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치고 도망간 뺑소니 사고, CCTV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경찰관은 ‘막고 품었다’.
지난 24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안전을 수호하는 사람들, 경찰들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날 방송에는 뺑소니 사건 전문 형사 유창종 경위가 출연했다.
총 경력 28년, 98%의 검거율을 보유한 경찰로 알려진 유창종 형사는 뺑소니범 검거 방법에 관해 “일단 CCTV 분석을 잘해야 하지만 분석이 안 될 때는 ‘막고 품는다'”고 밝혔다.
막고 품는다는 건 무슨 말일까.
유창종 형사는 “물고기 잡을 때 어떻게 하냐. 낚시 못 하면 막고 물 퍼야지”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막고 품는다’는 수사 범위 내 모든 대상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범인을 찾는 방식이다.
사고 현장에서 찾은 단서와 관련 있는 모든 차량을 전수조사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번호판 확인이 안 될 때 유력한 용의 차량을 모두 직접 보고 사고 차량을 찾는 방식이다.
프로그램 진행자 유재석은 “막고 품어서 잡아낸 범인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있었다. 유창종 형사가 처음 맡은 뺑소니 사건이었다.
1998년 장수군 장수읍 할머니 뺑소니 사건.
유창종 형사는 “현장에 갔는데 너무 깨끗했다”며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딱 하나, 검은색 플라스틱 조각이 하나 발견됐다.
유창종 형사는 “처음 뺑소니 수사할 때인데 제가 요만한 조각으로 이게 무슨 차인지 알 수가 있냐”며 자동차 정비업소를 찾아가서 물어봤다고 회상했다.
정비업소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해당 플라스틱 조각이 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유창종 형사는 “혹시나 하고 오토바이 센터에 갔다”며 “오토바이 앞바퀴 물받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할머니를 치고 도망간 범인은 차가 아닌 오토바이 운전자였다.
오토바이인 것까지는 알았지만, 단서는 여전히 플라스틱 조각 하나뿐. 수사는 여전히 막막했다.
이때 유창종 형사는 해당 오토바이가 당시 젊은 사람들이 즐겨 타는 오토바이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수사 방향을 젊은 사람들 위주로 해보자”
고등학생이 그랬을까, 사고를 내고 무면허라서 도망쳤을까.
생각한 유창종 형사는 인근 지역 모든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조사했다.
오토바이가 부서질 정도의 충격이 있던 사고였으니, 범인에게도 반드시 상처가 있으리라 직감한 유창종 형사는 “넘어졌으면 상처를 입었을 거 아니냐”면서 “선생님한테 확인 한번 해보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전수조사 결과, 다친 학생은 없었다.
유창종 형사는 실망하지 않고 근처 마을의 이장들을 찾아가 오토바이 소유자 수소문을 진행했다.
유창종 형사는 “한 4일 정도 됐는데, 계속 좁혀 들어가니까 전화가 왔다”고 했다.
“제가 누구를 오토바이 빌려줬는데 내 오토바이가 파손이 됐습니다”
그 즉시 유창종 형사는 전화를 걸어온 사람에게 가서 오토바이를 확인했다.
현장에서 주운 플라스틱 조각과 오토바이 파손된 흔적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다면 오토바이 주인은 누구에게 오토바이를 빌려준 걸까.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형한테 빌려줬는데 복귀를 했어요”
유창종 형사는 그길로 진해 해군사령부까지 갔다. 그리고 군인 한 명을 만나 물었다.
“왜 왔는지 알지?”
병사는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극적인 방식으로 첫 사건을 해결한 유창종 형사.
유재석은 “사실 CCTV를 하도 오래 봐서 시력이 안 좋아지셨다고 들었다”고 말을 건넸다.
유창종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가 오늘은 안경을 벗고 왔는데 단서가 나올 때까지 며칠이고 매일 돌려보는 CCTV에 눈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시력은 나빠졌을지언정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유창종 형사는 이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범인) 차종은 알지만 번호를 못 찾을 때 있으면, 차종의 이동 경로를 다 딴다”며 “어디에서 출발을 해서 어디, 어디로 지나가는지 그 동선을 쭉 따라간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그러면 그 동선에 있는 모든 CCTV를 다 보셔야 하는 거냐”며 놀라워하자 유창종 형사는 당연한 표정으로 “다 봐야 한다. 그중 하나에 혹시라도 번호가 나올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어딘가에는 번호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보는 거죠.
잡아야 하니까요. 그 차를 잡아야 하니까. 찾아야 하니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들 있잖아요. 수사 전에 저희가 영안실에 찾아가요.
들어가서 눈 감고 기도하고.
죄송합니다, 꼭 잡아드리겠습니다.
피해자에게 약속을 하고 나와서 수사를 시작하거든요.
전국에 계신 교통조사관들이 다 그렇게 할 거예요.
이 차를 찾기 위해서, 진짜 어딘가에 번호 한두 개라도 찾기 위해서 그걸 다 하고 있을 거예요”