할 준비해야 한다’(準備過三年以上苦日子了,現實即將發生)는 제목의 이 글에서는 “중국 정부가 ‘6개 보장’ 정책을 발표 경제내순환을 준비, 개시하려 한다”며 “전략물자와 민생상품에 대해 전시(戰時) 계획경제를 실시하고 해외 출국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국경감시를 강화하고 계획경제를 시행하려 한다”며 “식량 비축과 육류·달걀·가금류·어류·우유·과일·채소 등 농축수산물과 수도·전기·가스·기름 외에 교통·통신 등에 대해 전시에 준하는 국가적 관리를 시행할 것”이라고 예측 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원자재와 에너지원을 점검하고 국내 소비자를 찾아야 한다. 생활필수품으로 생산을 미리 전환해야 한다”, “개인은 출국을 자제하고 출국한 사람은 빨리 귀국해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 극단적 상황에 대비해 옥상이나 베란다, 화분에서 채소를 기를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저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글에 담긴 예리한 분석력과 구체적인 제안내용에 중국인들은 수긍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윈장차이징(云掌财经) 등 몇몇 경제매체까지 전문을 전재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현재 해당 글은 인터넷과 매체에서 모두 삭제됐지만, 이후 SNS에서는 “중국 인구 절반이 월수입 1천 위안(17만2700원)인데, 내순환이 가능하겠나” “전염병이 확산 중인데 문을 닫고 우리끼리 지낸다니…”라며 해당 글에 수긍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달 리커창 총리가 제안했던 ‘노점상 경제’를 떠올리며 “류허 부총리의 ‘경제내순환’ 역시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해당 글에서 예측한 내용이 일정 부분 현실화했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최근 중국 당국은 과수 재배 농가에 지원보상금을 제시하며 벼 등 식량작물 농사로 전환할 것을 권유했다”며 “식량작물은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는데 정부가 이런 정책을 내놨다는 사실이 게시글 내용과 들어맞는다”고 했다.
한편, 중국 정권은 지난 2018년부터 여권 발급 기준을 강화하고 올해 4월부터는 일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권을 회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내순환이 사실상 쇄국이라는 지적을 중국인들이 그저 보고 지나치기 힘든 한 가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